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16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 부산국제영화제


오는 10월 4일 1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대선 주자들의 영화제 방문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영화 및 부대행사 등에 수십만이 몰리는 행사인데다 전국에서 모여드는 영화팬들로 북적여 대선후보들로서는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젊은 관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점도 놓칠 수 없는 매력이다.

하지만 영화제 측은 겉으로는 내색을 않고 있지만 신경이 곤두선 모습이다. 영화제가 정치인들의 홍보장소로 이용돼 자칫 영화제의 이미지를 훼손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1996년 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한 이후, 대선이 열리는 해마다 대선후보들의 참석은 빠짐없이 이어졌다. 그 때마다 영화제 측은 이들을 따로 배려하지 않았고, 영화제를 선거 유세 장소로 활용하고 싶어 하는 대선 후보들을 온 몸으로 막아냈다.

정치인들 막기 위해 멱살 잡고 육탄 저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2회 영화제 개막식에는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참석했다. 그러나 부산영화제 측은 대선후보라고 따로 소개하거나 인사말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 같은 홀대에 수행했던 국회의원들은 항의했고, 급기야 영화제 관계자와 멱살잡이까지 이어졌다.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 ⓒ 이정민

당시 배우출신 정한용 의원과 이용관 한국영화프로그래머(현 위원장)이 맞붙었는데, 김대중 후보를 수행한 정 의원이 김동호 위원장에게 서운함을 나타내는 과정에서 이용관 위원장이 끼어들었고, 실랑이 과정에서 "넌 뭐야?" "그런 넌 뭐야?"하는 말싸움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몸싸움직전까지 갔다가 간신히 진정됐다. 이용관 위원장은 "당시 그렇게 싸운 후 정한용씨와 많이 친해지게 됐다"고 말했다.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대신 영화제 첫 주말이었던 일요일 저녁 남포동 피프광장에 수행원들을 대거 이끌고 나타났다. 야외무대 행사 중이었는데,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광장은 이회창 후보 일행이 무대 앞으로 밀고 들어오면서 큰 혼란에 빠졌다.

야외무대서 행사를 진행하던 한 여배우는 의자가 뒤로 넘어가면서 크게 다칠 뻔한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다행히 옆에 있는 사람이 팔로 막아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회창 후보는 야외무대 단상에 오르기 위해 애썼는데, 오석근 사무국장(현 부산영상위원장)이 온 몸으로 막아서 결국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부산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회창 후보가 올라오겠다는데 마이크를 잡고 있는 팔이 부르르 떨렸다. 올라오면 마이크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지만 무대에 올라오는 순간 표가 떨어질 것을 각오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면서 "오석근 사무국장이 완강한 저지하자 어쩔 수없이 물러나더라"고 전했다.

MB, 대선 후보시절 레드카펫 밟고 당선된 후에는 좌파 공격

2002년에도 대선후보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월드컵과 부산아시안게임 등으로 11월에 개최되면서 유력후보들의 TV토론이 일정이 겹쳐 개막식에는 군소후보들만이 참석했다.

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올해는 대선이 끼어 있어 개막식 등의 준비가 신경 쓰인다"며, "스태프들과 농담 삼아 '방송사에 요청해 대선후보 TV토론회를 잡게 해야 한다'는 말을 나누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대선 후보의 방문이 어려운 것은 개막식의 경우 분단위로 입장순서를 정리해 놓는데, 갑자기 끼어들어 진행을 흩트려 놓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혼자 오는 것도 아니고 수행원과 기자들을 대거 이끌고 와 막무가내 식 행동을 해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개최된 12회 영화제는 대선 후보들이 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에 어려움을 안긴 대표적인 경우였다. 당시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 권영길 후보가 참석했는데, 공식적인 초청을 받지 않은 상태였다. 이들은 모두 각각 홀로 레드카펫을 밟고 입장했는데, 당시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봤던 부산영화제 관계자는 "세 후보가 서로 나중에 입장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이 대단했다"고 말했다.

