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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섭의 인생역전, 황선홍의 '픽'은 적중했다

[주장] 태국 원정 완승, 국내파 K리거들 재평가 기회 잡아

24.03.27 13:54최종업데이트24.03.2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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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홍 임시 감독 체제의 축구대표팀이 까다로운 태국 원정에서 완승을 챙기며 짧았던 여정에 유종의 미를 거뒀다. 황선홍호는 3월 26일 태국 방콕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태국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C조 조별리그 4차전에서 이재성-손흥민-박진섭의 연속골을 앞세워 3-0 승리를 챙겼다.
 
한국은 태국과의 역대 전적서 31승 8무 8패의 우위를 유지했다. 앞서 지난 21일 홈에서 열린 1-1 무승부의 아쉬움도 만회했다. 아시안컵 이후 공석이 된 축구대표팀의 임시 소방수로 긴급투입된 황선홍 감독은, 태국과의 2연전을 1승 1무의 준수한 성적으로 마무리하며 임무를 완수하고 다시 올림픽대표팀으로 돌아가게 됐다.
 
이로써 축구대표팀은 3승1무(승점 10)를 기록하며 2위 중국(2승1무1패,승점 7), 3위 태국(1승 1무 2패, 승점 4)과의 격차를 더 벌리며 사실상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을 위한 9부 능선을 넘었다.
 
황선홍호 최대의 성과
 

26일 태국 방콕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C조 4차전 한국과 태국의 경기. 황선홍 임시 감독이 경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황선홍호가 짧은 소집기간에도 남긴 최대의 성과는 역시 '선수 발굴과 팀 재건'이었다. 황선홍 감독은 태국과의 2연전에서 기존의 대표팀 명단에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전임 클린스만 체제에서 중용받지 못했던 많은 선수들, 특히 국내파 K리거들이 황 감독의 픽을 통하여 재평가의 기회를 잡았다.
 
태국 원정에서 감격의 A매치 데뷔골을 터뜨린 박진섭이 대표적이다. A매치 데뷔 자체는 이미 클린스만호 시절(2023년 11월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중국전)부터였지만, 정작 지난 2023 AFC 아시안컵에서는 김민재, 정승현, 박용우 등에 밀려 많은 기회를 잡지는 못했다. 하지만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루 소화할 수 있는 멀티자원으로 짧은 출전시간에도 불구하고 투입 될때마다 좋은 활약을 선보이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박진섭은 '인생역전' 신화의 산 증인이다. 프로팀과 계약을 맺지 못하여 2017년 3부 리그인 K3리그 대전 코레일에서 실업축구 선수 생활을 하며 성인무대 경력을 시작했던 박진섭은, 2018년 K리그2(2부) 안산 그리너스-2020년 대전하나시티즌 시절을 거쳐 2022년부터 K리그1 최고명문이자 고향팀 전북 현대에 입단하여 금의환향하는 입지전적인 성공신화를 썼다.
 
박진섭은 황선홍 감독과도 인연이 깊다. 황 감독은 대전 하나시티즌 사령탑 시절 박진섭을 지도한 바 있으며, 이전까지 국가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던 그를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와일드 카드'로 전격 발탁하며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게 해준 은인이기도 했다. 박진섭 아시안게임에서 부상에도 불구하고 붕대투혼을 펼치며 한국축구의 3연속 금메달에 기여하고 기대에 부응했다.
 
황선홍 감독은 태국과의 2연전을 앞두고 리그에서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박진섭을 발탁했다. 21일 태국과의 홈경기에서는 출전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원정에서 후반 시작과 동시에 백승호를 대신하여 투입되어 경기 내내 넓은 수비 범위와 준수한 패스능력으로 공수 양면에서 두루 활기를 불어넣어줬다. 박진섭이 투입되자마자 수비가 안정되고 답답하던 경기력이 한층 살아났을뿐 아니라 중원에서 파트너였던 황인범의 움직임까지 좋아지는 나비효과로 이어졌다.
 
또한 한국이 2-0으로 앞서가던 82분 코너킥 상황에서 김민재가 떨궈준 세컨볼을 슈팅으로 연결하며 A매치 데뷔 6경기 만에 감격적인 데뷔골까지 기록했다. 박진섭은 골이 들어가자마자 무릎을 끓으며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하면서 데뷔골의 감격을 누렸다.
 
