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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약 800만 마리의 새가 이렇게 죽는다네요

뉴욕 부엉이 플라코의 죽음이 한국에 시사하는 것... 충돌 방지 스티커 민간까지 확대했으면

등록 2024.03.05 11:31수정 2024.03.0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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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코 생전 모습 ⓒ ABC News youtube 갈무리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새'가 되고 싶다는 사람이 많다. 복잡한 세상살이를 잊고 마음껏 하늘을 누비고 싶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은 서양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2023년부터 뉴욕의 명물이 된 수리부엉이가 있다. 이름은 '플라코'이며 센트럴파크 동물원에서 13년 간 살다가 누군가 의도적으로 훼손한 철망의 빈틈으로 인해 자유를 찾았다. 뉴욕의 건물들 사이에서 목격된 것이다. 

처음에 동물원 측은 뉴욕 경찰 도움을 받아 포획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플라코의 독립을 지키고픈 시민들의 적극적인 만류로 그냥 야생에서 살게 내버려 두었단다. 플라코는 테라스나 창틀 등 도심 여기저기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수많은 뉴요커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현지시간 2월 23일 숨지고 말았다. 부검 결과 사인은 '급성 외상성 손상'이었다. 쉽게 말해, 건물 외벽이나 유리창 등 구조물에 부딪혀 죽음에 이른 것이다. 

탐조산책 중 종종 발견한 새의 사체

삼가 플라코의 명복을 빌고 싶지만, 먼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조류충돌은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의 수많은 도시에서 매일 반복되는 사고라는 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름 모를 새들이 투명한 창에 부딪혀 죽어가고 있다. 2018년 환경부와 국립생태원이 공동으로 발표한 '인공구조물에 의한 야생조류 폐사 방지 대책 수립' 보고서에 따르면 1년에 약 800만 마리의 새가 목숨을 잃는다.


믿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숫자이지만 모두 사실이다. 확인하고 싶다면 투명 방음벽이 설치된 도로에 접한 인도를 방문해 보자. 어렵지 않게 죽은 새를 발견할 수 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의아해하실 것이다. 새는 매우 민첩하고 몸도 가벼운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있나. 독수리 모양의 검은 스티커도 창문에 붙어 있던데 알아서 피하면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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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 유리난간에 부딪혀 죽은 방울새 어린 개체 ⓒ 이준수

 
나도 취미로 탐조산책을 하면서 조류충돌 사체를 여럿 목격했다(관련 기사: 동물 좋아하세요? 올해는 '새 구경 걷기' 어떠세요 https://omn.kr/271go). 부리에서 피를 흘리는 새도 있고, 잠자듯 조용히 죽어있는 모습도 보았다. 종은 다양했다. 참새, 노랑지빠귀, 멧비둘기, 방울새 등 철마다 다양한 새가 세상을 떠났다.

신기한 점이 있다면 새는 대체로 예상보다 가벼웠다는 것이다. 멧비둘기처럼 비교적 체구가 큰 녀석도 손바닥에 올려보면 별로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벼웠다. 가벼운 동물은 충격에 강할 것 같은데 어째서 이렇게나 많이 죽는지 궁금하여 원인을 찾아보았다. 

조류충돌의 기본 원인은 유리의 투명성과 반사성 때문이었다. 비어있는 공간인 줄 알고 날아가다가 부딪치는 것이다. 신체 구조적 원인도 있었다. 대부부의 새들은 천적으로부터 안전을 지키기 위해 눈이 양 측면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새는 정면을 인식하는 시력보다 측면을 넓게 인식하는 시력이 발달되어 있다. 빠른 속도로 비행 중에는, 측면으로 보느라 정면의 유리벽을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다. 

또 새는 고공 비행에 유리하도록 신체가 진화해 골격이 매우 가볍다. 두개골은 계란 껍데기 수준의 단단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비행 속도가 빨라지면 충돌 시 충격량이 높아지는데, 연약한 새의 골격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인 것이다. 그래서 다수의 새들은 충격 직후 즉시 사망하거나, 뇌진탕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다가 2차 공격에 노출된다. 

