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방송된 SBS <패션왕> 마지막 회는 강영걸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22일 방송된 SBS <패션왕> 마지막 회는 강영걸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 sbs


영걸을 겨눈 총이 발사됐다. 수화기 너머 총소리를 들은 가영이 "보고 싶어요"라며 스산하게 미소 지었다. 8년 전, 한 여자가 자신을 쏜 남자에게 "사랑해요"라고 고백하며 죽어갔던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의 충격 결말은 이렇게 자기복제를 완성했다.

SBS <패션왕> 마지막 회는 괴한에게 총을 맞은 영걸(유아인 분)의 죽음으로 끝났다. 재혁(이제훈 분) 쪽 J패션의 공격으로 많은 것을 잃고 모습을 감췄던 영걸은 한 달 후 가영(신세경 분)에게 "미국으로 오라"는 편지와 함께 비행기 티켓을 보냈지만, 재혁이 먼저 우편함에서 가로챘다.

가영은 편지 속 "사랑한다"는 고백을 보지 못하고, 자신을 떠난 영걸 대신 재혁을 택한다. 그래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가영이 영걸을 죽이기 위해 괴한을 보냈다'는 추리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뉴욕에서 만나 뉴욕에서 괴멸한 청춘들

'강영걸, 꿈을 향해 달린다' '이가영, 너와 함께 달린다' '정재혁, 너를 위해 달린다' '최안나, 강해지기 위해 달렸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 역동적인 '달리기'의 향연은 <패션왕>의 등장인물 설명에서 발췌한 것이다. <패션왕> 첫 방송을 앞둔 제작발표회에서 이 문구들을 보며 "무슨 달리기가 이렇게 많냐"며 웃었지만, 한편으로 20대 청춘들이 뿜어낼 열기가 기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달리기의 목적지는 결국 치정 끝의 죽음이었다.

모든 이야기의 결을 사랑싸움으로 '퉁'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드라마에서 애초에 패션은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죽음만이 끝낼 수 있을 것처럼 애끓는 청춘들의 사각관계와 계급구조 내의 패배감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패션왕>을 제목처럼 치열한 프로의 세계를 그린 전문 드라마나 '달리고 달리는' 20대의 성장 드라마쯤으로 기대했다면 '멘탈 붕괴'가 올 수밖에 없다.

'패션'은 차치하고서라도, 여기 어디에 '성장'이 있었나. 1회에서 재혁에게 3천만 원을 빌리러 왔다가 치욕을 겪은 영걸은 마지막 회에서 다시 자신을 무너뜨린 재혁에게 "2억, 아니 1억만"이라고 손을 벌렸다. 야심차게 도약했던 동대문 사장 강영걸은 결국 대기업 이사 정재혁의 힘 앞에 모든 걸 잃었다. '패션왕'이 될 가능성이 가장 컸던 가영은 두 남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가 '밀당왕'이 되었고, 두 남자에게 모두 버림 받은 안나(권유리 분)는 사각관계의 희생양이 돼 떠났다.

발리에서 만나 발리에서 괴멸했던 <발리에서 생긴 일>의 네 남녀처럼, <패션왕> 청춘들도 뉴욕에서 만나 뉴욕에서 끝을 봤다. 어쩌면 예고된 결말이었다. 이미 극 초반의 뉴욕 로케이션 때, 마지막 장면까지 찍어왔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추측을 하지 않아도 말이다. 

2012년에는 더 이상 '찌질'한 인간군상이 먹히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패션왕>이 8년 전의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진일보하지 못한 것일까. '찌질함'이 문제인 것 같지는 않다. 주인공이 찌질하다고 해서 모든 이야기가 구질구질해지지는 않는다.

아니, 다른 건 둘째 치고, 그래서 대체 '패션왕'은 누구란 말인가. <패션왕>의 교훈이 '질투는 나의 힘'이나 '돈의 승리', '중요한 우편물은 등기로 보내기' 따위가 되는 건 곤란하지 않나.

패션왕 결말 패션왕 유아인 이제훈 신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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