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왕>의 영걸을 연기하는 유아인

<패션왕>의 영걸을 연기하는 유아인 ⓒ 이정민


유아인은 <패션왕>을 설명하면서 '찌질'이라는 단어를 열두 번도 넘게 썼다. '멋있는 척 하느니 차라리 찌질하고 말리라'는 신조의 그는 패배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패션왕>의 인간 군상을 마음에 들어 했다.

SBS <패션왕>의 기자간담회 있었던 20일 일산의 탄현제작센터에 유아인과 신세경, 이명우 감독이 자리했다. 전체 이야기의 중반에 이르면서 <패션왕>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가 쏟아진 상황. 유아인은 "보내주신 성원과 질타를 잘 받고 있다"고 웃으며 "빠듯한 일정 속에서 나름 재밌게 촬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아인이 연기하는 강영걸은 동대문 밑바닥에서 성공하기 위해 달리며, 살기 위한 처세에는 도가 텄지만 잘난 것들에 대한 치기를 끊임없이 드러내는 인물이다. 하지만 정작 유아인은 영걸을 찌질해서 마음에 들어 했다.

"영걸이가 멋있는 척 하지 않아서 선택했다"는 유아인은 "'찌질하다', '양아치 아니냐'는 부정적인 의견에 주눅 들지 않고 더 세게 밀고 가려고 한다"며 "'감독님 혹시 쫀 거 아니냐'고 말할 정도로 영걸이가 신선하고 재밌다"고 운을 뗐다.

유아인은 "모든 인간들이 찌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멋있는 척에 염증이 있다"며 "'작가가 유아인 안티냐'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남자 배우가 무조건 멋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그렇지 않았을 때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오히려 착하고, 부드럽고, 여주인공을 어루만지며 '예쁘다'고 하지 않는 영걸이가 흥미롭다고.

그래서 <패션왕>의 네 남녀 주인공들은 사랑이라는 감정 안에서도 갈팡질팡한다. 영걸-가영, 재혁-안나로 이어질 것 같았던 러브라인도 10회 넘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엇갈리기 시작했다. 이명우 감독은 "예전에 <발리에서 생긴 일> 조연출을 하며 캐릭터들의 내면을 솔직히 드러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드라마를 다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며 "<패션왕> 역시 젊은이들의 엇갈린 사랑을 미묘하게 잘 표현한 드라마"라고 설명했다.

 SBS <패션왕>의 포스터

SBS <패션왕>의 네 남녀 주인공들. (시계방향) 강영걸(유아인 분)·정재혁(이제훈 분)·이가영(신세경 분)·권유리(최안나 분) ⓒ SBS


"<발리에서 생긴 일>과 닮았지만, 다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는 <발리에서 생긴 일>의 그림자가 문제다. 이선미·김기호 작가의 이 전작과 현재 <패션왕>이 닮았다는 의견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적지 않게 나왔다. 이명우 감독은 <패션왕>을 시작하기 전에 작가들과 만나 "<발리>여야 하는데, <발리>면 절대로 안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구조가 기본적으로 비슷하고 작가들이 갖고 있는 정서도 있지만, 닮은꼴이 있으면서도 다르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결국 <패션왕>이 승부수로 둔 것은 8년 후인 2012년의 트렌드를 이끄는 새로운 배우들의 힘이다. 이명우 감독은 "세대 교체된 배우들이 전혀 다른 감각으로 소화하고 있다"며 "정재혁이 재벌로 태어났지만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물이라면, 강영걸은 밑바닥 인생이지만 엄청난 욕망과 재능이 숨겨져 있다"고 설명했다. 

<발리에서 생긴 일>을 재밌게 봤다는 유아인도 "<패션왕>이 전혀 새롭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사람들이 만들고 새로운 세대의 배우들이 출연해 이 시대의 감성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고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드라마가 표현하고 있는 사랑, 욕망이라는 감정이 시대를 불문한 공통점이 있어 닮아 보이지만, 새로운 사람들이 이끌어 나간다는 의미에서 다른 매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 특히 유아인은 "이선미·김기호 작가가 솔직하고 가감 없이 찌질하게 그리는 인간 군상의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앞의 이야기와 맥을 같이 했다.

 SBS 드라마 <패션왕>은 패션업계에 인생을 건 네 청춘남녀의 성공과 사랑을 담는다.

SBS 드라마 <패션왕>은 패션업계에 인생을 건 네 청춘남녀의 성공과 사랑을 담는다. ⓒ SBS


이명우 감독은 <발리에서 생긴 일>처럼 충격적인 결말을 준비하고 있는지 묻는 질문에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작가와 제가 가진 신념이 있다"고 기대를 당부했다. 충격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임팩트를 예고한 것. 어쨌든 우리가 <패션왕>에서 즐길 수 있는 분명한 것은 2012년의 트렌드, 8년 전의 소지섭이 아닌 지금의 유아인이다.

이명우 감독은 <패션왕>을 만들기 위해 동대문에서 출발해 패션계를 꿰찬 인물들을 여러 명 인터뷰했다고 말했다. 그들을 만나 '무엇을 얻고 싶었고, 결국 무엇을 잃었는지' 물었던 질문의 답이 유아인을 비롯한 <패션왕>의 인물들에게서 나오면 된다. 밑바닥의 욕망과 찌질함마저 가감 없이 표출하는 이들 네 남녀에게서.

패션왕 유아인 신세경 이명우 발리에서 생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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