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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를 위해 뭐든 한다... 진짜 '덕후'에게 필요한 덕목

[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102] tvN <선재 업고 튀어> 솔이 보여주는 덕후의 심리학

24.05.03 14:38최종업데이트24.05.0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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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나는 30년 넘게 한 가수를 응원하고 있는 팬이다. 그동안 나는 이런 여러 말들로 불려 왔다.
 
'오빠 부대', '빠순이', '덕후'
 
이 말들엔 팬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담겨 있다. '오빠 부대'가 팬을 개인이 아닌 한 집단으로 인식했다면, '빠순이'로 불리던 시절에는 팬 활동을 청소년기의 일탈 혹은 소녀들의 전유물로 여기며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반면 현재의 '덕후'는 성별과 나이에 관계없이 각 개인이 다양한 의미를 부여해 몰두하는 활동으로 비교적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렇게 팬에 대한 시선은 많이 달라졌지만 자신이 '최애하는' 스타의 모든 것을 알고 싶고, 그들의 성공을 바라는 팬의 간절한 마음만은 그대로일 테다.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는 이런 '덕후'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 속 솔(김혜윤)은 자신의 최애인 그룹 이클립스의 멤버 선재(변우석)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자, 그를 살리기 위한 시간 여행을 한다. 과거로 돌아간 솔은 자신의 이미지나 삶이 망가지는 것은 개의치 않고 오직 선재를 살리는 데만 집중한다. 과장된 솔의 모습을 보면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어쩌면 이런 모습이 덕후들의 간절한 마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솔이 보여주는 덕후의 마음에 대해 살펴본다.
  

'덕후' 솔이 스타 선재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를 담은 <선재 업고 튀어>의 포스터 ⓒ tvN

 
어떻게 덕후가 되는 걸까?
 
솔은 고3 때 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가 되고 만다. 삶의 의욕을 잃고 병실에 누워지내던 그때 라디오 방송의 이벤트로 우연히 걸려 온 선재의 전화를 받는다.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솔에게 라디오 방송의 DJ는 운동화를 선물로 보내주겠다고 하고 더 큰 절망감에 빠진다. 그때 선재는 방송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살아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고맙다고 할 거예요. 곁에 있는 사람이. (...) 그러니까 오늘은 살아봐요." (1회)
 
이에 솔은 묵혔던 눈물을 쏟아내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아마도 솔에게 선재는 일종의 '구원자'였을 것이다. 그렇게 솔은 '입덕'한다.
 
누군가의 '덕후'가 되는 데는 저마다의 개인적인 동기와 심리적 역동이 작용한다. 하지만 가장 보편적으로 심리기제는 '동일시'와 '이상화'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대방을 나인 것처럼 느끼는 '동일시'는 스타의 성취를 마치 나의 성취로 받아들이게끔 한다. 이에 팬들은 스타의 성공을 위해 음원을 스트리밍하고, 앨범을 수십 장씩 사기도 하면서 스타를 성공시키기 위해 애를 쓴다. '이상화'는 자신이 되고 싶은 '이상적 자기'를 스타에게 투영할 때 발생한다. 이런 덕후의 경우 자신이 응원하는 스타의 패션이나 스타일을 따라 하고, 스타를 닮기 위해 노력한다. 해외의 한 팬이 BTS의 지민처럼 성형수술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이것이 바로 이상화의 극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속 솔은 방을 온통 스타의 사진으로 가득 채우며 이 모든 것을 매우 소중히 다룬다. 또한, 그룹 내 다른 멤버의 팬이 선재를 비방하자 이에 분노하며 선재를 보호하려 들고(1회), 그가 성취한 것들을 떠올리며 행복해한다. 이런 모습은 이상화보다는 동일시에 가까운 팬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솔의 덕질에는 독특한 면이 있는데 바로 '최애'가 구원자의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재 덕분에 살게 된 솔에게 선재는 "늘 고마운" 존재였을 테다. 때문에 선재의 자살은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살라'고 한 구원자가 자살했다는 건 구원의 진정성이 훼손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테니 말이다. 더욱이 구원자와 동일시해 그를 응원하고 있던 솔에게 선재의 자살은 자신의 삶의 의미마저 약화시키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솔은 과거로 돌아갔을 때 온갖 망신을 당하면서도 어떻게든 선재를 살리기 위해 애를 쓴다. 그를 살리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삶의 의미를 되살리는 것과 같은 의미였을 것이다.
 
