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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던진 백원짜리 동전, 그 안에 녹아든 메시지

[TV 리뷰]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24.03.21 16:54최종업데이트24.03.2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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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중요한 결이라고 생각했던 게, 구세대와 신세대가 힘을 합쳐서 아이들을 살리고, 그 아이들이 살아갈 우리의 터전을 지켜내는 것을 담고 싶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인물로 엮어서 표현하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귀신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영혼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이 죽고 흙으로 변하고 끝난다는게 좀 아쉽더라. 숫자와 과학 등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지만, 사람한테는 '보이지않는 가치'도 중요한데 우리가 너무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나. 그래서 제가 이런 장르에 더 몰두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화제의 영화 <파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이 영화에 담긴 메세지와 오컬트 장르를 계속해서 시도하는 이유를 밝혔다. 20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236회 '기묘한 이야기' 특집에서는 유재석의 닮은 꼴로 화제를 모은 '무도 재순이' 최윤아 양, 영화 감독 장재현, 웹툰 작가 겸 방송인 기안 84가 출연해 자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전했다.
 
최윤아 씨는 16살이었던 10년 전 학창시절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의 닮은꼴이자 팬으로 출연하여 큰 화제가 됐다. 현재는 어엿한 성인이 된 윤아 씨는 명문 이화여대에서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최우등 성적으로 졸업한 뒤, 한국관광공사 마케팅 입사 1년 차 주임이 되어 직장인으로 근무하고 있다.
 
윤아 씨는 또래들이 한창 아이돌을 좋아할 시기에 유재석의 열혈팬이 된 이유로 "웃기면서도 남한테 상처를 주지않는 포인트가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여전히 유쾌한 성격의 윤아 씨는 "언젠가 유재석님을 다시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있어서, 잘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꾸준히 열심히 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간간이 윤아 씨의 소식을 전해들었다는 유재석 역시 뿌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무한도전> 출연 이후 유재석의 닮은꼴로 '무도 재순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윤아 씨는 "재순이와 유재석이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했다"고 고백했다. 방송 출연 이후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되어서 후배들의 사인 요청 공세에 시달리는가 하면, 길거리에 나가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윤아 씨는 당시 유재석이 함께 식사를 하면서 들려줬던 조언들을 일기에 기록해놓은 것을 공개했다. "내 꿈은 지금 내가 하는 일이라 나는 매일 꿈 속에 산다", "남이 정해놓은 한계에 상관없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면 된다" 등 유재석이 들려준 조언들을 간직하고 힘든 시기마다 되새겨보며 많은 위안을 얻었다고.
 
윤아 씨는 어릴 때부터 항상 주변에서 유재석을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밝혔다. <무한도전> 출연 이후로 아예 전 국민에게 재순이로 각인되었다는 윤아 씨는 "면접을 준비하거나 사람들을 만날 때 '너 재순이도 했던 사람이야.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을 하면 더 당당해지고 뭐든 할 수 있게 되더라"고 전했다. 윤아 씨는 10년의 미래에는 회사에서 차장으로 승진한 모습을 상상하며 유재석과 훗날 또다른 재회를 기약했다.
 
장재현 감독은 <검은 사제들><사바하>에 이어 천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둔 <파묘>를 대성공시키며 '한국형 오컬르 장르'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으로 올라섰다. 장 감독은 최근 한국을 넘어 해외에서도 인기몰이 중인 <파묘> 덕분에 많은 응원을 받고 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파묘>는 장재현 감독의 자전적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어린 시절 장 감독이 거주했던 시골 뒷산에 있던 산소에서 굿을 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 아이디어의 시작이었다. 당시 고속도로 공사로 산소를 이장하게 된 모습을 지켜봤던 장 감독은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을 보는 것 같았다"며 '그 안에서 과거의 흔적들을 지나 오래된 관 하나가 올라오던 모습은 지금도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라고 고백했다.
 
