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방송된 KBS <다큐 인사이트> '다큐멘터리 국가대표'편.
KBS
일찌감치 알아봤다. '다큐멘터리 국가대표'편을 연출한 이은규 PD는 지난해 '개그우먼' 편을 연출해 호평을 이끌어 낸 바 있다(관련 기사 :
박나래도 들었던 의아한 한마디, '개그콘서트' 몰락의 '단서').
"내가 잘해야 후배들도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더 악착같이 뛰어다녔다던 KBS 공채 1기 개그우먼 이성미는 왜 "여자 개그맨들이 (남자들보다 더) 몸을 사리지 않"을 수밖에 없는 지를 역설했다. 그를 포함해 역시나 6인의 선후배 개그우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어느 곳보다 차별적인 시선이 만연한 방송국에서 여성 개그우먼들이 어떻게 명멸해갔고 또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들려주는 생생하고 가슴 아픈 생존기이자 투쟁기였다.
'다큐멘터리 국가대표'편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이미 세계를 제패하고 자기 종목에서 일가를 이룬 여자 선수들이 들려주는 생존기와 투쟁기가 전부가 아니었다. 여전한 차별과 여성혐오가 만연한 현실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는 한편, 변화 지점들을 모색하고 그 변화의 가치가 여성선수들에게, 여성들에게, 그리고 사회 전체에 어떤 의미인지를 역설하고 있었다.
'김연경 보유국'이란 유행어를 낳은 김연경 선수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풍조를 바꾸고 싶었다고 했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누군가가 얘기해야 하는데,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라던 김연경 선수의 말은 단순해서 더 투명한 진실이었다.
박주미 KBS 스포츠 기자의 입을 빌린 제작진은 그런 김연경(과 선후배들)이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말하고 있었다. 남자팀과 달리 여자팀이 국제무대에서 활약해도 별다른 보상이나 대우를 해주지 않았던 오래된 관행을 김연경의 활약과 함께 깨뜨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여자배구는 이제 '올림픽 4강' 신화를 쓰고 남자배구 못지않은 인기를 얻게 됐다.
그런 선수는 또 있다. 역시나 해외무대에서 활약하는 영국 첼시FC 위민 소속 지소연 선수. 15살 때 한국 남녀 축구 통틀어 A매치 최연소 출전, 최연소 득점을 필두로 최다 득점(58점) 등 신기록을 죄다 갈아치운 지소연 선수는 영국 진출 이후에도 잉글랜드 프로축구선수협회 2015 올해의 선수상 등 화려한 이력을 지닌 현역이다.
영국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 속 주인공처럼, 지 선수 역시 영국에서조차 차별적인 환경과 싸워야 했다. 여자축구에 무관심한 한국과는 달랐지만 영국리그에도 분명한 차별이 존재했다. 첼시 같은 부자 구단도 다를 바 없었다. 지 선수의 표현에 따르면 "공터 같은 곳에서" 연습이나 경기를 해야 했고, 남녀 선수 간 연봉 격차는 민망한 수준이었다. 150여개 팀이 융성했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50년 간 여자축구가 금지됐던 여파일 수 있었다.
우리는 여성과 남성과 같이 축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겁니다.
(1992년 출범한 첼시FC 위민의 창단 당시 슬로건)
스타 플레이어인 지소연 선수 역시 적극적으로 변화를 요구했다고 한다. "인조 잔디 안 된다", "여자 선수들도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상식적인 요구였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매년 하나하나 바뀌어 나가는 걸 보면서 "계속 목소리를 내고 바꿔나가야 할 것 같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런 노력은 전체 파이를 넓히는 발판이 됐다. WSL(잉글랜드 여자축구 프로리그)은 2011년 출범 이후 평균 관중이 5배 성장했다. 그런 여성 스타플레이어들의 노력이 팬들을 움직이고 이를 통해 산업 전체나 관련 제도의 변화까지 이끌어냈던 것이다.
또 한국 여자 축구선수들에게 귀감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지 선수를 포함해 이제 WSL에는 총 4명의 한국 여자 선수가 뛰고 있다. 결과적으로, 김연경 선수나 지소연 선수 모두 한국을 넘어 세계 리그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 넣는 여성 선수로 거듭난 셈이다.
이퀄 플레이, 이퀄 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