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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티즈는 참지 않긔' 유행 밈의 반전

[개를 위한 개에 대한 이야기] 강아지 괴롭히며 즐기는 모습들... 선은 넘지 맙시다

등록 2024.02.16 11:46수정 2024.02.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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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훈련사로서 가장 큰 깨달음은 훈련 기술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에 있었습니다. 보호자와 반려견, 가까이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진짜 그들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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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티즈는 참지않긔' 주인공인 말티즈. 국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견종 중 하나이다. ⓒ pixabay

 
SNS에서 퍼져나가는 유행, 모방, 창작물 등을 일컬어 일명 밈(meme)이라 한다. 쉽게 말해 피식 웃음 짓게 할 만한 사진이나 영상으로 이해하면 쉽다. SNS에선 동물 밈, 특히 개에 대한 밈 콘텐츠가 자주 유행한다. 그중 유명한 게 2018년경부터 시작해 지금까지도 자주 보이는 '몰티즈는 참지 않긔' 밈이다. 

먼저 몰티즈는 남유럽의 몰타섬이 원산지인 소형견으로, 국내 반려견 가운데 무려 25만 7천여 마리를 차지해 한국인이 가장 많이 키우는 견종으로 알려져있다(KB금융경영연구소 '2018 반려동물보고서' 참조). 작은 체구이나 당돌하고, 좋고 싫음이 분명한 성격을 가진 개들이 많은 편이다. 이런 몰티즈들이 보호자에게 '참지 않는' 밈이 유행한 것이다. 포털 사이트에 검색만 해봐도 쉽게 나올 만큼 많은 밈이 이미 생산되었다. 


대표적인 그림은 이렇다. 몰티즈가 쉬고 있는데 보호자가 가서 몰티즈를 건든다. 이름을 부르는가 하면, 장난스럽게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며 우스꽝스럽게 몰티즈를 건드린다. 가만히 쉬고 있던 몰티즈는 표정이 바뀌며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아르릉' 거린다. 사람들은 일명 이것을 '시동 건다'라 부르며 기대를 갖기 시작한다. 

개의 경고에도 사람은 계속해서 몰티즈를 건드리고, 견디다가 참다못한 몰티즈는 폭발하여 결국 성질을 낸다. 거기에 보호자가 '악!'하고 놀라는 부분을 사람들은 재밌어한다. 하얗고 조그마한 강아지가 참지 않고 으르렁 거리는 모습에 사람들은 대부분 '귀엽다, 재밌다'라는 반응이다. 한마디로 있는 힘껏 성질을 건드린 뒤에 개가 화내는 걸 재밌어하는 것이다.

이런 밈은 큰 인기를 끌었다. 몰티즈뿐만 아니다. 미국에서는 멕시코가 원산지인 당돌한 성격의 '치와와'가 그 대표 밈의 견종이 됐다. 치와와 또한 몰티즈와 비슷한 작지만 당돌하고 좋고 싫음이 명확한 편이다. 이 치와와는 작은 견종이라 있는 힘껏 성질을 내도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치와와를 쓰다듬는 게 밈의 주된 내용인데, 마찬가지로 다들 재밌어한다.

이 글을 보는 당신도 너무 귀여운 동물을 봤을 때 "깨물어 주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너무 좋을 때 오히려 눈물이 나는 것처럼, 긍정적인 감정이 생길 때 상반되는 감정이 드는 것을 일컬어 '귀여운 공격성(Cute Aggression: 2015년 미 예일대 오리아나 아라곤 연구)'이라는 심리학 용어도 생겼단다. 뇌가 감정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하는 행위라고 한다.

심리학 논문에서 발표가 될 만큼 인간이 가진 본능이라고 하지만, 어느새부턴가 선을 넘어서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과연 이런 밈들은 정말 웃고 즐길만한 것일까? 몰티즈는 진짜 참지 않는 것일까? 


몰티즈는 사실 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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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의 신호 개들은 끊임없이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못 알아들을 뿐이다. ⓒ Lili Chin

 
'몰티즈는 참지 않는다'던 밈이 한창 유행하던 2019년, 같은 해에 방문 훈련을 의뢰받았다. 내용인즉슨 키우는 몰티즈가 보호자의 손길을 거부하고 사납게 굴어 아주 골머리가 아프다는 것이었다. 유선상의 통화에서도 보호자는 개에게 아주 싫증이 난듯한 투로 이야기를 했다. 괘씸하니까, 훈련사인 내가 와서 몰티즈를 혼내서 바로 잡아달라는 듯한 뉘앙스였다.

