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대 대통령선거가 9일 앞으로 다가온 10일 오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후보가 여의도 KBS스튜디오에서 진행된 2차 TV토론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제18대 대통령선거가 9일 앞으로 다가온 10일 오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후보가 여의도 KBS스튜디오에서 진행된 2차 TV토론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TV토론은 종국적으로 대선후보의 철학과 가치를 온 국민 앞에서 검증받는 시간이다. 오고 가는 질문 속에 순발력 있게 대처하는 순간이야말로 한 표 한 표를 행사할 국민이 한 정치인의 민낯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시간이다. 물론 단순한 임기응변까지도 판변할 수 있는….

그런 점에서 지속해서 제기되어왔던 터무니없는 룰의 적용이야말로 대선후보 TV토론의 시청률을 40%대까지 끌어올리지 못하는 주요 원인일 것이다(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시청한 시청자들까지 합산하지 못하는 이 시청률 제도 역시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사항이다). 그런 점에서 '6억'과 '다카키 마사오'와 같은 국민적 유행어(?)를 낳았던 1차에 비해 2차 토론은 브라운관으로 향한 그 열기에 비해 차분할 수밖에 없었다.

1차 토론과 별다를 것 없이 원고를 읽는 담화 수준의 토론 아닌 토론을 벌인 박근혜 후보 앞에서 '토론의 달인' 오바마를 데려온들 열띤 논쟁이 벌어질 수 있을까. 룰을 바꾸지 않는 이상 우리는 미국 대선과 같은 살 떨리고 숨이 헐떡거리는 그런 토론은 보지 못할 운명에 처했다 봐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이정희 후보의 선전과 문재인 후보의 협공은 이 토론을 끝끝내 지켜봐야 하는 당위(?)의 '떡밥'들을 투척해 주고 있었다. 후반부 자유토론에서 보여준 3인의 참모습을 확인하기까지 그나마 흥미진진했던 순간들을 몇 가지 꼽아 봤다. 이건 전적으로 토론의 자세와 대통령상에 관한 이야기다.

지하경제 활성화와 '5.8조', 말실수도 이젠 지겹다

"세입 확대는 비과세 감면 제도를 정비한다든지 또 지하 경제를 활성화한다든가 이렇게 달성해서 매년 27조 원씩 5년간 135조의 재원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박근혜 후보의 재원 마련 방안 중 일부다. 자, 그러니까 저 강남의 룸살롱을 필두로 강남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인 '지하경제'를 양성화도 아니고 활성화하겠다는 저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대통령 후보의 당당함이라니?  '여성대통령'으로서 군인들을 진두지휘하는 한편 '조폭'들까지 거느리겠다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재원조달의 방안으로 수첩에 적어 준 것은 누구의 발상이었을까.

이룰 두고 한 트위터 사용자(@me*******)는 "어제 토론에서 박근혜의 가장 큰 성과. '지하경제 활성화' 발언으로 사채업자, 조폭, 마약사범들의 폭넓은 지지 확보, '줄푸세와 경제민주화는 다르지 않다'는 발언으로 재벌기업들의 성원을 받을 것이다. 국민 말고 지하와 재벌 세계의 대통령이 되시라!"라고 치하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자기 주력 분야인 '경제' 공약도 이해를 못 하는 한 대통령 후보 민낯의 재발견이랄까. 여기에 5조 8천억을 '5.8조'라 쓰인 것으로 보이는 원고를 "5점8조"로 발성한 대목은 토론을 지켜본 누리꾼들이 뽑은 '화룡점정'이었다.

 제18대 대통령선거가 9일 앞으로 다가온 10일 오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후보가 여의도 KBS스튜디오에서 진행된 2차 TV토론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18대 대통령선거가 9일 앞으로 다가온 10일 오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후보가 여의도 KBS스튜디오에서 진행된 2차 TV토론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연예인은 탈세혐의로 은퇴했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6억 원을 받았다고 지난 토론 다시 말씀하셨는데 그에 대한 세금은 내셨나. 지난번 토론에는 사회 환원을 말씀하셨던 것이고 세금을 냈는지를 여쭤보는 것이다. 고소득층이 다 재산을 숨겨놨다고 하면 과연 서민들이 세금을 낼 기분이 들겠나. 대통령 될 사람이면 세금만큼은 내야 한다." (이정희)

대통령이 될 사람들은 자고로 기억력이 좋아야 한다. 자기가 내놓은 공약과 약속을 한 번 내뱉고 기억 저편으로 날려버린다면 그 누가 그 대통령의 정치 노선을 믿고 따르겠는가(하지만 우리는 그런 대통령을 수없이 봐야만 했다는 것이 비극이겠지만).

박근혜 후보는 여기서 "대통령이 될 사람이 왜 자꾸 과거에 일에 연연하는지 모르겠다"는 투로 얼버무렸다. '줄푸세'가 재벌과 상위층 편들기가 아니라고 부르짖는 대통령 후보가 자신이 '소녀 가장'이던 시절에 받은 국가 재산을 꿀꺽했던 그 과거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은 어쩌면 이날의 결정적 장면이었을 것이다. 배우 김여진은 이 모습을 보고선 트위터에 이렇게 적었다. 

"연예인은 탈세 혐의 받아 기자 회견하고 은퇴했었다…."

박근혜 후보가 지금은 <무릎팍도사>와 <스타킹>으로 복귀한 방송인 강호동이 1년 전 눈물을 글썽이며 통한의 기자회견을 통해 잠정은퇴를 선언했던 그 장면을 직접 봐야 했다. 그 시절 '소녀가장'의 6억보다 훨씬 못 미치는 세금을 탈루했던 강호동도 진심으로 참회하며 연이은 '통 큰 기부'로 국민들에게 사죄를 빌었어야 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진중권도 불안해한 '불안한 눈빛'과 '더듬거리는 말투'

"박 후보의 공약에 의하면 심장질환은 국가가 책임지고 간 질환은 책임지지 않는다. 그것이 합리적인 구별입니까." (문재인)
"국민들이 중증으로 인해 가장파탄까지 가는, 중증들을 먼저, 그런것부터 건강보험에서 100% 보장을 함으로써, 그런 중병을 앓아도 병원도 못 가고 치료도 못 받는 국민이 없도록 해야되겠다. 그렇게 시작하는 겁니다." (박근혜)

토론의 8할은 자신감이다. 그건 '사망유희토론'을 통해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일베' 회원과 진행한 토론 동영상을 통해 교본으로 남겨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 자신감은 평소의 지식과 철학이 적절히 결합하고 자기화돼 있지 않는다면 절대 상대방을 설득하고 납득시킬 수 없다.

자신들이 국민을 위해 지키겠다고 내놓은 공약에 대해 자신감은커녕 확신에 찬 한마디 대답도 못하는 모습이야말로 TV토론의 시청률과 흥미를 떨어뜨리는 주요인일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 후보의 그 '불안한 눈빛'은 심한 말더듬으로 표면화됐다. 암기력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보는 사람도 안쓰러울 정도의 토론 태도는 보는 사람으로부터 우황청심환이라도 하나 쥐여드려야 할 것 같은 강한 동정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오죽했으면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민망해했을까. 

"오늘 점수 이정희 80점, 문재인 80점, 박근혜 후보는 흠…. 오늘은 좀 민망해서 점수 안 드리겠습니다."

지하경제활성화 박근혜 이정희 문재인 강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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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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