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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왜 돈도 안 받고 이렇게 많은 반찬을 줄까?

16일 공권력 투입 앞둔 한국옵티칼 노조 고공농성, 이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등록 2024.02.15 09:53수정 2024.02.15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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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4공단엔 한국옵티칼하이테크라는 공장이 있다. 1만 2천 평 부지의 큰 공장이고 18년간 총매출액을 7조 7천억 원가량 냈다.

2022년 10월 4일 공장에 불이 났고 건물이 전소됐다. 한 달 후 회사는 공장 청산을 선언하며 약 210명의 노동자 전원에게 희망 퇴직서를 내밀었다. 11명의 노동자는 이를 거부하고 평택에 있는 공장으로 고용승계하라고 주장했다. 모회사도 같고 만드는 물품도 같고 사장도 같은 곳이다.

회사는 노동조합의 요구를 거절하고 모두 정리해고 했다. 노동조합이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투쟁에 돌입하자, 회사는 가압류·가처분을 걸었고 노조 사무실을 단수(斷水)했으며 직접 부수겠다고 굴착기를 끌고 오기도 했다.

올해 1월 8일 두 여성 조합원은 사측의 공장 철거 시도에 반발해 공장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옵티칼 노동조합은 조합원 11명의 작은 노동조합이다. 그러나 많은 언론이 주목하고 여러 연대자가 매일 찾아온다. 찾아오는 이들의 지역도 다양하고 직업도 다양하고 연대의 형태도 다양하다.

어떤 이는 단수된 사무실에 이틀에 한 번꼴로 물 1톤을 가져와 화장실 문제를 해결한다. 어떤 이는 통영에서 직접 반찬을 부지런히 만들어서 보낸다. 어떤 이는 카메라를 들고 와서 일주일 중 절반을 함께 생활하며 기록을 남긴다.

이들은 왜 이러는 걸까? 당사자도 아니고 옵티칼 노조 상근 활동가도 아니다. 옵티칼 노조 조합원의 가족이나 친구도 아니다. 그런데도 개인의 시간, 체력, 돈을 써서 노동조합에 연대하고 지지한다. 이들을 만나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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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싣고온 조창수와 연대자들 조창수씨(하늘색 상의)가 물을 싣고 와 연대지들과 물통을 채우고 있다. ⓒ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매일 물 실어 날라도 안 귀찮으니 더 많이 모였으면 좋겠어요.
 
공공운수노조 경북지역지부 수석부지부장 조창수씨는 일주일에 세 번 트럭에 물탱크를 싣고 옵티칼 노동조합을 찾는다. 지난여름, 사측은 노동조합 사무실에 물을 끊었다. 이후 조합원들은 당장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어서 곤혹스러워했다. 이에 한 활동가가 급수 시설을 직접 설치했다. 그러나 시설만 있을 뿐 물은 노동조합이 알아서 준비해야 했다.

조합원들은 매일 공원에서 약수통에 물을 잔뜩 받아와서 부어야 했다. 노조 일정을 소화하기가 어려운 수준의 노동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창수씨는 참외 농사를 짓는 지인에게 연락했다.


"농수로 쓰는 지하수 있잖아요, 제가 좀 쓸 수 있을까요?"

옵티칼 노동조합의 상황을 설명하며 허락을 구했다. 조창수씨는 1톤짜리 물통을 여러 개 구매하고 구석에 있던 펌프를 꺼냈다. 참외 농장에서 물을 받은 후엔 왕복 1시간 거리를 운전해서 물을 배달했다. 식수로 쓸 수는 없지만, 화장실에서 사용하기엔 충분한 물이다.

- 자주 왔다 갔다 하면 조금 귀찮을 때는 없으세요?
"원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왔는데, 고공농성 후엔 연대하러 사람들이 많이 오잖아요. 그래서 요즘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와요.  원래는 여기 상주하면서 같이 있어야죠(웃음). 하나도 귀찮지 않아요. 매일 매일 물을 실어 날라도 상관없으니까 사람들이 더 많이 옵티칼을 찾고 연대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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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수 후 공원에서 물을 받는 옵티칼 조합원들 ㄴ조 사무실이 단수된 후 공원에서 물을 받는 옵티칼 조합원들 ⓒ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왜일까? 자신이 속한 노동조합도 아니고 심지어 옵티칼은 공공운수 노동조합 소속도 아닌데 왜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는지 물었다.

