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이요? ㅎㅎㅎ"
종료 직후 이상윤 해설위원은 K리그 로고가 박힌 마이크를 들고 선 송시우에게 '우승 가능성'을 묻는 기습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인천 유나이티드 FC가 이번 시즌에 잘 나가고 있지만 선수 당사자도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던 것이다. 이에 송시우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처럼 솔직한 사투리 억양을 넣은 질문을 이상윤 해설위원에게 역으로 던진 것이다.
조성환 감독이 이끌고 있는 인천 유나이티드 FC가 25일(수) 오후 7시 30분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벌어진 2021 K리그 1 대구 FC와의 홈 게임에서 송시우의 선취골과 아길라르의 프리킥 추가골에 힘입어 2-0으로 완승을 거두고 7위에서 4위까지 순위표를 끌어올렸다.
인천의 축구 도사, 아길라르의 슈퍼 골
멀리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까지 날아가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를 2위로 마치고 16강 진출의 성과를 올린 대구 FC가 K리그 1 일정으로 돌아와서는 꽤 많이 휘청거리고 있다.
왼발잡이 공격형 미드필더 라마스를 데려와 잘 활용하면서 세징야에게 몰린 공격 부담을 덜어주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처럼 게임이 풀리지 않고 연패의 늪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대구 FC에게는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이 어웨이 게임이 매우 중요한 기회였다. 초반 기세도 나쁘지 않아 연패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희망을 품었다. 8분만에 세징야의 오른발 중거리슛이 이태희가 지키고 있는 인천 유나이티드 FC 골문 왼쪽 옆그물을 때렸다. 15분에도 라마스의 날카로운 왼쪽 측면 크로스가 넘어간 것을 이태희 골키퍼가 몸 날려 쳐냈고 곧바로 이어진 세징야의 왼발 중거리슛이 아슬아슬하게 골문 오른쪽 기둥을 벗어났다.
대구 FC의 초반 기세를 잘 막아낸 홈 팀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오랜만에 스타팅 멤버로 내보낸 송시우가 귀중한 선취골을 넣으며 단번에 그 흐름을 휘어잡았다. 무고사의 오픈 패스를 받은 왼쪽 윙백 강윤구가 잔디 위에 깔리는 왼발 얼리 크로스로 송시우의 왼발 돌려차기 골을 도운 것이다. 바로 앞에서 미드필더 정혁이 대구 FC의 수비 시선을 유도하는 바람에 그 뒤로 빠져들어가는 송시우를 김진혁이 못 따라간 것이었다. 이 순간만으로도 최근 두 팀의 조직력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게임 후반전에 교체 선수로 들어와 경기 끝무렵에 놀라운 득점 능력을 자랑하여 '시우 타임'이라는 별명이 붙은 송시우가 인천 유나이티드 FC 소속으로 전반전에 골을 넣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23분 11초에 송시우의 왼발 슛이 골 라인을 통과한 것이다.
송시우가 군인(상주 상무) 신분으로 뛸 때 더 이른 시간에 골을 넣은 적 있다. 2019년 3월 10일 스틸야드에서 벌어진 포항 스틸러스와 상주 상무와의 게임에서 송시우는 전반 14분만에 윤빛가람의 도움을 받아 왼발로 동점골을 뽑았고, 후반전에는 안진범의 어시스트를 받아 헤더로 역전 결승골까지 넣었던 것이다.
비교적 일찍 터진 시우 타임 골 덕분에 흐름을 뒤집은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후반전에 더 놀라운 골을 만들어내며 완승을 확인시켜 주었다. 64분에 무고사가 얻어낸 프리킥 기회를 코스타리카 출신의 왼발잡이 축구 도사 아길라르가 시원하게 때려넣은 것이다.
대구 FC 수비벽이 그 앞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킥 정확도가 뛰어난 아길라르에게는 문제가 될 것 아니었다. 완만한 감아차기가 아니라 발등에 제대로 얹힌 프리킥 궤적은 보는 이들 모두가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가 크로스바 하단을 스치며 왼쪽 톱 코너로 빨려들어갔다. 대구 FC 골문을 지키고 있던 최영은 골키퍼가 그저 움찔하기만 했을 뿐 몸조차 날려보지 못했다.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80분에 수비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맏형 김광석이 오른쪽 정강이 부상을 당해 교체 요청 사인을 벤치로 보냈지만 다섯 번째 교체 카드를 71분에 이미 다 쓴 상황이어서 들것만 들여보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김광석은 절뚝이는 상태로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와 후반전 교체 선수 김현과 자리를 바꿔 공격수 역할을 임시로 맡았다. 86분에는 강윤구의 왼쪽 크로스를 받아 스탠딩 헤더 슛까지 날릴 정도로 김광석의 부상 투혼은 인천 유나이티드 FC 동료 선수들을 더 단단하게 묶어주었다.
