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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이야기, 지겨울 정도로 계속 돼야 한다"

[인터뷰] < 1980 > 강승용 감독이 영화에 담은 진심

24.03.28 18:02최종업데이트24.03.29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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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1980 >을 연출한 강승용 감독.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약 30년간 영화 <테러리스트> <실미도> <왕의 남자> <사도> 등의 미술을 책임졌던 강승용 감독이 장편 영화 연출로 데뷔, 지난 27일부터 관객과 만나고 있다. 소재는 다름 아닌 5.18 항쟁이다. 역사 및 시대극을 현대 영화로 소환하는 데에 헌신해 온 그는 "어떤 원대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닌 약간의 부채의식이 있었던 것"이라며 연출의 변을 밝혔다.
 
한국전쟁 때 공산당을 피해 피난 온 후 광주에 정착해 중국 음식점을 차린 철수 할아버지(강신일), 그의 며느리 철수 엄마(김규리)와 세입자 영희 엄마(한수연) 등이 광주의 '그날'을 경험하며 벌어지는 비극. 영화 < 1980 >은 광주 소시민들이 비극의 한복판에서 어떤 경험을 했고, 정서적 변화를 겪는지를 치밀하게 그려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실제 유족, 피난민의 사연이 만나다
 
중국 음식점 사장과 그의 3대손이 등장한다는 설정은 강 감독이 평소 알고 지낸 지인의 사연에서 비롯됐다. 여기에 손주 철수와 그의 단짝 영희의 시선으로 어른들을 바라본다는 설정은 항쟁 당시 외신기자가 목숨 걸고 찍은 사진으로 잘 알려진 '꼬마상주' 조천호씨가 모티브가 됐다. 강승용 감독은 조천호씨 및 모친을 접촉했고, 유족들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시나리오를 완성해갔다고 한다.
 
"현대물보단 시대극을 많이 하다 보니 지방 촬영을 많이 다니곤 했다. 시대극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주로 전라도였는데 그 인연으로 현지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분이 생겼다. 한국전쟁 때 북한에서 쪽배를 타고 와 광주로 피난했고, 중국집을 운영하고 있는 분이다. 그분이 겪은 4.19, 5.16 등 한국의 현대사 이야길 듣다가 언젠가 시나리오를 써보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지금에야 < 1980 >으로 개봉했지만 원래 제목이 <화평반점>이었다. 그리고 애초엔 극영화가 아닌 뮤지컬 영화로 구상했었다.
 
조천호씨와는 통화를 몇 번했고, 그의 어머님은 직접 찾아뵈었다. 그간 큰일을 겪으셔서 사람들 접촉을 꺼려하시더라. 사찰을 당한 적도 있고, 아무래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분들을 만나려 했을 테고 상처도 받으셨을 것이라 생각했다. 통화하면서 마음을 열어주셨고 그 당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전남도청에 갔다가 살아나오신 분들, 다른 유족분들 이야기도 들었다. 공통적으로 5월 27일 이후 2, 3년이 더 무서웠다더라. 큰 트라우마가 남아서 군인만 봐도, 국방색만 봐도 큰 공포였다고 한다."

 
그간 5.18을 다룬 여러 형태의 영화가 있었지만 강 감독은 "무엇보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고통이 중심이었다"고 말했다. "외부에서 바라보거나 어떤 객관적 시점이 아닌 내부에서 직접 겪고 말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며 그는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유족분들에게 여러 차례 의견을 구했다. 그분들께서 격려해주셔서 지금의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2021년 목포 구도심에 촬영된 <1980> 화평반점 세트 ⓒ 성하훈


인천에서 태어났고, 구미에서 유년 및 청소년기를 보낸 감독은 여느 타 지역 사람들처럼 광주의 그 일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한다. 성인이 되어, 1987년 6월 항쟁 당시 군복무를 하기까지 조각나 있던 역사의 사실을 알게 됐고, 일종의 부채의식으로 돌아왔다. 강 감독은 "그래서 영화적인 영웅을 만들기 보다는 이웃집 사람들 같은 모습으로 그려내는 게 중요했다"고 밝혔다.
 