"저는 구미에서 나름 오래 활동했어요. 노동조합 활동은 지역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역 기반 없이 성공적인 노조 투쟁을 한다는 건 허상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투쟁하겠다는 조합원이 있는데 지지하고 엄호하지 않는다면, 민주노조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산별과 상관없이 연대해야 하는 게 노조의 기본이라고 생각하고요."

조창수씨는 정당하게 싸우겠다는 조합원들이 있다면, 산별에 상관없이 조합원을 지지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조창수씨는 구미에서 오래 활동했다. 그 속에서 구미 지역의 특성과 역사를 지켜봤다. 많은 공장에서 노동조합이 생겼고 회사와 심한 갈등을 겪었으며, 꿋꿋하게 노조를 지켜온 사람들을 보았다.

조창수씨는 옵티칼 투쟁이 지역 기반의 힘으로, 전국적인 투쟁이 되길 바란다. 옵티칼에 연대자가 너무 많아서 "조창수 동지, 죄송한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물이 또 떨어졌어요. 와주실 수 있어요?"라는 전화를 즐겁게 받을 날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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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휘씨와 옵티칼 조합원들이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본능적으로 아는 거죠. 뭉쳐야 이겨낼 수 있다는 걸
 
옵티칼 노조에 반찬을 직접 만들어서 보낸 첫 번째 사람은 통영에 사는 김주휘씨다. 김주휘씨는 '우리밥연대'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며 여러 현장에서 해고자, 참사 생존자, 유가족 등에게 따뜻한 밥으로 마음을 전하고 있다.

작년 8월 옵티칼 노동조합은 거의 모든 끼니를 라면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노동조합 일정이 바빠서 요리할 시간은 없고 매번 배달 음식을 먹기엔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한 활동가가 SNS에 "집에 안 먹는 김치 있으면 보내주세요. 옵티칼에서 감사히 먹겠습니다"라고 올린 것을 김주휘씨가 봤다. 김치, 진미채, 멸치볶음, 어묵볶음, 장조림 등 반찬을 잔뜩 보냈다. 난생처음 '반찬 연대'를 받은 옵티칼 조합원들은 고마워하면서도 어리둥절했다. '이 사람은 왜 돈도 안 받고 이렇게 많은 반찬을 보내줬을까?'

김주휘씨는 반찬 연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2~3일간 장을 본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하기에 신선하고 가격이 싼 재료를 찾아다닌다. 새벽 시장, 식자재 마트를 여러 군데 돌아다닌다. 그 후엔 온종일 재료를 손질한다. 다듬고 썰고 다진다. 김주휘씨는 손을 많이 쓰다 보니 점점 손이 아프다. 불편한 손으로 이리저리 용을 쓰다 보면 가끔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지' 생각하기도 한다.

- 말만 들어도 보통 일이 아닐 거 같아요. 그렇게 힘든 일을 계속하게 하는 동력이 있나요?
"사람들은 저한테 다 퍼준다고 해요. 그런데 일방적으로 다 퍼주는 관계가 어딨겠어요. 반찬 싸 들고 찾아가면, 사람들한테 힘을 많이 얻어와요. 옵티칼 조합원들이 정말 열심히 싸우잖아요. 가서 그걸 보고 나면 힘들다가도 '다음엔 뭐 해오지?'하고 생각하게 돼요. 정말 이 사람들 큰일 낼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와요. 그러면 더 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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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티칼 후원주점 준비하는 김주휘와 우리밥연대 활동가들 옵티칼 후원주점에서 김주휘씨(빨간 상의)와 우리밥연대 활동가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옵티칼 노동조합을 처음 봤을 때 김주휘씨는 '이 사람들 일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옵티칼 노동조합은 '이미 일을 냈다'고 생각한다.

"지금 옵티칼엔 전국의 많은 사람이 힘을 보내고 있어요. 자석처럼 그 사람들을 다 끌어당길 수 있는 건 조합원들의 '싸워서 이기겠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에요. 저도 조합원들이랑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요.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웃음). 옵티칼이 큰일 낸 거죠."

