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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울린 옥자 할머니 사연... "아버지 나 얼굴 알아지쿠과"

5살 때 부모 잃은 할머니 사연 소개돼... AI로 아버지 생전 모습 복원, 과정 영상 상영

등록 2024.04.03 18:10수정 2024.04.0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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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주년 4.3 희생자 추념식 도중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신 눈물을 닦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이날 이 대표를 비롯해 유가족과 참석자들은 제주 4.3 당시 아버지를 잃어버린 김옥자 할머니의 사연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3일 봉행된 4.3 추념식에서 제주 출신 배우 고두심씨는 김옥자 할머니의 사연을 아래와 같이 소개했습니다. 
 
1948년 제주는 점점 찢기는 상처와 고통으로 평온했던 섬 전체가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두려움 속에 정체된 시간처럼 멈춰버린 듯했지만, 가족들은 그저 고통의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습니다.

이후 늦가을 소개령이 내려지자 옥자 할머니의 가족들은 제주 화북리 곤을동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며칠 뒤 옥자 할머니의 아버지는 외양간에 두고 온 소를 살피러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갔다가 토벌대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옥자 할머니의 어머니도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다섯 살 나이에 홀로 남겨진 옥자 할머니의 70여 년은 흐르지 않는 정지된 시간이었습니다. 4.3의 피바람은 이렇게 긴 세월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다섯살 옥자인 팔순 노인을 남겨 놓았습니다. 

'가매기 모른 식게'... 귀신도 모르게 몰래 제사를 지내야 했던 도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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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6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에서 김옥자 할머니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재현한 자신의 아버지 영상을 보고 손녀와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김옥자 할머니의 손녀 한은빈 양은 무대에 올라 할머니의 사연을 전했습니다. 한 양은 "할머니는 새해 달력을 걸 때면 '음력 동짓달 스무날 찾아보라'라고 하십니다. 그날이 바로 '가매기 모른 식게'라고 죽은 이의 영혼을 인도하는 까마귀조차 모르게 지내는 제삿날이라는데, 바로 할머니의 아버지, 제 증조할아버지의 제삿날"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고두심씨가 말한 '소개령'과 '한 양이 설명한 '가매기 모른 식게'는 4.3의 아픈 역사를 그대로 표현한 말입니다. 소개령은 토벌대가 무장대를 강경진압하기 위해 한라산 주변 중산간 마을 주민을 해안가로 강제 이주시키고 마을 수십 개를 불태운 초토화 작전이었습니다. 당시 한라산 주변은 1954년까지도 입산금지였습니다. 옥자 할머니의 아버지는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 갔다가 잠시 소를 돌보러 갔다가 토벌대에 의해 학살당한 것입니다. 

'가매기 모른 식게'는 4.3 때 죽은 사람은 모두 빨갱이라는 보수 정권의 낙인과 연좌제 때문에 제사조차 마음대로 지내지 못해 귀신도 모르게 제사를 지내야만 했던 제주 도민들의 아픔이 그대로 묻어 나오는 제주말입니다. 

그리운 아버지... 아버지 나 얼굴 알아지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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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리워 하는 김옥자 할머니 ⓒ 유튜브 갈무리

 
"아버지 나 얼굴 알아지쿠과. 나는 아버지 얼굴 몰라. 아버지가 나 불러도 모를거고. 나도 아버지 부르고졍 해도 못 부르고…."(아버지 제 얼굴 아시겠어요. 나는 아버지 얼굴 몰라, 아버지가 나 불러도 모를거고. 나도 아버지 부르고 싶어도 못 부르고)


다섯 살 때 부모를 잃은 옥자 할머니는 아버지의 얼굴을 모릅니다. 옥자 할머니는 비석 앞에서 아버지가 자신을 불러도 얼굴을 모르니 모를 거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옥자 할머니는 부모 없이 살아온 세월이 너무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왜 자기만 남겨두고 떠났느냐며 마치 다섯 살 아이처럼 투정도 부립니다. 

손녀 한은빈 양은 "할머니가 5년 전 곤을동 잃어버린 마을 터를 다시 찾아가셨습니다. 말 한마디 없이 한참을 둘러보고 돌아서며 소나무 앞에서 '저 소낭(소나무)은 그때도 딱 저만큼 커났져(컸었다)'라고 하셨다"면서 "저희 할머니의 시간은 여전히 5살에 머무르고 있지만 그리움에 사무친 아버지 얼굴은 그 시간 속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말 아닐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추념식에는 특별한 영상이 상영됐습니다. 영상엔 유족 증언 등을 바탕으로 최첨단 AI 기술을 이용해 옥자 할머니의 아버지 생전 모습을 복원하는 과정과 복원된 아버지 사진을 갖고 4·3평화공원을 찾은 할머니의 모습이 담겼습니다. 옥자 할머니의 사연과 영상이 소개되는 동안 유가족은 물론이고 많은 참석자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옥자야 아버지여. 하영(많이) 기다렸지. 이리 오라 우리 똘(딸) 얼마나 컸는지 아버지가 한 번 안아보게"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 자식을 잃은 수많은 제주도민들에게 4.3은 사상과 이념의 대결이 아니라 그리운 이를 잃어버린 아픔과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43희생자추념식 #이재명 #김옥자할머니 #제주도 #43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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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언론 '아이엠피터뉴스'를 운영한다. 제주에 거주하며 육지를 오가며 취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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