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온국민이 성욕억제제라도 먹어야겠네요"

지난 2월 개그맨 동료들과 과거 찍은 사진이 선정성 시비에 오르내렸을 때, 전천후 방송인 곽현화는 거침없이 당당했다.

"사진이 어떻든, 설사 그 사진이 그런 의도가 아니라도 해도 개인의 성적인 감정, 성적 욕구를 느끼는 그 행위 자체는 나쁘지 않다. 성적인 감정을 일으켰다고 해서 그 사람을 지탄하고 억압하고 비난하는 이 사태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곽현화는 자신의 SNS와 블로그를 통해 밝힌 소신이다. 여기서 멈췄다면 잠잠했을 것을, 곽현화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최근 다시금 불거지며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곽현화 바나나'가 여기서 출발한다. 이 시점에서 곽현화는 자신의 블로그에 바나나를 먹는 표정을 찍은 셀카 사진을 공개해 네티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지난 2월 '개그우먼 곽현화에게 바나나를 허하라' 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밝혔 듯, 개그우먼이라 해서, 이미지가 섹시하다고 해서, 또 그것을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표현한다는 이유로 비난이나 비판을 받는 것은 온당치 못할 것이다. 

헌데 그런 곽현화가 다시금 네티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됐다. 최근 팟캐스트 방송 <나는 딴따라다>에서 밝힌 개그맨 선배의 성희롱 발언과 월간지 맥심과의 인터뷰 내용이 공개되면서다. 여기에는 과거 '바나나 사진'과 다를 바 없는 시선이 존재한다. 섹시한 여성 연예인에 대한 이중 잣대 말이다.

 최근 월간지 <맥심>과 화보 촬영을 진행한 곽현화

최근 월간지 <맥심>과 화보 촬영을 진행한 곽현화 ⓒ 맥심코리아


이미지가 섹시하면 명백한 성희롱도 감수해야 한다?

곽현화는 탁현민 교수, 김조광수 감독과 함께 출연중인 팟캐스트 방송 <나는 딴따라다> 2회에서 과거 한 개그맨 남자 선배가 자신에게 던졌다는 성희롱 발언을 밝혔다. 꽤나 민망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이 발언의 요지는 '섹시한 여성은 당연히 문란하다'로 요약할 수 있다.

네티즌 수사대가 출동하기 전, 곽현화는 "그분께 정식으로 사과 받았구요. 앞으로는 그 어디에서도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더 이상 추측성 이야기들은 하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잘못은 그분에게 있지 제 탓이 아닙니다. 이미지나 모습이 어떻든 그 누구도 성희롱을 당할 당연한 이유는 없어요"라고 밝히며 상식적인 선에서 마무리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서 곽현화가 '제 탓'이란 표현을 쓴 이유가 사실 이 논란의 핵심일 것이다. 적지 않은 네티즌들은 그간 섹시한 이미지의 화보와 셀카 등을 공개한 곽현화의 이미지를 들어 '그래도 싸다', '평소 행실을 똑바로 했으면' 등의 비판을 가했다.

이 논지를 살짝 비틀어 보면, 이러한 단편적인 비난은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은 여성이나 밤늦게 홀로 돌아다니는 여성은 성폭력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곽현화의 발언 그대로 성희롱과 성폭력은 그 자체만으로 엄벌을 받거나 당사자가 비난을 받아야 마땅한 문제지, 피해 여성의 상황이나 행동을 전제로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이상호의 발뉴스에 함께 출연한 강기갑 진보통합당 대표와 함께 포즈를 취한 곽현화

최근 이상호의 발뉴스에 함께 출연한 강기갑 진보통합당 대표와 함께 포즈를 취한 곽현화 ⓒ 곽현화 미투데이


경직된 한국 사회에서 곽현화는 어디까지 용기를 낼까

"한국은 여전히 경직돼 있고, 성적인 상상의 자유, 타인의 표현에 대한 관용과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곽현화가 최근 '나쁜 남자'란 콘셉트로 화보 촬영을 진행한 월간지 맥심과의 인터뷰에 밝힌 '바나나 논란'에 대한 소회다.

혹자들은 순환논리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칠지도 모를 일이다. 바나나 사진과 같은 선정성 짙은 사진을 게재한 것이 곽현화 본인이고, 그렇기에 성희롱 사건에서도 본인이 먹는 욕은 당연하고 또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지 않느냐고.

과연 그럴까. 곽현화는 "부모님까지 피곤하게 만들어서 죄송하다. 요즘도 아버지는 '바나나, 거 참!' 하신다"며 당혹스러워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 누구나 피곤한 싸움을 하는 곽현화는 (공인이 아닌) 연예인이다.

자신의 표현이 인터넷 공간에서 충분히 파장을 일으킬 수 있고, 그것이 오프라인까지 영향을 미치는 연예인 말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표현의 자유는 일반 국민 개개인과 똑같이 동일하게 주어진다. 곽현화의 말처럼 섹시화보가 문제라고 성욕 억제제를 먹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바나나 사진이 문제였다면, 그간 용감한 발언이나 노출 수위 짙은 화보를 촬영했던 남성 연예인에 대한 시선과 반응들과 비교해본다면 답은 금방 도출된다. 여성 연예인에 대한 엄격한, 그리고 이중적인 잣대와 편견들 말이다.

<나는 딴따라다>에 출연한 김조광수 감독은 자신의 영화 <두 번의 결혼식 한 번의 장례식>을 홍보하며 유독 19살 연하인 자신의 남자친구에게만 쏟아지는 관심이 당혹스럽다고 했다. 자신과 다른 것을 유독 견디지 못하는 경직된 한국 사회가 보여주는 동성애자에 대한 시선이 겨우 이 정도다.

경우는 조금은 다르지만, 곽현화의 이어지는 소신이 어디까지 진화할지 자못 궁금하다. "'당당한' '비메이저' '여성' '연예인'"이란 여러 카테고리로 동시에 묶일 수 있는 곽현화의 당당함을 이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디까지 용인하는지 말이다.

오늘 저녁엔 성욕 억제제 대신 바나나를 먹어야 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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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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