김주휘씨에게 왜 연대를 계속하는지 집요하게 다시 물었다.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힘을 받는다는 느낌만으로 자신의 시간, 체력, 돈을 써서 반찬을 보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럼에도 계속하는 이유를 더 물었다. 김주휘씨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본능적으로 약자인 우리는 아는 것 같아요. 빼앗아 가는 놈들도 있지만 내어주는 동지들도 곁에 있기에 이겨낼 힘이 생긴다는 걸요."

김주휘씨는 옵티칼 조합원들이 겁먹지 않고 싸우길 바란다. 전국의 수많은 사람이 옵티칼 노조에 무슨 일이 생기면 당장 달려올 테니까. 승리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단 후회를 남기지 않고 최선을 다해 싸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때까지 반찬은 걱정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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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티칼 집회 발언자를 촬영중인 김설해 옵티칼 집회 발언자를 김설해씨가 촬영하고 있다. ⓒ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필요한 것과 할 수 있는 게 만나서요
 
옵티칼 현장엔 언제나 카메라가 있다. 카메라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기록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사측과의 충돌에서 증거를 남길 수 있고 감시자가 있다는 압박을 줄 수 있다. 옵티칼에서 이 역할을 하는 것이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이하 '공룡')이란 단체다. 공룡은 두 명의 활동가가 번갈아 가며 옵티칼 현장을 지키는데, 그중 한 명이 김설해씨다. 김설해씨는 매주 청주에서 구미까지 와서 일주일 중 4일간 함께 생활하며 카메라를 책임진다. 김설해씨는 왜 옵티칼에 연대하냐는 질문에 '활동가니까요'라고 간단히 답했다.

"제 행동 하나가 노동조합에 아주 큰 변화를 가져온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모든 투쟁은 작은 힘이 모여서 굴러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현장에 제가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하려고 해요."

옵티칼 사측은 매일 옵티칼 공장을 찾아온다. 공장 건물과 노조 사무실을 철거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때마다 노동조합은 사측을 상대하는데, 사측의 도발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여성 노동자를 밀쳐서 다치게 하고 울타리를 발로 차거나 전기톱으로 잘라서 훼손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카메라로 기록을 남긴 게 '공룡'의 활동가들이었다.

"옵티칼에 꾸준히 연대하기 시작한 건 고공농성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였어요. 와보니까 사측이 매일 침탈 시도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렇다면 카메라가 현장에 있는 게 도움이 많이 될 거 같았어요. 혹시 물리적 충돌이 생기면 증거로 쓸 수도 있고 카메라가 있으면 경찰도 신경을 쓰는 거 같아요."

1월 26일 법원은 '공장철거방해금지가처분'을 강제집행하겠다고 예고했다. 일시는 2월 16일 오전 10시다. 현재 노동조합이 사용중인 노조 사무실을 회사에 넘기도록 강제로라도 집행하겠다는 것이 가처분의 내용 중 일부이다. 김설해씨는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게 가끔 말로 설명하긴 어려워도, 꼭 그래도 해야 할 거 같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는 계획했던 방식이나 일정을 좀 바꿔서 오는 것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특히 누군가의 절실함을 느꼈다면요. 당일 카메라가 많이 필요해요. 꼭 전문 카메라가 아니라 핸드폰이어도 좋으니까 감시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해요. 현장에 필요한 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와주면 좋겠어요. 물론 촬영이 아니어도 같이 있는 게 필요한 날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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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티칼 집회를 촬영하는 김설해 옵티칼 오후 약식집회를 김설해씨가 촬영하고 있다. ⓒ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김설해씨는 조합원과 조합원, 조합원과 연대자가 서로 믿으며 투쟁해 나가길 바란다. 진심으로 서로 믿으면 함께 활동해 나갈 수 있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함께 계획하고 행동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해 나가면서 나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노동자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노동조합과 투쟁하기를 선택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보통은 혼자 참고 넘어가는 걸 택한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이길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혼자서 혹은 소수의 힘으로 회사를 상대로 싸운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

하지만 그 어려운 길에 동반자가 있다는 건 그 자체로 큰 힘이 된다. 물, 반찬, 카메라는 당사자와 동반자의 연결 수단이다. 그를 통해 '연결'을 표현하려 했다. 그 연결이 '투쟁'을 앞으로 굴린다.

* 2024년 2월 16일 오전 10시 구미시 4공단로 7길 53-29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앞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노동조합 #구미 #공장 #NITTO #고공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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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어렵다고 안 할 것인가'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살고 있는 이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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