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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ㅇ난감' 모호하다 모호해

[리뷰] 넷플릭스 <살인자ㅇ난감>

24.02.26 10:26최종업데이트24.02.2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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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살인자ㅇ난감> ⓒ 넷플릭스

 
<살인자ㅇ난감>은 모호함에 많이 의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우선 제목부터 상당히 모호하다. '살인자와 난감', '살인자의 난감', '살인자 장난감', '살인자 인 난감' 등등, 어떻게 읽어도, 해석에 따라서 말이 된다. 난생 처음 보는 작법이다.

극 중 주요 인물들의 이름도 상당히 모호하다. 이탕. 뭐 이런 이름이 있나. 목욕탕, 남탕, 여탕, 매운탕, 탕탕탕은 들어봤어도, 사람 이름이 '탕'이라니. 카뮈의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의 닉네임이라면 모를까, 들을 때마다 거슬리면서 정신이 바짝 드는 중독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장난감도 모호하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명사 '장난감'은 읽을 때 '장난깜'이라고 발음이 되는데 극 중 장난감은 그대로 장난'감'으로 발음이 된다. 이것은 마치 어르신들이 '토마토'를 '도마도'라고 부르는 것 같은 이질감과 정겨움을 자아낸다. 송촌, 노빈 역시 상당히 특이한 이름이긴 하지만 이 둘에 비견되어 그런지 상당히 평범하게 여겨지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자.

스토리라인에 나오는 선과 악도 모호하다. 우발적이어도 살인이라는 것은 악이 분명하지만 그 사람이 만약에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면? 연쇄 살인범, 가족 살인범, 성폭행범 등등. 결과적으로 그런 인간들을 단죄한 것이 된다면 그것은 결과적 선이 되지는 않는가?

그리고 만약에 그런 죽어 마땅한 인간들을 구별해낼 수 있는 초월적인 '감'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런 '다크히어로'야 말로 '필요악' 아닌가? 극 중 성폭행을 당해 자살한 딸의 복수를 위해 아버지는 가해자들을 쫓아다니다가, 이탕의 살인을 목격했지만 그것을 차마 말할 수도, 아니 말할 생각도 없고 도리어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는 그 지점이야 말로 선과 악의 구분은 결코 절대적일 수가 없다고 여겨지는 부분이다.

다만, 이탕의 이런 '능력'조차 지극히 모호하다. 저게 진짜 초능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모호한 '감'에 가냘프게 의존되어 있을 뿐이다. 증거를 남지 않는 것도 처음에는 운이 작용했고, 후에는 노빈의 협력이 있었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진짜일까? 라고 묻게 되고, 어느새 이탕의 살인은 단순한 살인이 아닌 '단죄'라는 프레임 속으로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송촌은 그런 보는 이들을 대변해주듯 이탕에게 묻는다. 그래서 너는 '확신'이 있냐고. 나도 너처럼 감은 있지만, 그 감은 확실한 '동기'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모호한데, 혹시 너는 그것을 초월하는 확신이 있냐고 말이다.

이 둘 사이에 껴서 애타게 추적을 하는 장난감의 수사 역시 지극히 감에 의존되어있다. 증거도 확신도 없다. 그리고 그가 그 둘을 잡고 싶어하는 것은 정의 구현과는 거리다 멀다. 그렇다고 복수라고 하기에도 너무 순수한 구석이 있어서, 자기증명이라고 불러야 할까. 나쁜 놈, 좋은 놈, 이상한 놈이 아니라 죄다 모호한 놈들 뿐이다.

이 지점까지가 괜찮은 전개였다고 생각하고 후반부는 그 모호함이 다소 선명함으로 바뀌는 것들이 아쉬웠다. 이탕은 '나 사실 너무 무서워'라고 말하는 부분부터 팽팽했던 줄을 놓아버린 것처럼 맥이 빠졌다. 답을 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보여주기만 해도 충분했을 텐데, 뭐라도 답해주고 싶은 마음이 그런 결과를 가져 온 것은 아닐까 싶다. 나쁘지는 않은 결론이었지만, 나는 조금 더 강렬한 혼돈을 원했는지 뭇내 아쉬웠다.

웹툰 원작이 워낙 천재적인 구석이 있어서 어떤 연출을 선택할지 궁금함이 많았는데, 맞춤형 정장 같이 잘 맞는 옷을 입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복해서 말하는 '모호함'을 연출적으로도 잘 표현해서 이런 결의 드라마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보는 맛이 있었다. 다만, 선정적인 장면이 나오는데 굳이 그게 필요한 장면인지는 도무지 동의가 어렵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더 이상 평면적인 '권선징악'에 열광할 수 없지 않나 싶다. 그만큼 선과 악이 흑과 백처럼 딱딱 나뉘지 않고, 뒤범벅이 되어버린 회색지대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도대체 누구 편을 들어줘야 할지 모르겠는 선, 악이 없는 입체적인 이야기에 더 깊이 공감이 되는 듯하다.

물론 이 이야기가, 드라마, 웹툰 원작에서 그만큼의 깊이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잘 건드린 정도라고만 이야기 해보고 싶다. 웹툰 원작도 결론은 그저 그랬다.

그럼에도 최근에 본 드라마 중에 가장 훌륭했다. 적어도 보고 나서 대략 난감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선이란, 악이란 무엇일까. 각각의 이름에 절대성을 부여하기 점점 어려워지는 시절이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모호하다 모호해.
살인자 살인자ㅇ난감 넷플릭스 최우식 손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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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당연스럽게 '내'가 주체가 되어 글을 쓰지만, 어떤 순간에는 글이 '나'를 쓰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마치 나도 '생명체'이지만, 글 역시 동족인 것 같아서, 꿈틀 거리며 살아있어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그렇게 쓰여지는 나를, 그렇게 써지는 글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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