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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세 초고령자의 등산이 안전한 이유, 이들 덕입니다

90세 전후 고령자 산행 돕는 '안전 별동대', 둘레길조 편성... 사고 막으려는 감사한 노력들

등록 2024.04.27 19:06수정 2024.04.28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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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앉아 있는 한아무개(91) 선배가 후배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혁진

 
날씨가 좋아지면서 많이들 산을 찾는 계절이 됐다. 건강을 챙기려는 사람들로 산이 붐비고 있다. 내가 속한 고등학교 동문산악회도 5월 도봉산 산행을 준비하고 있다.
     
홀로 산행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이 고교 동문회를 따라 단체 산행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선후배들로부터 안전산행의 기초를 배울 수 있었고, 개인산행의 무료함도 달랠 수 있었다.


고령회원 많은 동문산악회, 평균 나이가 50세   

정기적인 동문산행을 통해 선후배의 끈끈한 우정과 의리도 새삼 확인했다. 나처럼 60세 즈음 시작해 뒤늦게 등산의 묘미를 느끼는 회원들이 많다.  
    
한 달에 한번 건강을 챙기면서 얼굴 보는 재미와 즐거움으로 산악회에 온다는 동문들이 많다. 나도 어느새 그런 부류가 되었다.
     
함께 산행을 하면 외로움은 멀리 달아난다. 힘들어도 이 순간의 희열을 느끼기에 자꾸 산을 찾는지 모른다. 이구동성으로 다들, 산에 가면 잃었던 건강도 좋아진다고들 말한다.
      
단체산행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집행부가 매번 사전답사를 진행하고 산행 후 뒤풀이 장소까지 섭외하는 등 일손을 돕고 있다.
     
동문산악회가 자랑하는 20년 안전산행 기록은 이들 집행부의 노고 덕분이다. 이런 노하우가 있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행 때마다 50여 명이 모인다.  
    
그런데 동문산악회가 급격한 고령화를 맞고 있다. 최근 대학교수로 재직 중인 후배가 산악회에 들어와 물건 나르기, 행사준비 등 잔심부름을 도맡고 있는데 그의 나이가 40대 초반이다.
     
특히 여기엔 60세를 넘어 70세 전후 회원들이 많다. 80세 전후와 90세 이상 선배도 여럿 있다. 산행하는 회원들의 평균 나이가 50세에 가깝다.
      
이러다 보니 몇 해 전부터 집행부는 '산행조'와 '둘레길조'로 나눠 행사를 진행한다. 둘레길조는 끝까지 산에 오르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는 코스로 고령자를 배려한 것이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무리하면 안 되는 회원들에게도 둘레길조를 추천하고 있다. 둘레길조에 참가하는 동문은 처음에 몇 명 안 됐지만 최근 인원이 늘고 있다. 노화로 체력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웬만하면 둘레길 코스를 선택하고 있다.  

안전사고 우려해 둘레길 코스 편성... 등산 돕는 '별동대'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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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자락길의 메타세콰이어 ⓒ 이혁진


그런데 집행부를 이끄는 후배들에게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매월 산행 때마다 참가하는 90세 전후 초고령 대선배들 덕이다.
     
처음 산악회를 조직할 때부터 산행을 해왔던 베테랑 원로선배들이, 이제는 나이 들어가면서 안전사고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집행부 후배들은 혹시나 원로선배들이 산행하면서 낙상이나 부상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실제 산행 중 넘어지거나 힘들어 부축해 하산하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만의 하나 안전사고로 원로들의 산행을 만류할 수도 있는 처지, 집행부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최고령 선배들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별동대'를 올해 조직했다.
     
이른바 '안전요원'들을 배치한 것이다. 원로선배들의 산행을 안내하고 돕는 고된 역할이다. 이 별동대원들은 산행의 즐거움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
     
후배들의 이런 고민과 결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령의 선배를 옆에서 밀고 끌어주는 후배 모습이 어느 때엔 애처롭게 보인다. 간간이 쉬면서 선배의 사진을 찍어주며 함께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
     
후배들의 배려와 희생을 보면서, 전장에서 부상당한 부대원을 돕는 전우애가 저절로 연상됐다. 내가 동문산악회를 애써 자랑하는 이유이다.
     
언젠가 '불암산'에서 만났던,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인들의 산행을 돕는 자원봉사자들도 생각났다. 우리 동문산악회가 지금 그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원로회원들은 동문산악회 산행일을 기다리며 한 달을 보낸다고 한다. 그리고 산행일에 맞춰 산에 오시는 것이다.
     
이들 원로선배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동문과 후배들을 격려하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솔직하고 인간적인 모습도 후배들 마음을 편하게 한다.
     
고령선배의 가족들은 혹시 모를 걱정에 이들이 산행하는 걸 말리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선배들이 산악회에 오는 것은, 산에 오르는 것보다 사랑하는 후배들을 보는 게 반갑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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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보내온 동문산악회 최고령 한아무개 선배(91세) 사진 ⓒ 이동수

 
엊그제 후배가 보내온, 산악회 최고령 원로선배(91세)가 찍힌 사진 속 모습이 화사하다. 지난 4월 초 정기산행에서 안산 자락길 '튤립 동산'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다. 나는 그 추억을 떠올리다 새삼 울컥했다.
     
사진을 보고 과거 동문산악회를 이끌었던 전 회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동문산악회가 단순히 건강과 취미로만 모인 거라면 과연 원로선배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산악회에 동참하실까. 여기에는 그만한 동지애와 후배사랑이 숨어 있는 것 같다."
#동문산악회 #안산자락길 #튤립동산 #초고령선배 #안전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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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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