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볼'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등록 2024.03.10 11:47수정 2024.03.1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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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같은걸 읽으면 바보가 된다는 시대부터 바통을 받아 어른, 아이들 모두 만화를 읽고 즐기는 시대를 만든 한 사람이며, 만화란 이런 것도 할 수 있는 거지, 세계에 갈 수 있구나 라는 꿈을 보여주었습니다. 돌진하는 영웅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_ 오다에이치로(만화 <원피스> 작가)
 
내 또래로 지구별에 존재했던, 지금까지 존재하는 '인간'이라는 생명체들 중에서 <드래곤볼>에 빚지지 않은 존재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아이고, 어른이고 심장이 마구잡이로 나댈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사람을 수많은 세계들을 만나며 자라난다. 세계를 만난다는 것은 그 세계의 이야기인 '세계관'과 만난다는 것이다. <드래곤볼>은 내가 처음 만난 세계이자, 세계관이었고, 아마 토리야마 아키라를 추모하며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그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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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 신장판 1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일곱 개의 드래곤 볼을 모으면 신룡이 나타나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는 것은 지극히 단순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 설정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간절히 이뤄졌으면 하는 소원이라는 것을 한가지쯤은 품고 사는 법이고 그것을 스스로 이루기에는 자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기에 초월적 개입을 바라며 살기에, 이것은 사실 인간의 본질적인 필요를 건드리는 설정이다.

주인공 손오공은 전형적인 '절대선'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주인공은 그야말로 만화적이라 보는 이들로 하여금 상당한 대리만족을 하게 만든다. 최근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는 <귀멸의 칼날>의 주인공인 탄지로도 이런 절대선의 속성을 가진 캐릭터이기에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이다. 왜? 인간의 본연이 악인지 선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주인공은 자고로 그렇게 선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손오공은 계속해서 성장한다. 여기에는 주인공 버프가 없지않아 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밸런스를 참 적절히 맞췄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먼치킨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구마스러운 '찌질이'도 아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손오공 정도 되면 딱 적절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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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 성장과정 ⓒ 드래곤볼

  
손오공의 성장에는 타고난 영역이 분명 있지만 그것을 받춰주는 '수행'이 뒤따른다. 재능과 노력이 만나며 회차가 전환될수록 손오공은 분명히 성장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특별히 '인간'의 영역에서는 그 힘의 한계를 초월하기 위한 수단으로 '계왕권'이라는 것을 사용한다. '사이어인'의 영역에서는 '초사이어인'으로 변모하는데, 이것은 <드래곤볼>을 아는 모든 이에게 '에네르기파'와 함께 지울수 없는 흔적을 남겼고, 차후 모든 만화에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솔직히 말해서 '계왕권'은 <원피스>에서 나오는 루피의 '기어'와 꼭 같고, 최근 뇌절이라 부르는 니카루피도 '초사이어인'의 모습 아닌가.

<드래곤볼>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 두 손을 모아 허리춤에 되고 "에 네 르 기 파!" 하면서 장풍을 쏘는 시늉을 안 해봤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며, 어떤 상황에서 특별한 힘이 필요할 때 '기'라는 것을 모으며 폭발시켜서 마치 본인이 초사이언인으로 '변신'하는 척을 해보지 않았나.


이외에도 드래곤볼이 만든 밈은 너무 많다. 콩을 먹으면서 '선두'라고 하는 것이나, '기'를 느낀다고 한다거나, 중력의 위력, 스카우터를 통한 전투력 측정, 두 손가락을 이마에 대고 눈을 감고 순간이동을 하는 포즈를 취한다던가, 타임머신도 나왔지, '퓨전'이라고 하는 개념, 초사이어인 1, 2, 3(최근 뇌절 사이어인은 빼고 만화책에서만 이야기하자), 지구인들이여 나를 도와줘 원기옥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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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사이어인변신 ⓒ 드래곤볼

  
그리고 <드래곤볼>에는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료가 되는 화해와 연대의 서사가 녹아있다. 피콜로도 처음에는 적이었지만 나중에는 오공의 든든한 동료이자, 결국엔 아들인 손오반의 대부 혹은 삼촌격이 된다. 베지터는 적이었지만, 최고의 라이벌로, 후에는 최고의 노후 동반자(?)가 된다.

인조인간들도 꽤나 무시무시한 적이었지만 그들 중 하나는 나중에 크리링의 아내가 된다. 마인부우 역시 최고의 적이었지만 끝내는 동료가 되는 꽤나 아름다운 전개를 담고 있다. 아마 이런 설정들이 후에 <나루토>의 스토리 라인에 영향을 주지 않았나 여겨진다.

이 <드래곤볼>이라는 세계는 나의 세계에, 그리고 나 뿐만이 아닌 '우리'의 세계에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믿는다. 우리는 마치 일곱 개를 모으면 소원을 이루어지는 것 같은 '드래곤볼'을 찾는 듯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나. 그 드래곤볼은 각자 다르겠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꿈을 꿀 수 있었다.

손오공은 우리 마음속의 히어로다. 우리는 그를 보면서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하게 살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가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고, 우리도 성장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걸 할 수 있었고, 한계를 초월할 때 마다 눈물 나는 듯한 대리만족을 경험했고, 우리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옆에 있는 친구들을 사랑하고 생각하는 마음들 뿐만 아니라, 한때는 적이었어도 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고, 어떤 상황에서는 가장 든든한 동료가 될 수도 있다는 큰 가능성을 우리에게 알게 해줬다. 그것은 어린 마음에나, 지금의 어른이 된 마음에나 단단하게 심겨진 여전히 아름다운 마음이지 않은가.

특별히 <드래곤볼>에서 가장 강력한 적들은 모두 주인공들 개인의 힘이 아니라 항상 모두의 기를 받아서 만든 '원기옥'으로 이겼다. 이것이야 말로 결국 이 세계의 '악'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연대'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 시절부터 우리에게 알려준 완벽한 메타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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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 주요인물들 ⓒ 드래곤볼GT

 

문득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에, 오랜만에 만화책 방에 가서 <드래곤볼>을 아주 천천히 꼭 정주행하고 싶은 마음이다. <드래곤볼>이 그리운건지, 아니면 <드래곤볼>을 처음 알고, 보고, 꿈을 꾸며, 그리며 자라왔던 그때의 내가 그리운지 잘 모르겠다.

토리야마 선생님 고맙습니다. 드래곤볼이 있어서, 오공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토리야마아키라 #드래곤볼 #손오공 #만화책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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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당연스럽게 '내'가 주체가 되어 글을 쓰지만, 어떤 순간에는 글이 '나'를 쓰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마치 나도 '생명체'이지만, 글 역시 동족인 것 같아서, 꿈틀 거리며 살아있어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그렇게 쓰여지는 나를, 그렇게 써지는 글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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