장 감독은 <파묘>를 준비하기 위해 무속인, 풍수지리사, 장의사 등과 함께 현장을 돌아다니며 이장 작업에도 동참했다. 무려 5년에 가까운 노력과 연구 끝에 <파묘>는 영화화되어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파묘>의 대표적인 명장면으로 꼽히는 MZ 무당 화림(김고은)의 굿하는 장면에 대해 장 감독은 "저는 한 게 없다. 김고은 배우가 미쳤었다"며 배우들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장감독은 "그냥 하는 것도 힘든데 표정 하나 어깻짓 하나까지, 화면에 반만 담을 수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최민식이 연기한 풍수사 상덕이 묘자리에 동전을 던지는 장면도 우연히 탄생했다. 촬영 당시에는 별다른 의도 없이 백원짜리 동전을 던졌는데 마침 동전에 새겨진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영화의 항일 메세지와 맞물리면서 엄청난 화제를 몰고온 것. 팬들은 치밀하고 계산된 디테일에 감탄했지만, 장 감독은 우연의 일치였다며 미소를 지었다.
 
극 중 인물인 김상덕, 고영근, 윤봉길, 이화림, 오광심 등 모두 실제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차용했다. 장 감독은 "우연히 오랜만에 독립기념관을 들러서 구경하다가 오열했다. 우리가 모르게 음지에서 고생하셨던 분들이 너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감명을 받고 시나리오를 쓴 것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않았나 싶다"라고 털어놨다.
 
장 감독은 "우리의 땅을 한 명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상처도 많고 두려움도 트라우마도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통해 그런 것을 하나하나 꺼내서 관객들에게 후련함이라는 감정을 주고 싶었다"는 바람을 털어놨다.
 
장 감독은 어느날 OTT에서 일본의 사무라이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충격을 받았던 일화를 털어놨다. 그중 한 에피소드에서 임진왜란 관련 내용이 나왔는데, 한 삽화에서 사무라이들이 백성들을 학살하는 장면이 나오자 갑자기 불쾌감이 들어서 시청을 중단했다고.
 
당시 고통받았을 조선 백성들의 심정에 감정을 이입한 장 감독은 "나라에 쳐들어왔는데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웠겠나. 그 두려움을 꺼내서 깨끗하게 없애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 영화의 영혼은 그런 코어(핵심)를 항상 잊지 않으려고 했다"며 <파묘>에 항일 메시지를 담게 된 배경을 밝혔다.
 
<파묘>에 최민식을 캐스팅 하게 된 뒷이야기도 전했다. 미팅 당시 섭외 이유를 묻는 최민식에게 장 감독은 배우의 전작인 <명량>의 이순신 등을 언급하며 "선배님은 극 중에서 항상 당당하시더라. 제가 이 영화에서 선배님의 겁에 질린 모습을 담아서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단다. 이에 최민식은 호탕하게 껄껄 웃으며 "네가 제일 무서워"라며 농담을 섞어 출연 승낙을 전했다. <파묘>를 위해 2년 가까이 동고동락한 두 사람은 최민식의 마지막 촬영 때는 아쉬움에 오열을 하기도 했다고.
 