대표팀이 정우영과 손준호 이후 확실한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 부재로 애를 먹고 있는 상황에서, 백승호-황인범-박용우 등 경쟁자들보다 훨씬 좋은 폼을 보여주고 있는 박진섭은 앞으로도 대표팀에서 중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한 박진섭의 늦깎이 성공신화는 그동안 대표팀과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던 무명선수들과 K리거들에게도 좋은 동기부여가 될 전망이다.
 
최고령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른 공격수 주민규 역시 이번 A매치의 수확이다. 아시안게임에서 주민규의 와일드카드 발탁도 검토했던 황선홍 감독은 "3년간 K리그에서 50골 이상을 넣은 선수는 주민규 밖에 없다"며 강한 신뢰를 드러냈다.
 
주민규는 2경기에서 비록 골맛을 보지는 못했지만 정통 스트라이커답게 몸싸움과 포스트플레이에서 경쟁력을 입증하며 대표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비록 결정적인 찬스를 몇 차례 놓친 장면이 아쉬웠지만, 움직임이나 동료들과의 호흡은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주민규가 국제대회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선입견을 불식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대표팀은 기존의 핵심 공격수 3인방이던 황의조가 사생활 문제로 국가대표에서 사실상 퇴출된 데다 오현규는 소속팀에서의 주전경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시안커베서 주전으로 나섰던 조규성 역시 대표팀에서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있는 상황이라 공격수 주전경쟁은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주민규가 앞으로도 다시 태극마크를 달 수 있을지는 후임 정식 감독의 몫으로 남겨졌지만, 대표팀에서 귀중한 옵션 하나를 추가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라이트백 김문환은 성공적인 대표팀 복귀전을 치렀다. 카타르월드컵에서 주전 라이트백으로 활약했던 김문환은 클린스만호에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특별한 부상이나 슬럼프가 아니었음에도 그리 중용받지 못했다. 태국 원정에서 선발 출장기회를 잡은 김문환은 설영우와 교체될 때까지 활발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한 공수가담으로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대표팀은 최근 좌우 풀백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클린스만이 중용했던 이기제가 부진했고 김진수와 김태환은 많은 나이 때문에 장기적으로 대체자가 필요했다. 이로 인하여 설영우가 좌우풀백을 넘나들며 홀로 고군분투해야 했다. 김문환의 성공적 복귀에 이명재의 A매치 데뷔 등으로 대표팀은 풀백에도 경쟁체제를 가동할 수 있게 됐다.

이 밖에 손흥민과 이강인 조합의 성공적인 재가동도 큰 의미가 있었다. 이들은 대표팀의 중추적 선수들이었지만 지난 아시안컵에서 벌어진 선수단 내분 사태의 후유증이 변수였다. 두 선수가 런던에서 공개적으로 화해하기는 했지만 그라운드 위에서의 호흡은 아직 미지수였다. 하지만 황선홍 감독은 손흥민에게 다시 주장을 맡기며 재신임했고, 이강인 역시 일각의 징계 여론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발탁했다.
 
두 선수는 태국과의 2연전동안 지난 앙금을 모두 털고 화합의 퍼포먼스를 펼치며 팬들의 기대에 120% 부응했다. 손흥민은 2경기 연속골을 터뜨리며 변함없는 에이스로서 활약했다. 또한 태국원정에서 선발로 복귀한 이강인은 후반 9분 손흥민의 두 번째 골을 어시스트하며 오랜만에 두 선수의 합작골이 나왔다. 골이 터진 후 손흥민이 어시스트해 준 이강인을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고, 이강인이 손흥민에게 달려가 안기는 장면도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황선홍 감독은 짧은 기간 각종 논란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면돌파를 선택했고, 주어진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며 임시 사령탑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 해냈다. 황 감독이 어려운 난제를 앞장서서 정리해준 덕분에 후임으로 올 정식 감독이나 선수단 역시 큰 짐을 덜었다. 황 감독이 남긴 '유산'들이 앞으로 이어질 대표팀의 성공적 재건에도 귀중한 밑거름이 될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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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홍감독 박진섭 손흥민 이강인 태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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