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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도 잘 못 보는 내가 딸과 노래를 만드는 이유

[사춘기 딸과 노래만들기] 내가 꿈꾸는 창조적 교육

등록 2024.03.08 14:55수정 2024.03.0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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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이 중요한 시기에 노래를 만든다고요?"


중2 딸과 노래를 만든다고 했을 때 몇 분들이 던진 질문이다. 중학교 때 공부를 해놓지 않으면 고등학교 가서 뒤처지지 않을까요. 대학 입시에 실패하면 좋은 직장도 못 구할 텐데, 그때 후회하면 어떡하죠. 다른 애들과 경쟁하려면 결국 선행학습과 사교육밖에 없지 않나요. 아이들을 위한 대안적 교육이니 창조적 교육이니 하는 것들이 괜히 시간을 허비하는 일일까 걱정됩니다. 

모두 일리 있는 지적들이고, 두 아이의 부모로서 나 역시 이 질문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내가 아이들과 노래 만들기, 그림책 제작, 에세이 쓰기 등을 계획한 이유는 아이들 교육에 뜻이 없어서가 아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때에 맞는 교육 받기를 원하고 경쟁력 있는 아이로 자라기를 바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아이들이 과도한 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며 자신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꿈꾸는 창조적 교육은 누군가를 딛고 일어서야만 하는 교육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손을 잡고 일어서는 교육이다. 내가 중2 딸과 노래를 만든다고 했을 때 사춘기 자녀와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은 관심과 지지를 보여주셨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더 시급한 문제는 아이들이 뒤처지는 것보다 아이들이 망가지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는 일인지 모른다.

한 기업에서 15년 근무를 하다 보니 직접 면접관이 되어 신입사원을 뽑을 기회들이 종종 있다. 많은 이력서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선별하는 기준이 생겼다. 내가 가장 먼저 보는 스펙은 '나이'였고, 가장 신경 쓰지 않는 스펙도 역시 '나이'였다. 지원자가 재수를 했든 삼수를 했든 남들보다 늦는 것은 감점의 요인이 되지 못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않으면 상관없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지원자의 스펙은 자신이 걸어온 시간을 어떻게 채워왔느냐였다. 대학 입학을 목표로 달려갔던 아이들은 대학 합격과 동시에 공부의 동기가 사라진다. 그저 점수에 맞춰 들어간 대학이기에 전공에 흥미를 갖기 어렵고 전과와 편입을 위해 또 한 번의 입시를 준비한다. 때문에 대학을 졸업할 때 자신의 길을 선명하게 찾은 사람이 드물다.

나는 이제 아이들이 남들보다 대학에 늦게 갈지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찍 공부에 흥미를 잃을까 걱정한다. 나는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누가 시키는 공부만을 해왔다. 대학에 들어가 시키는 사람이 없어서 몇 년을 우왕좌왕 헤맸었다. 사실 지금 내 삶을 채우는 일들은 모두 나 스스로 뒤늦게 시작한 공부 덕분이다.

지금은 내게 공부를 시키는 사람은 없지만 난 학창 시절 때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는 어른이 된 지금도 힘든 과정이지만 배움의 즐거움은 멈출 수 없는 쾌락이다. 난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입시로 국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배움의 즐거움을 깨달으면 공부를 지속할 수 있다. 즐거움은 자발적 과정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아이들의 자발성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흥미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흥미로 출발해서 탐구하고, 탐구를 통해 지식을 쌓고, 그 지식을 반복해서 익히면 내 것이 된다.

이 모든 과정이 공부인데, 어떤 분야의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사람을 우리는 '프로'라 부른다. 그래서 한양대 국어교육과 정재찬 교수는 잘하게 하는 교육보다 좋아하게 하는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나라 교육계가 컴퓨터 게임에서 한 수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은 한 단계 한 단계 점점 어려워지는 컴퓨터 게임을 억지로 하지 않는다. 공부도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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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쓰는 딸 카페에서 가사 쓰기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딸은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도록 가리고 가사를 씁니다. ⓒ 이지완

 
악보도 잘 못 보는 내가 왜 딸과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을까. 이유는 단순했다. 딸이 흥미를 갖는 일이었다. 사춘기 딸이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다. 우리 딸에게 그 기적과 같은 무엇이 바로 '노래'였다. 중2 딸과 시작했지만 5학년 동생도 노래 만들기에 흥미를 보이며 동참했다.

우리는 가사부터 쓰기 시작했다. 가사 쓰기의 유익은 가사에 나의 이야기가 담긴다는 것이다. 작년 한 해 친구 관계로 어려움을 겪은 딸은 한 아이를 떠올리며 'I HATE YOU(난 네가 싫어)'로 주제를 정했다.

부정적 주제가 살짝 마음에 걸렸지만, 아무 얘기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로 쓰는 작업을 했다. 놀라운 점은 회를 거듭할수록 딸의 가사 내용이 바뀌어 갔다는 것이다. 미움과 분노의 감정을 쏟아내다 보니 대상이 친구에서 자신으로 돌아왔다.

"꼭 부정적이어야 할까
변할 걸까 원래 생각일까
내가 좀 이상해"


딸이 친구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네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줘라"라며 정답 같은 조언을 했었다. 참으로 뻔했던 내 윤리적인 조언을 딸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우리는 서로 상처만 주고받았다.

노래를 함께 만들면서 딸의 가사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미움과 분노에 갇혀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 조급한 마음이 들었지만,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방법과 속도는 아니지만, 딸은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성찰하고 있었고, 제대로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

딸아! 멈추지 말고 계속 노래해 줘!
늦어도 괜찮아. 
너는 더 깊고 충만한 선율을 부를 수 있을 테니.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자신만의 라임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자. 그들은 분명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선율로 감동을 선사할 테니.
덧붙이는 글 첫번째 도전은 내 노래 만들기(작사작곡 직접 해보기) 두번째 도전은 그림책 만들기(이야기와 삽화를 직접 만들기) 세번째 도전은 역사 탐방기(국내외 역사를 통해 지금의 정치, 사회를 이해하기) 이런 식으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공부의 이야기를 글로 담아보려고 합니다.
#자녀교육 #사춘기 #자작곡 #노래만들기 #에밀리디킨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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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지금까지 계측 관련된 일을 하면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세계에 있지만 사회의 정의와 약자를 돌보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두 아이의 아빠로서 다음세대에게 건강한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소망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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