"직접 그분들 만나면 옆집 아저씨, 할머니 같거든. 우리가 아는 5.18의 그걸 말하기보다는 제겐 어떻게 그런 고통을 겪었는데 40년을 버텼는지가 더 크게 다가왔다. 평생의 운명, 생각을 좌우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으셨는데 어떻게 가슴에 묻고 사셨을까? 그분들이 살아온 심정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예산이 많이 없어서 영화적으로 많이 타협하며 만들었지만, 끝까지 진실과 진심은 놓지 않으려 했다. 영화적으로 비판은 받을 수 있더라도 진심만큼은 지키려 했다. 배우들에게도 과잉 표현을 조심하면서, 그 이야기 안에 잘 있어 달라고 말씀드렸다. 살아남은 분들에게 누를 끼치기 싫어서였다."

 
배우들의 헌신
 
이 대목에서 강승용 감독은 함께 한 배우 및 스태프의 헌신을 짚었다. 철수 할아버지 역의 강신일을 두고 그는 "제가 오히려 도움을 받을 정도로 세밀하게 역할을 준비해 오셨다"고 말했고, 철수 엄마 김규리에 대해선 "전체 분량의 70% 이상이 눈물을 흘리는 신이었는데, 매 순간 진심으로 하셔서 탈진하기 직전까지 우셨다"고 설명했다.
 
"영화에 담기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다. 표현을 잘 못 하지만 짜장면으로 자기 자식들과 그 친구들을 독려하고 싶었던 철수 할아버지도 그렇고, 그 당시 마음은 도청에 따라가고 싶었지만 집을 지키는 걸 큰 미덕처럼 생각했던 철수 엄마도 나름 기구한 사연이 있었다. 철수 삼촌 역의 백성현 배우는 20여 일의 촬영 동안 목포에 내려와 살았는데 밤새 많은 이야길 했다. 실제 본인 가족 중 시국에 관심이 없다가 공권력에 개인들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며 투사처럼 행동한 분이 계시더라. 그 모습을 롤모델 삼아 삼촌 연기를 했다고 들었다.
 
영희 엄마 역의 한수연 배우는 예전에 리포터로 활동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5.18과 8.15 관련 방송에 리포터로 나오기도 했는데, 언젠가 그분이 독립운동가 외손녀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번 영화에선 약간 악역일 수도 있는데, 철수네 짜장면집 인근에 미용실을 차린 설정은 전두환 아내인 이순자가 실제로 미용실을 열었다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영화 < 1980 > 관련 이미지.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감독의 진심과 배우들 헌신 덕일까. < 1980 >은 한 펀딩 사이트를 통해 목표액의 850%가 넘는 금액을 모아 무사히 개봉할 수 있었다. 약 8억 원의 초저예산임에도 펀딩 금액으로 배급 및 홍보 과정에 숨통이 트일 수 있었다.
 
강승용 감독은 "< 1980 >도 그렇지만, 5.18 관련 작품은 끊임 없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 영화가 많이 부족할 수 있지만, 5.18를 조명하는 시도는 지겨울 정도로 계속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정의가 만들어야지 정파적 이해로 가면 안 된다. 특히나 요즘 들어 부쩍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5.18 또한 있는 그대로를 보지 않으려 하는 움직임이 강하다. 저 말고도 다른 분들이 계속 복기했으면 좋겠다. 저 또한 왜곡된 정보를 들으며 자라온 사람으로서 이런 시도가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원하는데 편법을 하는 사람들, 불법을 하는 사람들이 잘사는 걸 보면 분명 정상은 아니다. 젊은 세대에게 이런 유산을 물려주는 건 아닌 것 같다."
1980 518 전두환 광주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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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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