유사 사회관계 그리고 유사 연애
 

선재와 솔은 서로가 과거를 공유했음을 알게 된 후 진짜 연인이 된다. ⓒ tvN

   
이렇게 동일시와 이상화, 그리고 저마다의 이유로 '입덕'을 하게 되면 팬은 스타와 독특한 관계를 맺는다. 이를 미디어 심리학에서는 '유사 사회관계'라고 한다. 유사 사회관계에는 양방향으로 소통하는 일반적인 사회관계와는 달리, 일방향의 관계만이 존재한다. 팬은 스타의 모든 것을 알고 그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느끼지만, 스타는 팬의 개인적인 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팬은 미디어를 통해 스타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고 여러 가지 감정들을 갖게 된다.
 
솔 역시 그렇다. 솔은 선재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그에게 정서적인 친밀감을 느낀다. 이런 '유사 사회관계'에 익숙해진 솔은 이 마음을 지닌 채 과거로 돌아가 고등학생 선재를 만났을 때에도 이와 비슷한 관계를 맺는다. 바로 앞집에 사는 친구 같은 존재인데도 선재의 방에 들어가면 신기해하고,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지만, 선재에게 스스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리려 하지 않는다. 여전히 유사 사회관계 속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솔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기를 원하는 선재의 마음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렇게 팬들이 유사 사회관계 안에서 스타를 좋아하다보면 일종의 '연애 감정'이 싹트기도 한다. 이는 실제 연애는 할 수 없지만,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유사 연애 감정'이라 할 수 있다. 선재를 '스타'로만 바라볼 때 솔은 자신의 연애 감정을 '실제'라 느끼지 못한다. 과거로 돌아가 고등학생 선재가 자신에게 고백을 했을 때도 "왜 선재가 나를 좋아하는지" 의아해할 뿐 이를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는 솔이 유사 연애 감정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솔과 선재가 진짜 연인이 되는 것은 과거를 바꾸고 다시 현재 시점으로 돌아온 8회부터다. 이땐 두 사람이 과거를 공유하는 '진짜 아는' 사람이 되어 만난다. 이 시점의 솔은 선재의 팬이 아닌 것으로 묘사되는데(7회), 이는 솔이 유사 사회관계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서로가 '아는 사람'이 될 때 유사 연애가 아닌, 진짜 사랑을 하게 된다.
 
긍정적인 덕질과 부정적인 덕질
  

솔은 선재로 인해 삶의 의미를 되찾고, 자신의 삶을 유지하면서 힘껏 선재를 응원한다. ⓒ tvN

 
그렇다면 '덕질'은 한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모든 현상이 그렇듯 덕질 역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한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응원하는 스타의 성취는 덕후들의 자존감을 향상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또한, 일상의 번잡함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는 '긍정적 중독'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존감 향상과 즐거움, 스트레스 해소의 원천이 오직 '덕질'에서만 올 경우, 스타가 무너질 때 덕후 자신마저도 무너져내리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덕후가 삶의 주체성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가 아닐까 싶다. 자신의 삶의 주체가 스타가 아닌 '나'임을 잃지 않는다면 덕질은 삶에 생기를 더해주는 긍정적인 원동력이 될 테다. 1회 현재 시점의 솔은 선재의 콘서트 날 자신이 원하던 직장에서 면접을 보러오라고 하자, 면접을 보러 간다. 최애의 콘서트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삶 또한 지켜가는 건강한 팬의 모습이었다. 이때 솔은 선재로 인해 생기를 얻는다.
 
반면, 과거로 돌아간 솔은 오직 선재에게만 몰두한다. 이 시기의 솔은 학교에서 위태해지고, 다른 관계도 제대로 맺어가지 못한다. 어른 솔은 자신의 주체성을 유지한 채 덕후로서의 정체감 또한 지켜가지만, 과거의 솔은 주체성마저 잃은 것이다. 어른 솔과 같은 덕후는 활동을 즐기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겠지만 과거의 솔처럼 계속 지낸다면 자신의 삶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덕후'가 청소년들의 전유물이 아닌 삶의 전반에서 중요한 '부캐'로 작용하고 있는 요즘. 덕후라면 거리를 두고 내 마음을 바라보는 것이 더욱 필요할 듯하다. 내가 덕후가 된 심리적 기제를 알고, 덕후와 스타의 관계적 특징을 이해하며 그 한계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나의 주체성을 잃지 않고, 더 오래도록 스타를 응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때 '덕후'로서의 정체감은 긍정적인 부캐가 되고, 이로 인해 삶 또한 풍성해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신이 누군가의 덕후라면, <선재 업고 튀어>의 솔을 관찰하면서 각자의 '덕후'로서의 마음 또한 비춰보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선재업고튀어 김혜윤 변우석 덕후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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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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