조류 버전 심폐소생술을 목격하다

나도 퇴근길에 직장 건물 유리문에 부딪혀 기절한 까치를 목격한 적이 있다. 학교에서 나가려 신발을 갈아 신던 중이었는데, 어디선가 '쿵' 하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나서는 길에 보니 바닥에 까치 한 마리가 널브러져 있었다. 유리문 충돌이었다. 까치는 몸을 발라당 뒤집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죽은 줄 알고 묻어주려 두 손으로 들었다. 그런데 미세하게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러니까, 까치는 잠시 기절 상태였던 것이다. 이대로 두고 가면 틀림없이 동네 고양이의 밥이 될 터였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나이가 지긋한 동료 주무관님이 까치에게 심장마사지를 천천히 해주었다. 조류 버전 심폐소생술이랄까. 정말로 1~2 분이 지나자 까치는 정신을 차렸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 그 후에는 발톱을 꼼지락, 결국 몸을 탁 뒤집더니 잠시 뒤 파드득 하고 어디론가 날아갔다.

비록 새지만, 마치 사람인 것처럼 새 영혼이 다시 몸에 돌아오는 상상이 들었다. 찰나였지만 아주 기쁘고 감동적인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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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문 충돌 후 되살아난 까치 ⓒ 이준수

 
어떻게 하면 조류충돌을 방지할 수 있을까? 2018년 국립생태원에서 발간한 '야생조류와 유리창 충돌 안내서'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건축 초기부터 조류 친화적인 디자인을 적용하여 신규 건물을 짓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이미 지어진 건물에도 조류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촘촘한 점이나 선형 무늬 유리창에 표시해 새들에게 벽이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최소 상하 5센티미터, 좌우 10센티미터 간격으로 점을 표시해 주면 된다. 자원봉사자 혹은 개인 단위에서는 자와 테이프를 이용해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일이 테이프를 벽지처럼 붙여주는 것이다.

교사인 나도 몇 년 전, 생명존중활동의 일환으로 초등 4학년 학생들과 학교 유리창에 조류 충돌 방지 활동을 한 적이 있다. 창문에 무늬와 그림을 넣어 새들이 창문에 부딪히지 않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다. 원래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테이프 위치를 맞추고 붙이기로 하였으나, 손이 야무지지 못한 관계로 위치가 엄청 삐뚤빼뚤해졌다(점이 연결되는 형태가 반듯해야 하므로, 어른끼리 작업할 때는 반드시 자와 유성펜을 지참하여 일정한 간격을 맞춰주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 업체에서 대량으로 작업할 때는 필름 형식으로 유리판 전체를 덮듯이 작업을 한다. 비용이 발생하지만 규격을 갖춘 재료로 정확하게 시공하니 효과가 좋다.

2023년 6월 야생생물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이 적용되면서 공공기관에서는 의무적으로 조류충돌 방지 조치를 하게 되었다. 공공을 넘어 민간 건물까지 붙이게 하려면 지자체의 조례가 필요하지만, 안타깝게도 예산과 공감대 형성 문제로 현재까지 조례가 통과된 곳은 전국 지자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생명체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할 이유

새는 인간과 더불어 지구에서 살아가는 존재인데,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든 건물과 물건이 새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새가 능력이 모자라서 죽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새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시설물을 만들기에 새가 죽는 것이다.

새는 영특하다. 인간과 달리 자외선을 인식하는 시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조류충돌 방지 무늬에 자외선 반사나 흡수 기능을 입히면, 새들도 이를 구분하고 피해 갈 줄 안다. 새들은 집을 지어도 자연을 훼손하거나 다른 종에게 심대한 피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대부분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둥지를 만들고 쓰임이 다하면 둥지는 서서히 허물어져서 다시 자연의 일부가 된다. 

새가 유리창에 부딪혀 죽지 않도록 하는 일은 비단 새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살아있는 생명을 배려하고 하나의 목숨이라도 살리려는 시도는, 돌고 돌아서 우리의 인식을 바꾸고 다른 생물을 살릴 수 있게 한다. 사람이 다시 태어나면 모두들 그토록 되고 싶어 하는 '새', 정작 새 자신은 허무하게 삶을 마감하지 않도록 격려와 지지가 필요한 때다.
#조류충돌 #새 #유리벽 #플라코 #뉴욕부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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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산지니 2021>, <선생님의 보글보글, 미래의창 2024> 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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