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산업, 공공재 우주를 잠식하고 미래를 파괴한다

[강연 후기] 26일 평화활동가 브루스 개그논 대전 강연... 마지막 강연은 29일 서울에서

등록 2024.02.28 13:45수정 2024.02.29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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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유재(커먼즈)'에 대한 개념을 처음 갖게 된 것은 중학생 때 어떤 책에서 "로켓 한 번 발사에 사람 100만 명이 하루 숨 쉴 산소를 다 써버립니다.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죠? 그들이 왜 멋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습니까?"라는 문장을 접했을 때였다. 이제 돌아보니 어렴풋이 커먼즈에 대한 인식이 싹텄던 것이다.

그렇다. 대기 중 21%의 농도인 산소는 20억~30억 년이란 장구한 시간 동안 광합성 생물들이 끊임없이 쌓아와서 지금에 이르렀다. 우리 모두의 것이고, 누가 사유하거나 멋대로 써버릴 수 없는 공공재다. 1990년에는 막대한 산소를 제멋대로 소비하는 것에 대해 분개했지만, 지금은 더 큰 문제가 있음을 안다.

산소 소비보다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로 기후위기를 초래해 인류를 포함한 지구 생명들의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의 우주 여행이 10억 명이 평생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대체 누가 그들에게 그렇게 우리 미래를 멋대로 망칠 권리를 주었는가? 게다가 그 비용은 거의 다 우리 세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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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평화활동가 브루스 개그논의 대전 강연 제주의 우주센터, 새만금신공항, 논산의 확산탄공장, 대전의 항공우주산업 클러스터, 저궤도위성이 모두 연결되어 우리의 미래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역설하는 브루스 개그논. ⓒ 서대선

 
40년간 전쟁산업을 연구한 평화활동가 브루스 개그논(Bruce K. Gagnon)의 지난 26일 대전 강연을 들으며 이 오래된 분노의 시위가 다시 당겨지는 느낌이었다.

개그논은 우주의 무기와 핵을 반대하는 글로벌 네트워크(Global Network against Weapons and Nuclear Power in Space, space4peace.org)의 공동창설자이자 코디네이터이다. 그는 지난 40년 동안 우주 문제에 대해 연구해왔고 1992년 글로벌 네트워크 창설을 도왔다. 저서는 <지금 당장 함께 오라: 쇠퇴하는 제국에서 쓰는 조직활동 이야기Come Together Right Now: Organizing Stories from a Fading Empire>가 있다.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이기도 하며 2009년과 2016년 평택, 군산, 제주를 포함해 한국을 여러 번 방문했었다.

이번에 제주, 부산, 군산, 대전, 평택에서 강연을 진행했으며, 오는 29일 오후7시 서울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9길 16)에서 마지막 강연이 예정돼 있다.

대전에는 유성의 항공우주산업 단지가 있고, 인근의 논산은 지금 확산탄 공장 건설로 뜨거운 감자다. 영화 <강철비> 속에 나오는 강철비가 바로 확산탄인데, 하나의 모탄 안에 수십 수백 개의 자탄이 있어 상공에서 터지면 축구장 3개 넓이가 초토화된다. 바로 이 확산탄 공장을 논산에 만들고 있다. 확산탄은 넓은 지역에 비처럼 폭탄이 떨어지므로 95% 이상의 피해자가 민간인이다. 또 불발탄이 떨어져 있다가 어린이들이 갖고 놀다가 터져서 사망하게 되기도 한다. 공장 자체도 폭발의 위험이 있어 시민과 생태계가 파괴될 우려가 있다.

이렇게 위험하고 비인도적이고 파괴적인데, 공장 설립을 밀실에서 비민주적으로 추진해 주민들이 분노해 대책위를 꾸린 상태다. 백성현 논산시장은 '무기 산업으로 논산을 부흥시켜 논산을 한국의 헌츠빌(Huntsville)로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개그논은 이 말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 알려주겠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미국의 군수산업도시 헌츠빌이란 어떤 곳일까? 2차대전 후 미국은 나치의 과학자, 공학자들과 나치의 로켓들을 밀반입한다. 핵심 인물은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이란 나치 과학자로, 이 자의 로켓 제작은 유대인·집시·동성애자·공산주의자·전쟁포로들을 강제 징용해 이뤄졌다. 강제 노동 과정에서 1만2000명이 사망했다. 이 폰 브라운을 위시해서 1500명의 나치들을 밀입국시킨 미국 정부가 나치의 우주정복의 꿈을 이어받는다. 이 나치들이 정착한 마을이 바로 헌츠빌이었다. 

비유하자면, 일제 패망 후 생체실험하던 731부대 의사, 과학자들을 대한민국 정부에서 밀입국시켜, 융숭한 대접을 하며 의학, 과학 정책을 세웠다고 상상하면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 논산을 한국의 헌츠빌로 만들겠다는 건 그런 것이다.

공화당·민주당 할 것 없이 역대 미국 정부는 우주정복 기조를 놓은 적이 없다.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니, 동맹국들에게 '돈을 분담해라, 하지만 명령은 내가 한다'는 기조를 강요하고 있다. 현재는 러시아와 중국보다 빨리 저궤도를 선점하기 위해 동맹국들에게 위성을 쏘아 빨리 자리를 잡으라고 압박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더 많은 로켓, 미사일, 군용기를 쏘아올리려 한다. 개그논은 한국에 와서도 신공항이 매우 많이 추진되는 걸 보고 '미 군용기를 위한 용도로 얼마나 쓰이는 것일지 의심스럽다'고 짚었다.

