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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연패 탈출' 페퍼가 웃지 못하는 이유

[여자배구] 27일 오지영 리베로 계약해지와 28일 조 트린지 감독 경질

24.02.29 09:18최종업데이트24.02.2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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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배구 페퍼, 드디어 연패 탈출… 24경기·105일 만에 승리 23일 경북 김천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3-2024 V리그 페퍼저축은행 대 한국도로공사 경기에서 페퍼저축은행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페퍼저축은행은 이날 경기를 세트 점수 3 대 2로 이기며 24경기만에 연패 탈출에 성공했다. (KOVO 제공) ⓒ 연합뉴스

 
이번 시즌이 개막하기 전까지만 해도 통산 5개의 우승반지를 가지고 있는 '클러치박 박정아가 합류한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를 '꼴찌후보'로 분류하는 배구팬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시즌 개막 후 7경기에서 2승을 따낸 페퍼저축은행은 해가 바뀌고 2월20일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의 5라운드 마지막 경기까지 무려 23연패를 당했다. 여자부 역대 최다연패기록을 세운 페퍼저축은행은 '전설의 KEPCO45'가 세운 25연패에도 근접했다.

그렇게 V리그 남녀부 통합 최다연패가 가까워지는 듯했던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23일 김천에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를 세트스코어 3-2로 꺾으면서 105일 만에 승리를 따냈다. 물론 도로공사는 최하위가 확정된 페퍼저축은행과 마찬가지로 순위싸움과 무관한 팀이었지만 도로공사는 이날 승리를 위해 주전선수들을 모두 투입했다. 페퍼저축은행은 총력전을 펼친 도로공사를 상대로 창단 첫 리버스 스윕 승리를 달성한 것이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 선수들은 23연패 탈출과 리버스 스윕을 거둔 후에도 마음껏 웃을 수 없다. 팀이 연패에서 탈출하기 무섭게 2가지 큰 악재가 한꺼번에 페퍼저축은행을 덮쳤기 때문이다. 27일에는 팀의 맏언니이자 주전리베로 오지영이 한국배구연맹으로부터 팀 동료 선수에 대한 인권침해 행위로 1년의 자격정지를 받으며 팀과 계약이 해지됐고 28일에는 2023년 6월말 팀에 부임한 조 트린지 감독이 8개월 만에 경질된 것이다.

만 35세에 당한 1년 자격정지와 계약해지
 

한국배구연맹으로부터 1년의 자격정지 징계를 받은 오지영은 페퍼저축은행 구단과의 계약도 해지됐다. ⓒ 한국배구연맹

 
지난 2022년 12월 GS칼텍스 KIXX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페퍼저축은행 유니폼을 입은 오지영은 트레이드 후 안정된 수비와 함께 페퍼저축은행의 맏언니 역할을 했다. 페퍼저축은행 구단은 시즌이 끝난 후 FA 박정아와 채선아를 영입하면서 오지영과 3년 최대 10억 원의 조건에 FA계약을 체결했다. 리베로의 긴 선수생명과 오지영의 건재한 기량을 고려하면 결코 나쁘지 않은 계약처럼 보였다.

오지영은 이번 시즌에도 페퍼저축은행의 부진한 성적과 별개로 1월 2일 GS칼텍스와의 4라운드 2번째 경기까지 주전 리베로로 꾸준한 활약을 선보였다. 하지만 오지영 리베로는 7일 흥국생명전부터 경기에서 빠지기 시작하며 배구팬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전반기가 끝날 때까지 4경기 연속 결장한 오지영은 27일에 열린 올스타전에서는 V스타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며 더욱 의구심을 키웠다.

후반기 들어 2경기 연속 선발 출전하며 정상적으로 코트에 복귀하는 듯했던 오지영은 10일 IBK기업은행 알토스전부터 다시 결장했다. 그리고 지난 22일 페퍼저축은행의 모 선수가 동료선수를 괴롭히는 사건으로 한국배구연맹이 23일 상벌위원회를 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공교롭게도 오지영이 한국배구연맹의 상벌위원회에 참석하던 날, 페퍼저축은행은 도로공사를 꺾고 23연패의 늪에서 탈출했다.