특히 장 감독은 <파묘>만의 중요한 메시지가 구세대와 신세대가 힘을 합쳐서 아이들을 살리고, 그 아이들이 살아갈 우리의 터전을 지켜내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파묘>의 등장인물들은 각기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상징하며 이들이 힘을 합쳐 구원을 이끌어내는 이야기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귀신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는 장 감독은 숫자와 과학 등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도 사람한테는 '보이지 않는 가치' 또한 중요하다고 느낀다는 소신을 전했다. 장 감독이 계속해서 오컬트라는 어려운 장르에 도전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웹툰 작가 겸 방송인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기안 84가 마지막 게스트로 출연했다. 기안 84는 지난해 MBC 방송대상 수상 이후의 달라진 부분에 대하여 "뭐가 있을 줄 알고 조금 기대했는데, 솔직히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대중들이 미워할 것 같아서 변화하면 안 되겠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대상 수상 직후 고향 여주로 금의환향한 기안 84는 엄청난 환대를 받기도 했다. 당시 기안84는 "정치를 하면 이런 기분인가 싶었다. 너무 환대해주시니까 좀 무섭더라"며 "망망대해로 나간 새끼 거북이가 거대해져서 다시 알을 낳으러 돌아온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기안84는 대상 수상 이후에도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늘 즐겨 입던 의상이나 직접 머리를 자르는 등의 루틴을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기안84는 어린시절 집안의 외동아들이었지만 공부를 못해서 자신이 집안의 '우환'이자 '풍비박산'의 원인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나마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기안84는 "네가 먹고살 길은 이것"이라는 개방적인 어머니의 선견지명 덕분에 훗날 웹툰 작가의 길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미대를 졸업한 기안84는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웹툰 작가의 길을 병행했다. 무명시절에는 반응이 시원치 않았고 작품을 게재하던 플랫폼이 사라지면서 연재가 중된다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취미로 하던 무에타이에서 완패한 이후 며칠간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했던 기안84는 문득 "뭘 하든 열심히 해야한다. 웹툰 그리는 것도 운동선수처럼 해서 1등이 되어야겠다"는 깨달음과 목표의식을 얻었다고 한다.
 
이후 기안84가 네이버에 연재한 출세작 <패션왕>은 조횟수 1위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원고 마감을 못지키기로 악명 높았던 기안84는 당시 네이버웹툰 대표였던 김준구 이사의 질책과 배려 속에서 아예 회사에서 숙식하며 웹툰을 그렸다. 기안84는 말썽꾸러기였던 자신을 품어준 김준구 대표에게 "그분이 아니었으면 지금 이렇게 살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후 기안84는 관찰 예능 <나 혼자 산다>에 고정 출연하면서 방송을 통하여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방송에서 자신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열광하는 대중들의 뜻밖의 반응이 당황스러웠다는 기안은 "배우가 연기로 인정받고 가수가 노래로 인정받는건 알겠는데, 나는 빨래나 청소를 하고 라면을 끓이는 모습을 좋아해준다는걸 보고 대체 이게 뭔가 싶더라"고 털어놓았다.
 
또한 기안84는 또다른 히트작인 여행예능 <태계일주>를 통해 찾은 의미를 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양식장의 물고기처럼 정해진 루틴대로 생활하는데, 해외에서 지내다가 오면 자연산 광어처럼 활기가 넘치고 도파민이 나오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여행을 가면 이전까지 전혀 모르던 사람들을 만나고 속으로 들어가는게 에너지가 크게 느껴진다"는 게 기안84의 고백이다.
 
어느덧 방송인으로도 8년 차 베테랑이 된 기안84는 요즘은 책임감 때문에 매주 자신이 출연한 방송의 시청률을 꼼꼼히 확인한다고 고백했다. "보면서 시청률이 떨어지면 안 되는데 노이로제가 걸린다. 웹툰이나 방송이나 보는 사람이 재미있어야하는 강박이 있다"면서 부담감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웹툰, 방송, 마라톤 등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있는 기안84는 자신이 생각하는 인생을 '여행'으로 정의했다. "어차피 한 번 살다가는 인생이니까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즐긴다는 마음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것.
 
기안 84는 "미국의 통계에서 봤는데 잘 먹고 잘 사는 것보다 불행이 닥쳤을 때 맞이하는 자세가 행복지수를 결정한다고 하더라. '인생은 여행이고, 위기가 와도 그것도 하나의 재미있는 이벤트'라고 생각하면 위기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떨어질 수도 있지만 떨어지면 떨어지는대로 받아들이자"라는 긍정적인 소신을 전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유퀴즈 파묘 장재현감독 기안84 무도재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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