1967년 우주조약은 우주는 누구도 소유, 독점할 수 없고 우주는 평화적으로만 접근해야 함을 밝혔는데, 미국은 대놓고 우주를 점유, 군사화, 무기화하려 한다. 커먼즈인 우주를 사유화하다니, 그야말로 '우주판 인클로저'다. 전세계 곳곳에 있는 다운 링크 스테이션(Down link station)은 위성의 정보를 받아서 릴레이로 다른 위성에게 쏘아줘서, 몇 초만에 전세계의 정보를 미국에서 낚아챌 수 있게 한다. 

전쟁, 전쟁훈련, 전쟁위기 고조, 그 외에도 상시적인 로켓과 미사일 발사 모두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악화시킨다. 100만명이 하루 동안 내뱉는 이산화탄소를 단 한 번의 로켓 발사가 뿜어내고, 다른 일산화탄소나 질소산화물의 양도 막대하다. 오존층을 파괴하고 지구 온난화를 극심하게 가속화한다.

전국 순회 강연을 기획한 '우주군사화와로켓발사를반대하는사람들' 그리고 '제주순정TV'에 따르면, 2023년 12월 1일, 남한(한국)은 미 밴던버그 우주군 기지에서 미 우주기업 '스페이스X' 의 발사체로 첫 군사 정찰 위성을 발사했다. 12월 4일에는 제주 남방 해상에 설치된 국방과학연구소의 해상발사대에서 무기 기업 한화시스템 위성이 발사되었다. 남과 북의 군사적 대립은 우주의 군사화로 더 한층 격화되었고 급기야 9.19 남북 군사합의가 무력화되었다. 북한은 2024년 들어 남한을 적국으로 규정하는 등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첨예화되고 있다. 

현재, 우주항공 산업은 무한한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선전되며, 정부와 여러 기업들이 뛰어들고 있다. 또한, 기업들은 한미일 우주협력의 기반이자 개발의 주요 주체들로 떠오르고 있다. 한화 등 무기 자본 및 정부가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선전하는 우주항공 산업은 자본에는 이윤을, 군대에는 군사력 증가를 주지만 민중에겐 생존권 박탈이며, 환경 파괴와 기후재앙을 불러 일으킨다.

불행히도 한국의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우주항공 산업 확대와 우주 군사력 증가에 혈안이 돼 있다. 윤석열 정부가 올해 과학 기술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고 하지만, 대전(연구 개발), 경남(위성체 제작 특화), 전남(발사체 제작 특화)을 우주산업 삼각 클러스터로 정해 올해 예산을 책정했다. 우주산업에 대한 맹목적 열망은 정부의 지원을 직접적으로 받지 못한 지자체들도 마찬가지다. 

제주의 경우, 전쟁무기기업 한화시스템이, 강정 해군기지에서 10분 거리에 오영훈제주도정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우주센터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고 '우주군사화와로켓발사를반대하는사람들'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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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개그논의 대전 강연에서 제주의 우주센터 문제도 다뤄졌다. 제주의 평화활동가 최성희가 제주를 한화 우주센터 건립 반대 기자회견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서대선

 
우주군사화 중단을 위한 국제 활동가 브루스 개그논의 전국 순회 강연은 이렇듯 동북아 정세가 우주를 기반으로 군사적 긴장과 전쟁 위협이 고조되고, 지구 가열화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기후 재앙이 가속화되는 가운데서 우주산업 및 우주군사화에 대한 질문과 문제점을 제기하며 진행되고 있다. 더불어 한국의 평화, 환경, 인권 활동에 기여하기 위해 기획됐다. 

대전 강연 주최 측에 따르면 브루스 개그논은 "미국의 정치인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우주산업 활성화를 지지하며 민간을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한 '페이퍼클립' 작전이 결국 군대를 위한 프로그램으로만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은 우주산업(전파, 미사일 등)을 통해 지구를 통제하고 동시에 다른 나라들이 우주로 가는 경로를 통제하고자 한다"며 "여기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본을 감당할 수 없어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개그논은 한국 역시 중국과 북한, 러시아를 견제한다는 이유로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으며 특히 제주가 하나의 큰 한미 군사기지로 바뀌고 있음을 우려했다.

아울러 "지구 저궤도에 쏘아올린 민간 위성들은 민간 및 군사 목적을 동시에 수행하며, 이런 저궤도 위성을 계속 해서 쏘아올릴 때 연쇄적인 충돌이 일어나 지구의 통신이 마비될 수 있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로켓 발사는 대기 상층부에 주요한 오염물질을 방출해 오존층에 더 큰 구멍을 뚫고 새로운 발사 시설의 대규모 확장은 환경적인 위험을 더 심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우주의 군사화와 기후 변화 사이의 점들을 연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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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산업과 군사화, 무엇이 문제인가> 대전 강연.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서대선

 
내가 맞서 싸우는 새만금신공항은 군산공항(미군기지 겸용)을 확장하는 용도이기도 하다. 중국과의 긴장을 고조시켜 더 큰 전쟁위기와 기후위기를 낳기 때문에, 갯벌과 삶을 수호하기 위해서, 그리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막아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했다.

브루스 개그논의 대전 강연은 우주산업과군사화대전강연준비위원회(녹색정의당 대전시당, 논산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대전기후정의모임, 대전녹색당, 대전시민사회연대회의,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천주교 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에서 주최했다.

다음 강연은 오는 29일 오후 7시 서울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9길 16)에서 예정돼 있다.(전체 문의: 010-4767-1053, 010-3089-7757)
#우주산업 #군사화 #개그논 #GAGNON #한화우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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