수원 FC, 빅 버드 더비 매치 완승으로 '3위'
인천 게임보다 30분 뒤에 빅 버드에서 시작된 수원 더비 매치에서도 놀라운 골이 터져나왔다. 51분에 홈 팀 수원 블루윙즈 수비수 장호익이 두 번째 경고를 받고 퇴장당하는 변수가 나왔지만 수원 FC의 조직력은 그곳의 원래 주인이 누구인지 헷갈리게 만들 정도로 탄탄했다.
수원 블루윙즈 멤버들이 10명으로 줄고 6분 뒤 수원 FC의 오른쪽 코너킥 세트 피스 기회에서 믿기 힘든 슈퍼 골이 터져나왔다. 수원 FC 간판 미드필더 이영재가 오른쪽 측면에서 왼발로 감아올린 공을 센터백 잭슨이 가볍게 점프하며 왼발 힐킥으로 꽂아넣은 것이다. 잭슨 본인도 놀랐고 골키퍼 노동건이 몸을 날렸지만 도저히 타이밍과 방향을 잡아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작품이었다.
이 골을 도운 이영재는 80분에 수원 블루윙즈가 자랑하는 수비수 헨리를 따돌리며 왼발 대각선 슛까지 꽂아넣었다. 그리고 양동현이 후반전 추가 시간 3분이 다 되어갈 시간에 후반전 교체 선수 김준형의 오른쪽 크로스를 침착하게 잡아놓고 왼발로 쐐기골을 터뜨렸다. 개인 통산 99번째 득점 기록이어서 동료들의 축하가 빗발쳤다.
인천 유나이티드와 수원 FC는 이렇게 각각 완승을 거두고 순위표를 또 한 번 뛰어넘어 3위(수원 FC 26게임 37점)와 4위(인천 유나이티드 FC 25게임 36점) 자리에 나란히 섰다. 시즌 초반만 해도 두 팀이 최하위를 다투고 있었기에 이는 더 놀라운 반전 드라마의 절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근 6게임 기록만 봐도 수원 FC와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쌍둥이 팀처럼 4승 1무 1패(승점 13)로 승무패 순서까지 똑같다. 바로 위 전북 현대도 4승 1무 1패로 13점을 얻었고, 1위 울산 현대가 최근 6게임 무패(4승 2무, 14점)로 가장 잘 나가고 있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들 두 팀의 상승세가 놀랍다.
이제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오는 일요일(29일) 오후 6시 울산 문수경기장으로 찾아가 1위 울산 현대를 만나며, 수원 FC는 그보다 하루 전 전주성으로 가서 2위 전북 현대와 캐슬 더비를 펼친다.
2021 K리그 1 결과(8월 25일, 왼쪽이 홈 팀)
★ 인천 유나이티드 FC 2-0 대구 FC [득점 : 송시우(23분,도움-강윤구), 아길라르(64분)]
★ 수원 블루윙즈 0-3 수원 FC [득점 : 잭슨(57분,도움-이영재), 이영재(80분), 양동현(90+3분,도움-김준형)]
- 수원 블루윙즈 DF 장호익 경고 누적 퇴장(51분)
◇ 2021 K리그 1 현재 순위표
1 울산 현대 26게임 51점 14승 9무 3패 43득점 28실점 +15
2 전북 현대 24게임 46점 13승 7무 4패 44득점 23실점 +21
3 수원 FC 26게임 37점 10승 7무 9패 37득점 38실점 -1
4 인천 유나이티드 FC 25게임 36점 10승 6무 9패 29득점 32실점 -3
5 포항 스틸러스 25게임 35점 9승 8무 8패 27득점 28실점 -1
6 수원 블루윙즈 26게임 34점 9승 7무 10패 33득점 33실점 0
7 대구 FC 25게임 34점 9승 7무 9패 28득점 31실점 -3
8 제주 유나이티드 25게임 28점 5승 13무 7패 27득점 30실점 -3
9 광주 FC 26게임 28점 8승 4무 14패 25득점 31실점 -6
10 강원 FC 24게임 27점 6승 9무 9패 26득점 29실점 -3
11 성남 FC 25게임 26점 6승 8무 11패 21득점 30실점 -9
12 FC 서울 25게임 25점 6승 7무 12패 24득점 31실점 -7☞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