그런데 처음 방문했을 때 몰티즈가 보인 모습은 정반대였다. 매우 부드러운 모습으로 나를 맞아주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함부로 만지지 않은 채 차분히 자리에 앉자 몰티즈는 안심한 듯 내 옆에 앉았고, 나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그렇게 상담을 하던 중 몰티즈는 나를 만난 지 20분이 채 되지 않아 잠이 들었다. 보호자는 억울하고 황당하다며, 평소 자기랑 있을 땐 악마가 따로 없는데 지금 연기하는 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보호자에게 좋아서 개에게 하는 표현이 있냐고 물었다. 보호자님은 아무렇지 않게 자기가 평소에 쉴 때, 몰티즈 배에 일명 배방귀(입으로 배에 바람을 불어 방귀 소리가 나게 하는 것)를 해주고, 노래를 부르면서 건드리는 행동을 좋아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걸 할 때 몰티즈가 가장 성질을 낸다고 했다.

자기가 평소에 얼마나 맛있는 간식과 장난감을 자주 주는데도 그걸 모른다고, 애가 버릇이 없다고 푸념을 하시기도 했다. 상담 와중에 보호자님은 내게 "진짜 몰티즈는 원래 안 참아요?"라고도 질문하셨다. 이 질문에 난 꾹 참아왔던 말씀을 차근차근 드렸다. 내가 한 답변에 보호자님이 지었던 충격받은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몰티즈가 처음 만난 저에게도 이렇게 부드러운 걸 보면, 아마 보호자님께서 참지 않도록 양육해 온 강아지일 겁니다. 참다 참다가 이제는 화를 내는 거죠. 보호자님이 강아지에게 좋아한다고 하는 표현은 강아지가 모두 싫어한다는 것, 오히려 그냥 놔두면 강아지가 편안해한다는 게 이상하시지 않나요?" 

그 뒤로 이 몰티즈가 쉴 때는 보호자가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다만 스스로 원해서 다가왔을 때엔 가벼운 터치를 하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변했다.

물론 선천적으로 몸의 감각이 예민하고 만지는 것을 싫어하는 개들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참지 않는다'고 표현할 정도로 기민한 개들은 그런 기질을 타고난다기 보다는 보호자가 그렇게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크다. 또 예민한 개들이라면 배려와 교육으로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

즉,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몰티즈도 참는다. 사람이 참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놓고는 참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불편하다고 티내는 데도... 장난으로 던진 돌에 누군가는 맞아 죽는다 

훈련사를 하면서 사람이 참 간사하다고 자주 느낀다. 잘못된 결과보다도 '내 선한 의도'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상황, 보호자들이 자기가 개에 대해 한 행동을 합리화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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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이해한다는 것 이해는 쉬우면서도 어렵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쉽고, 내 입장에서 생각하면 개들은 어려워진다. ⓒ 최민혁

 
'개가 싫어하고 괴로워하는데도 보호자가 괴롭히며 이를 웃고 즐긴다'는 문장을 써놓고 보면 어떨까. 이 문장을 보고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상한 일은 주변에 생각보다 흔하게 일어난다. 잊을만하면 벌어지는 동물학대 사건에서도 강아지를 장난감처럼 갖고 놀면서 생기는 사례가 적지 않다. 

동물뿐일까. 다양한 학교 폭력에서 정말 많은 가해자들은 "장난이었다"는 한 마디로 변명을 하곤 한다. 한두 번 장난은 그렇다 쳐도, 개가 진심을 다해 참지 않고 화내며 짖는 장면은 그동안 인간이 쳐온 장난이 개에겐 장난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그런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만약 이걸 바꿔 생각해, 학교 폭력 가해자들이 특정 학생을 괴롭히며 웃고 즐기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다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파장 또한 어마어마할 것이다.
   
사람이 아니니 상관 없다고? 한 끗 차이일 텐데, 그럼에도 '몰티즈는 참지 않는다'는 콘텐츠를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웃고 즐긴다. 개가 원하지 않는 게 보이는데도 재밌고 귀여워 보이는 분위기라면 사람들은 그냥 즐긴다. 영상 속 개는 코 핥기, 동공 확장, 귀 잔뜩 뒤로 젖히기, 하품하기 등등 불편하다고 몸으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보이는데도 말이다. 

개들은 대부분 쉽게 처음부터 보호자에게 화내지 않는다. 자신이 불편해하고 있다는 신호를 눈, 코, 입, 표정, 꼬리, 몸짓으로 최대한 드러낸다. 그래도 그 선을 넘으면 소리를 높여 으르렁 거리며 화를 내는 것이다.

'몰티즈는 참지 않긔' 밈을 앞으로 만나게 된다면 주의하자. 개가 화를 내는 콘텐츠들이 재밌다는 이유로 생각 없이 웃고 즐기는 것은, 옆에서 함께 돌을 들어 던지는 행위일 수 있다.
#반려견 #강아지 #반려견교육 #말티즈 #반려견훈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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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반려견 훈련사 '최민혁'입니다. 그저 개가 좋아 평생을 개와 가까워지려 하다보니 훈련사란 직업을 갖게 됐고, 그들의 이야기를 이제야 들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려동물이지만, 우리는 그들을 여전히 오해하고 모르고 있습니다. 개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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