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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헌법 개정 청원운동에 앞장

[김삼웅의 인물열전 - 딸깍발이 선비 이희승 평전 31] 사회원로 활동 ①

등록 2024.03.30 09:18수정 2024.03.3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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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유신 공포 3년 기념식. 1972년 10월, 유신헌법이 공포되며 엄숙함의 시대가 열렸다. ⓒ Wikimedia Commons

 
이희승은 대학과 연구소에서 학문을 연구하는 데에 온 힘을 쏟았다. 그즈음 한국 사회에서는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거듭되는 정치적인 격변에 국민은 갈피를 잡기 힘들 지경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헌법을 고쳐 3선개헌(1969)을 단행하고, 제8대 대통령에 취임한 지 1년 반 만인 1972년 10월에 또다시 유신 쿠데타를 감행하여 독재권력을 강화했다. 자신의 장기 집권과 지배체제 강화를 위해 10월 17일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 해산과 정당 및 정치활동의 중지, 그리고 전국 대학에 휴교령을 내렸는데, 이는 초헌법적인 비상조치로 '10월 유신'이라고도 부른다. 5·16 쿠데타에 이은 두 번째 쿠데타였다.

국민의 저항은 거셌다.

대학생들, 재야 인사들 할 것 없이 박정희 정권의 군사 독재를 막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반유신 운동을 전개했다. 재야 인사들을 중심으로 헌법개정 청원운동본부가 구성되고, 유신헌법의 폐기와 민주헌정 회복운동이 벌어졌다. 이희승은 이런 반유신 민주화 운동에 기꺼이 참여했다.

재야 민주인사들은 1973년 12월 24일에 헌법개정 청원운동 본부를 결성하고, 이어  <개헌청원운동 취지문>을 공표했다. 이 취지문에 서명한 이들은 이희승을 비롯해 각계 민주인사 30명이었다. 취지문과 청원 내용, 서명자는 다음과 같다.

개헌 청원운동 취지문
- 민주주의 회복, 현행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청원운동을 전개하며-

헌법개정 청원운동본부


오늘의 모든 사태는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완전히 회복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경제의 파탄, 민심의 혼란, 남북 긴장의 재현이란 상황 속에서 학원과 교회, 언론계와 가두에서 울부짖는 자유화의 요구 등의 모든 것을 종합하면 오늘의 헌법하에서는 살 수가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오늘의 헌법은 그 개정의 발의권이 사실상 대통령에게만 속해 있는 것이다. 이에 우리 국민은 이와 같이 헌법개정 발의권으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하고 우리들의 천부의 권리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대통령에게 현행 헌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백만인 청원운동을 전개하는 바이다.

이 운동은 우선 우리들 모두의 내 집안에서부터 시작하여 학원과 교회 그리고 각 직장과 가두에서 확대될 것이다.

청원 내용

현행헌법을 개정하여 현행헌법이 이전의 민주헌법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1973년 12월 24일

서명자(서명순)
장준하, 함석헌, 법정, 김동길, 김재준, 유진오, 이희승, 김수환, 백낙준, 김관석, 안병무, 천관우, 지학순, 김지하, 문동환, 박두진, 김정준, 김찬국, 문상희, 백기완, 이병린, 계훈제, 김홍일, 이인, 이상은, 이호철, 이정규, 김윤수, 김숭경, 홍남순. (주석 1)


주석
1> 김삼웅, <민족민주민중선언>, 일월서각, 1984, 171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딸깍발이 선비 이희승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이희승 #이희승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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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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