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명절맞이 우리집 전통은 '게임', 제가 진행했습니다

남들과는 다른,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이벤트... '건강한 무관심' 덕에 더 행복한 명절

등록 2024.02.14 09:55수정 2024.02.14 10:0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새해가 밝았다. 우리 집에는 크게 3가지 연례 가족행사가 있는데, 설과 여름휴가, 추석이 그것이다. 그 중 가장 첫 번째인 설이 갖는 의미는 누구에게나 그렇듯 특별하다. 올해는 평소 만나기 어려웠던 큰이모네 가족까지 오기로 한 설날이라 더 기대가 되었다.


어느새 커버린 우리들

잠시 필자의 친척 관계를 소개하자면, 내 아버지는 외동이고 어머니는 형제자매가 많다. 그 덕에 딸인 나는 친가에서는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외가에서는 또래 친척들과 신나게 놀 수 있는 최적(?)의 관계를 갖고 있다.

나는 또 아빠를 닮아 사람을 무척 좋아하는데, 그래서인지 아빠도 멀리 가더라도 엄마네 식구들 보러 가는 걸 매우 좋아한다. 설 연휴가 짧은 해에는 "별로 놀지도 못할텐데 뭐하러 내려가"라며 말리는 엄마와 "당신 가족인데 안 보고 싶어?"라는 아빠의 채근이 팽팽히 맞선다. 엄마네 가족이 더 복닥복닥하고 편안한 분위기라 그런 걸까.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 근처에 사는 셋째이모네 가족과 함께 내려가게 되었다. 옛날엔 차가 비좁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새삼 훌쩍 커버린 우리와 그만큼 낮아진 아빠 엄마들의 키 탓인지 차가 비좁게 느껴졌다.
 
a

출발 전 차 안에서 다함께 찍은 사진. 유독 들뜬 아빠가 보인다. ⓒ 황은비


우리 가족은 게임을 좋아한다. 버스 전용차선을 타고 가며 한껏 트인 기분이 되면,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된다.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게임이 뭐가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아주 다양하다. 먼저 클래식의 끝판왕 초성게임. 부모님 세대 어른들이(우리도 이미 성인이지만 아무튼) 더 열심히 한다.

머리를 좀 쓰고 나면 다음으론 목을 풀어줘야 하는데, 이건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안성 맞춤인 게임이다. 특정 단어를 말하면 해당 단어가 들어가는 노래를 한 소절씩 부르고, 제일 늦게 말하거나 생각해내지 못한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가족들과 함께 하면 동요부터 트로트까지 다양한 노래가 뒤섞여 나온다. 주크박스를 튼 효과를 낼 수 있어 더 재미있는 게임이다.


휴게소에 들러 한 끼 식사를 해결하고 한숨 자다가 일어나 수다를 떨면, 어느새 톨게이트를 지나 엄마의 친정에 도착한다. 이모들이 가져온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닦아 한 입 깨물고, 할머니가 만드신 반찬으로 한 상 차리다 보면 잔칫상도 이런 잔칫상이 없다. 
 
a

부엌에서 함께 요리하고 있는 모습 ⓒ 황은비

     
여느 집과 비슷하게 여자인 이모들이 상차림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지만, 이제 다 큰 우리 세대는 친척 오빠, 동생 할 거 없이 부엌일을 거든다. 'OO은 꼭 이래야 한다'는 강요가 없는 분위기가 오랜 기간 친밀한 가족 모임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a

우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던 세뱃돈. ⓒ 황은비

 
인심 후한 우리 이모, 삼촌들의 세뱃돈도 물론 한 몫 했다. 20대 중반임에도 아직 세뱃돈을 받는다는 게 좀 쑥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친척들은 대학 졸업할 때까진 받는 거라며 올해 2월 졸업생인 나까지 챙겨주셨다.

온가족이 게임과 함께하는 이색 명절

이런 훌륭한 가족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족 행사 진행이다. 게임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종종 보드게임이나 고스톱을 즐기는데, 설날엔 특별히 온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설날 퀴즈대회'를 진행한다.  

우선 팀을 4인 1조로 나누고 팀의 합을 보기 위해 두개 선택지 중 고르는 '밸런스 게임'을 진행했는데, 생각보다 친척 어른들이 잔머리를 많이 쓰면서(무조건 앞 선택지 고르기 등) 결국 게임은 무효가 됐다. 다음으로 진행한, 예능 프로그램의 인물 퀴즈나 사물 퀴즈는 반응이 무척 좋았다.

특히 늘 말이 적은 편이고, 점잖고 조신하던 둘째 이모가 이모부의 성함을 외치며 열정적으로 게임에 참여하던 모습이 어찌나 감동적이던지. 덕분에 가족들 모두가 배를 잡고 웃었다. 이번 여름 휴가 때도 이벤트를 준비해달라고 말씀하시며 큰삼촌은 나를 '여름휴가 이벤트 집행위원장'으로 선정하셨다.

한바탕 웃음꽃이 핀 집안은 이전과 다른 열기로 가득했다. 나의 뿌듯함은 덤! 특히 더 많은 사람이 모인 올해엔 가족사진을 남기자는 의견이 나와서, 온 가족이 함께 거실에 모여 앉아 사진을 찍었다. 당시 분위기가 어땠는지는 맨 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앉은 우리 어머님의 밝은 미소를 보면 알 수 있다.
 
a

2024년 설날 가족사진. ⓒ 황은비

 
자녀 세대인 우리가 부모님께 물려받은 가장 귀한 유산은 존중과 화목함이다. '누구는 어디 대학에 들어갔다더라', '누구는 어디 회사에 다닌다더라' 하는 비교와 질투 없이 그저 건강한 무관심으로 키워낸 우리 세대는 언제나 명절 귀성길에 오르는 발걸음이 가볍다.

명절이 모두에게 설레는 시간이 되길, 행복한 시기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벤트 집행위원장'인 나는 이만 여름 휴가를 계획하러 가야겠다.
#설날 #명절 #가족모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끝내 사랑이 이긴다고 믿는 낭만파 현실주의자입니다. 반건조 복숭아처럼 단단하면서도 말랑한 구석이 있는 반전있는 삶을 좋아합니다. 우리 모두는 언제나 모순적이니까요!

AD

AD

AD

인기기사

  1. 1 금반지 찾아준 사람이 뽑힐 줄이야, 500분의 1 기적
  2. 2 검찰의 돌변... 특수활동비가 아킬레스건인 이유
  3. 3 '조중동 논리' 읊어대던 민주당 의원들, 왜 반성 안 하나
  4. 4 '윤석열 안방' 무너지나... 박근혜보다 안 좋은 징후
  5. 5 "미국·일본에게 '호구' 된 윤 정부... 3년 진짜 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