23일 상벌위원회에서 결론을 내지 못한 한국배구연맹은 27일 다시 한 번 상벌위원회를 소집했다. 이날 한국배구연맹은 후배선수들에 대한 인권침해 행위로 오지영에게 1년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오지영이 만 35세의 베테랑 선수임을 고려하면 1년의 자격정지는 상당히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오지영은 담당변호사를 통해 팀 내 기강을 잡기 위한 훈계였다고 주장하며 재심을 청구하기로 해 파장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V리그 여자부에서는 지난 2021년에도 흥국생명의 쌍둥이자매 이재영과 이다영(볼레로 르 꺄네)이 학교폭력 가해사건으로 무기한 활동정지와 함께 국가대표 영구박탈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오지영의 경우는 프로에서, 그것도 이적한 지 갓 1년 밖에 되지 않은 팀에서 벌어진 일이라 쌍둥이 자매 사건과는 또 다른 충격을 주고 있다.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이 사건이 어떤 결론으로 마무리될지 주목된다.

최다연패 기록 세우고 불명예 퇴장
 

작년 6월 말에 페퍼저축은행에 부임한 조 트린지 감독은 8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팀을 떠나게 됐다. ⓒ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

 
페퍼저축은행은 2022-2023 시즌이 채 끝나지 않았던 2023년 2월, 다가올 2023-2024 시즌부터 팀을 이끌 2대 감독으로 재미교포 아헨 킴 감독을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브라운 대학교의 배구팀을 이끌었던 아헨 킴 감독은 브라운 대학교를 부임 3년 만에 팀 역사상 최초로 NCAA 토너먼트에 이끌며 돌풍을 일으켰다. 아헨 킴 감독은 선수육성에 특화된 지도자로 꼽히는 만큼 젊은 선수가 많은 신생 구단 페퍼저축은행을 맡을 적임자로 꼽혔다.

하지만 한창 팀을 구성하며 비시즌 훈련까지 진행하던 2023년 6월, 페퍼저축은행은 아헨 킴 감독이 가족문제로 감독직을 내려 놓는다고 발표했다. 페퍼저축은행의 감독을 맡은 지 4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루 빨리 새 감독을 구해야 했던 페퍼저축은행은 6월의 마지막 날 3대 감독으로 미국 여자배구대표팀의 전력 분석관을 지낸 조 트린지 감독을 선임했다. 지나치게 급해 보이는 감독선임이었지만 페퍼저축은행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트린지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색깔의 선수구성을 할 수 없었고 페퍼저축은행은 시즌이 개막하자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트린지 감독은 시즌 초반 195cm의 최장신 미들블로커 염어르헝을 선발 출전시키는 과감한 작전을 선보였지만 염어르헝은 눈에 보이는 성장을 보여주지 못한 채 무릎부상이 재발해 지난 1월 세 번째 무릎수술을 받았다. 주전 세터를 이고은에서 박사랑으로 교체한 작전 역시 눈에 보이는 효과는 없었다.

페퍼저축은행은 새해 들어 오지영 리베로마저 경기에서 빠지면서 연패가 점점 길어졌다. 그리고 지난 10일 기업은행전에서 0-3으로 패하면서 조 트린지 감독은 V리그 여자부 역대 최다연패(21패)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운 감독이 됐다. 결국 페퍼저축은행 구단은 팀이 23연패의 늪에서 탈출한 다음날 트린지 감독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고 서류정리가 끝난 28일 공식적으로 트린지 감독과의 결별을 발표했다.

최근 V리그에서는 시즌 도중 후임감독을 선임하는 것이 대세다. GS칼텍스의 차상현 감독은 이선구 감독 사퇴 후 곧바로 후임감독으로 선임됐고 기업은행의 김호철 감독과 흥국생명의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 역시 시즌 중 '정식감독'으로 부임했다. 페퍼저축은행 역시 연패가 길어질 때 하루 빨리 차기감독을 물색하거나 트린지 감독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줬다면 이경수 코치가 두 시즌 연속 감독대행으로 나서는 촌극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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