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의 승리를 보도하는 국제축구연맹 공식 웹사이트
ⓒ FIFA
브라질과 프랑스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한순간도 졸지 않고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지네딘 지단의 플레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이기고 지느냐는 뒷전이었다.

그만큼 이날 지단이 보여준 플레이는 승패를 뛰어 넘을 만큼 우아하고 아름다웠으며 '예술의 나라'라고 불리는 프랑스 그 자체를 대변하는 듯했다.

이 34살의 노장선수가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기술과 투혼은 세계랭킹 1위의 브라질 선수들에게 한 수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지단을 앞세운 프랑스는 이번 대회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인 브라질을 1-0으로 물리치고 4강에 진출했다.

지단은 1972년 알제리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국에서 열린 '유로 1984'(1984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볼보이로 활동하며 당시 '프랑스의 상징'이었던 미셸 플라티니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장면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지단은 그로부터 14년 뒤 플라티니보다 더 위대한 업적을 세우게 된다.

일찌감치 '플라티니의 후계자'라는 찬사를 받으며 프랑스 축구를 이끌어갈 스타로 떠오른 지단은 역시 조국에서 열린 1998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혼자 2골을 터뜨리는 등 대활약을 펼치며 프랑스에게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트로피를 안겨줬다.

이후 '유로 2000'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명실 공히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지단은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의 유니폼을 입고 2001~2002년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축구선수로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뤘다.

안정된 볼 키핑과 상대의 허를 찌르는 패스, 탁월한 골 결정력은 물론이고 경기 자체를 뒤집을 수 있는 능력까지 지닌 지단은 펠레, 마라도나, 베켄바워처럼 세계 축구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이 된 것이다.

세월의 벽을 비켜간 지단

그러나 모든 영웅들이 그랬듯 지단 역시 세월의 벽을 비켜가지는 못했다. 화려한 전성기를 보내며 나이 드는 줄도 몰랐던 지단은 어느새 서른 중반의 노장이 돼 있었다. 그가 무기력한 플레이로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숙일 때마다 '이제 늙었다'는 손가락질을 받아야했다.

지칠 줄 모르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젊은 선수들 앞에서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체력으로 결국 '떠날 때가 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단은 결국 지난 4월 "2006 독일월드컵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자신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였을까. 아니면 브라질과 경기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투혼 때문이었을까. 이날 지단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예전의 전성기로 돌아간 것처럼 화려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그라운드를 지배했다.

양발은 물론이고 머리와 가슴을 이용한 정교하고 안정적인 볼 컨트롤은 '기술의 달인'이라 자부하는 브라질 선수들마저 농락했으며 앙리의 결승골을 이끌어낸 프리킥은 미사일처럼 정확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그의 얼굴을 떠날 줄 모르는 중계 카메라가 이날 그가 보여준 활약을 말해줬다.

프랑스는 브라질을 물리치고 월드컵 4강에 진출했으며 만약 지단이 은퇴를 번복하지 않는 한 축구역사에 길이 남을 그의 플레이를 '생방송'으로 지켜볼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 많아봤자 두 경기 밖에 남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뒤 브라질 선수들과 축구팬들이 흘리는 눈물이 그다지 안타깝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이로써 지단이 뛰는 경기를 최소한 한 번 더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2006-07-02 06:51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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