 2007년 12회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허남식 시장의 안내를 받아 개막파티에 참석한 이명박 후보. 개막파티장소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행동을 보여 영화인들의 비난을 샀다

2007년 12회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허남식 시장의 안내를 받아 개막파티에 참석한 이명박 후보. 개막파티장소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행동을 보여 영화인들의 비난을 샀다 ⓒ 최윤석


영화인도 아닌, 그렇다고 영화 발전에 기여한 것도 없는 이들이 레드카펫을 밟으면서, 당시 부산영화제는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당하고, 레드카펫의 의미를 변질시켰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특히 개막파티까지 참석한 당시 이명박 후보는 개막파티를 자신의 선거운동에 활용해 영화인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렇듯 12회 영화제를 여러 가지로 어렵게 만들었던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부산영화제가 돌려받은 것은 이른바 '좌파 공격'이었다. 영화계에 대한 대대적인 좌파 청산 공세를 펼친 이명박 정권에서 부산영화제 역시 좌파영화제로 몰렸고, 몇몇 인사들이 축출대상으로 지목 당하는가 하면 영화제 예산 국고 지원 삭감 등이 이어지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 때문에 영화계 인사들과 이명박 정권의 불편한 관계는 현재도 감정이 많이 남아 있는 상태다.

안철수 문재인은 개막식 불참, 박근혜는 아직 연락 없어

또 다시 대선의 해를 맞은 올해, 지난번과 같은 혼란은 다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대선후보 참석과 관련해 부산영화제 측은 25일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대신 "안철수 후보는 26일 부산영화제 사무국을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전해 왔고, 문재인 후보는 영화제 기간 중 주말이나 월요일쯤 상영장을 찾겠다고 알려왔다"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 후보 측은 아직 따로 연락이 온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세 후보들 중 지금껏 관객으로서 부산영화제를 찾은 것은 문재인 후보가 유일하다. 문 후보는 지난해 영화제 때 정지영 감독의 초청으로 <부러진 화살>의 관람을 위해 영화의 전당을 찾았었다. 정지영 감독은 올해 영화제에서도 신작 <남영동 1985>를 선보이는데, 주말과 월요일 상영이 예정돼 있다. 

 2011년 16회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부러진화살' 관람을 위해 상영관을 찾은 문재인 후보와 부인 김정숙 여사

2011년 16회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부러진화살' 관람을 위해 상영관을 찾은 문재인 후보와 부인 김정숙 여사 ⓒ 민원기


부산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대선 후보들 방문과 관련해 "올해는 예전처럼 혼란이 생기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개막식은 TV에서 생중계하기 때문에 시간을 맞춰야 해 (후보들이) 도와주실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실무 관계자는 "대선 후보 특히 여당후보의 경우 영화제 사무국을 거치지 않고 부산시에서 직접 통보가 온다"며 "부산시장과 국회의원 대부분이 새누리당인 상태에서 박근혜 후보가 참석하지 않겠냐"고 예상하고, "온다 하더라도 자기가 스타인양 행동하지 말고 조용히 참석하고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제 중심은 배우와 감독들이라는 것이다.

전례 만들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 초청, 남북정상회담으로 무산

한편 부산영화제 의전을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지금껏 개막식에서 참석한 정치권 인사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로 고건 전 총리를 꼽았다. 그는 "김동호 위원장 초청으로 개막식에 참석했던 고 전 총리가 수행원도 없이 친구의 아반테 승용차를 빌려 타고 입구에 도착해 많이 놀랐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 전 총리가 레드카펫 입장도 사양했고 조용히 개막식만 보고 갔었다" 덧붙였다.

또한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할 뻔했다가 무산된 이야기도 전했다. 체코 카를로비바리 영화제처럼 대통령이 축하만을 위해 개막식에 참석하는 전례를 위해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공식 초청했었다는 것이다.

동구권의 대표적인 체코 카를로비바리영화제는 하벨 대통령이 개막식에 매년 빠짐없이 참석했지만, 축사나 인사말을 따로 하지 않고 경호원도 없이 조용히 참석해 영화 관람한 후 돌간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전례를 만들기 위해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초청장을 보냈고, 청와대 역시 긍정적으로 검토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이 영화제와 겹치면서 아쉽게도 참석이 무산됐다고 말했다.

부산국제영화제 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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