김희원 김희원

▲ 김희원 김희원 ⓒ 한걸음엔터테인먼트


지옥에서 갓 뛰쳐나온 듯 악랄한 악당이 있어야 정의로운 주인공의 활약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아저씨>가 빛날 수 있던 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김새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건 꽃미남 아저씨 원빈의 활약과 그의 훈훈한 외모 덕이 크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눈알 낚시를 즐기는 장기 밀매업자 두목 김희원의 독한 연기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악당이 어설프면 원빈의 통쾌한 권선징악에 100% 힘을 실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희원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기 전부터 뮤지컬 <빨래>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와 서점에서 근무하는 점원 아가씨의 시선으로 치유를 노래하는 뮤지컬 <빨래>는 작년에 힐링 열풍이 대한민국을 강타하기 이전부터 관객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공연으로 자리잡았다. 올봄에 선보일 드라마 <구가의 서> 촬영으로 한창 바쁜 와중에도 귀한 시간을 아낌없이 배려해준 김희원을 만나보았다.

- 뮤지컬 <빨래>를 맨 처음에 구상한 계기가 궁금하다.

"국립극장에서 <빨래>를 처음 봤다. 지금은 넘버가 많이 삽입됐지만 초연 당시에는 지금 작품처럼 넘버가 많지 않았고, 연극적 형식의 대사가 많은 작품이었다. 초연으로 막을 내리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운 작품인지라 무대에 다시 올리게 된 작품이다."

- 초연작을 보자마자 이 작품을 계속 이어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IMF와 리먼 브라더스 사건 사이에 초연을 올렸다. 힐링이 필요할 것 같지 않던 시대적 상황에서 지금 유행하는 힐링 코드를 정확하게 짚은 것 같다.

"연극생활 이십여 년 동안 다양한 작품을 접했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이보다 더 좋은 작품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이 작품은 대한민국에 영원히 남아야 한다'는 사명감, 혹은 의무감이 들어 그 사명감으로 지금까지 달려왔고 앞으로도 계속 <빨래>를 위해 달려갈 것이다.

<빨래>를 보면 '희망'이 보인다. IMF나 혹은 리먼 브라더스 사태라는 시대적 고비를 초월해서 사람이 희망을 품는다는 게 중요하지 않겠는가? <빨래>에서 제시하는 희망이라는 코드에 반해 지금까지 달려온 것 같다.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꿈과 희망을 잃지 말아야 행복할 수 있다."

- <빨래>는 초연 당시 열 명의 관객이 그리웠던 작품이다. 하지만 지금은 평일에도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인기 공연으로 성장했다. 이렇게 장기간 흥행할 줄 처음부터 직감했나?

"처음부터 직감한 게 맞다. 작품성도 탁월하고 재미도 있는 <빨래> 같은 작품은 무조건 흥행에 성공할 것이라는 신념이 강했다."

- 배우가 연기하는 동선이나 연출은 어떤 방식으로 다듬는지 궁금하다.

"'이렇게 하면 좀 더 재미있는 연기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차원에서 배우와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참, 아이디어보다 더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게 있다. 그건 바로 '열정'이다.

<빨래>에 출연하는 배우들에게 이렇게 다독인다. '<빨래>라는 작품에 참여하는 게 배우로서 소중한 일이다. 물론 다른 작품 활동을 하는 것도 소중한 일이겠지만 <빨래>라는 작품은 많은 관객에게 희망을 제공하는 작품이다. 이런 작품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도 영광이고, 배우들도 영광으로 생각해주기를 바란다'며 열정을 공유하는 걸 굉장히 중요시한다. 오래 공연을 하다 보면 열정이 떨어질 수 있다. 열정을 잃지 않게끔 하기 위해 열정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이디어 공유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김희원 김희원

▲ 김희원 김희원 ⓒ 명랑씨어터 수박


- 열정이 떨어지는 걸 경계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매너리즘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매너리즘에 빠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날마다 새롭다'고 생각한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그 전에 했던 공연을 생각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오늘은 어떻게 연기하면 더욱 재미있을까, 감정 연기에 어떡하면 충실할까'를 보다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 <빨래>를 공연하면서 재미있거나 특별한 일화가 있었다면?

"재미있는 일화보다 감동적인 일화가 있었다. 항암치료를 중단한 말기 암 환자가 <빨래>를 관람하고 용기를 내서 항암치료를 다시금 시작하겠다고 한 사연을 본 적이 있다. 공연을 보고 나서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다진 게다. 그 관객을 통해 저를 비롯한 배우들이 보람을 많이 느끼고 감동받은 적이 있다."

- <빨래>의 일본 진출 현황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일본 관객은 공연의 희로애락을 즉석에서 반응하는 한국 관객과는 달리 굉장히 정적인 문화 요소가 강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 관객의 반응을 소개해 달라.

"외국 뮤지컬을 우리나라에서 로열티를 지급하고 라이선스 공연으로 들여오는 것처럼 일본 측에서 <빨래>의 라이선스 비용을 우리에게 내고 공연하고 있다. 일본 국민의 정서가 한국과는 달리 차분한 것이 사실이다. 일본 관객을 직접 만나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들이 결코 한국 관객이 받는 감동에 뒤처지지 않는 감동받고 돌아간다는 걸 알았다. 극장 객석에서 표현만 하지 않고 있을 뿐이지 그들도 한국 관객과 똑같이 감동했다."

- 스크린 혹은 방송에 얼굴을 알린 게 극단에서 15년 이상 활동하던 때였다. 무슨 계기로 스크린과 방송으로 영역을 넓혔는가.

"공연이 대형 뮤지컬 위주로 판세가 흐르다 보니 연기에 대한 갈망이 심했다. 연기의 폭을 넓히고 싶은 마음에서 스크린과 방송으로 진출했다."

- 김희원에게 연기란 무엇인가?

"연기는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인간의 본능이다. 내 안에 있는 희로애락을 분출하는 게 바로 연기다. 본능에 따라 정직하게 연기하면 관객도 내 안에 있는 희로애락에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롯하여 가족 중에 배우의 핏줄이 없음에도 내 안에는 관객에게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는 것 같다.

본능을 끌어낼 때에는 무턱대고 끌어내는 게 아니라 계산이 있어야 한다. 본능을 끌어내려면 분석이 정확해야 한다. 연기 재능도 있어야만 본능이 끌어 나오는데 어릴 적 연기할 때는 이러한 점을 잘 모르고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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