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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에서 외면당하는 비욘세, 봉준호의 이 말이 떠올랐다

[주장] 꾸준히 그래미서 외면받은 비욘세, '좋은 음악'은 필요조건일 뿐이다

24.02.08 17:16최종업데이트24.02.0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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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 트로피를 술잔으로 쓰는 모습이 담긴 제이지의 X(트위터) 게시물 갈무리 ⓒ 피플

 
가수 비욘세(Beyoncé)의 남편이자 래퍼 제이 지(Jay Z)가 그래미 시상식에서 받은 트로피에 술을 따라 마시며 그래미를 비판해 화제를 모았다. 

지난 5일(현지 시간) SNS에는 그래미 트로피(그라모폰)의 원통에 코냑을 따라마시는 제이지의 영상이 여러 건 게재됐다. 그는 시상식에서 '닥터 드레 글로벌 임팩트' 상을 받고 무대에 올라 주최 측인 레코딩 아카데미를 비판하며 "비욘세는 가장 많은 그래미를 수상했지만, 한번도 '올해의 앨범'을 수상하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그것을 바로잡길 원한다"고 말했다.

매년 후보 지정부터 수상 결과에 이르기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래미 시상식은 늘 전 세계 음악 팬들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이유라면 먼저 1959년에 시작해 올해 66회를 개최할 정도로 긴 역사를 자랑한다는 것이고, 여러 뮤지션이 레드카펫을 밟고 성대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는 점도 빼놓을 수 요소다.

그리고 이를 주최하는 집단이 일명 'NARAS(National Academy of Recording Artists and Sciences)', 즉 레코딩 아카데미라는 업계 종사자들의 모임이라는 것도 그래미의 명성에 한몫한다. AMA로 불리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MTV 채널에서 방영하여 보다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비디오 뮤직 어워드(VMA) 등과 비교했을 때에도 그래미 어워드가 가지는 무게감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해마다 쏟아지는 보수적인 그래미에 대한 비판

막대한 권위에는 당연히 보수적인 성향이 따라오기 마련. 명망만큼이나 그래미 시상식의 결과는 여러 키워드로 공격을 받는다. 인종과 성별 등 여러 요인을 차별 대우 한다는 불만은 이제 나오지 않으면 아쉬울 정도다. 그리고 이런 비판적인 분석은 이내 레코딩 아카데미가 꽤나 '꼰대' 같은 집단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예시야 쏟아진다. 당장 최근에는 2020년 앨범 < After Hours >로 높은 평가를 받은 데에 이어, 수록 싱글 'Blinding Lights'로 엄청난 상업적 히트까지 이룩한 위켄드(The Weeknd)가 제63회 시상식 어떤 부문에도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이 대표적이다. 흑인 사회에 대한 담론을 직접적으로 끄집어내어 발매 직후부터 각종 매체로부터 명작 칭호를 받은 래퍼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 To Pimp a Butterfly > 앨범도 올해의 앨범 트로피를 받지 못했고, 그보다 앞서 힙합의 판도를 바꾼 앨범으로 지목되는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는 아예 해당 부문에 후보로도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가수 비욘세 만큼이나 억울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래미 트로피를 한 번도 받지 못한 아티스트에게 비욘세는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일 지도 모른다. 아이슬란드 출신으로 전자음악의 전설과도 같은 비요크(Björk), 2010년대 대중을 사로잡았던 케이티 페리(Katy Perry) 등의 아티스트에 비하면 비욘세는 총 32번이나 수상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당장 앨범 < RENAISSANCE >를 발매한 이후 참석한 2023년 시상식에서도 그는 총 네 부문에서 상을 가져갔다. 그렇지만 랩 음악에 한 획을 그은 래퍼 제이 지가 올해 노골적으로 레코딩 아카데미에 대한 비판을 표한 것은 바로 시상식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주요 부문(제너럴 필드),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에서의 묘한 홀대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비욘세는 영화 <드림걸스>의 사운드트랙 'Listen'이나 최근 다시 숏폼 챌린지로 인기를 끄는 'Single Ladies' 등에 머물러 있지만, 아티스트로서 그의 커리어는 오히려 그 이후에 본격적인 상승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 2013년 말 깜짝 발매해 전곡 뮤직비디오를 대동한 비주얼 앨범 < BEYONCÉ >부터 2017년 앨범 < Lemonade >와 가장 최근 공개한 < RENAISSANCE >까지 비욘세의 앨범은 매번 각종 평론지에서 극찬을 받았다.

단순히 과거 걸그룹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 시절부터 선보였던 듣기 좋은 알앤비 음악을 넘어 개러지 록과 컨트리 등 각종 장르를 섭렵함은 물론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담아냈기 때문이다. < Lemonade >는 제이 지의 불륜이라는 소재에 가정사 및 흑인 사회 속 여성의 존재를 엮어냈고, 아예 언더그라운드 하우스 음악의 재부흥을 선포한 < RENAISSANCE >는 투어 필름까지 개봉하여 부연 설명할 정도로 클럽 문화를 둥지 삼은 흑인과 성소수자 등 각종 소수자의 존재를 포용했다.
 
비욘세급의 슈퍼스타가 이끄는 원대한 발걸음은 너끈히 음악의 혁신을 이끌었다. 원래 각국별로 제각각이던 새 음악의 발매 시간은 < BEYONCÉ >의 영향으로 금요일 자정으로 통일되었고, 음반의 우수한 퀄리티는 늘 록 등에 비해 평가절하되던 주류 팝 음악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팝티미즘(Poptimis)' 흐름을 촉발했다. 그럼에도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올해의 신인'과 함께 그래미의 가장 주요 부문인 '올해의 앨범' 상을 그는 한 번도 가져가지 못했다. 2015년에는 싱어송라이터 벡(Beck)이, 2017년에는 아델(Adele)이, 그리고 2023년에는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물론 이 세 뮤지션의 음악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벡이 발표한 < Morning Phase >는 상업적으로 큰 반향을 끌어내지는 못했지만 평단에서 충분한 찬사를 받은 앨범이었고, 'Hello'를 수록한 아델의 < 25 >가 끼친 파급력을 그 누가 잊을 수 있을까. 해리 스타일스의 < Harry's House > 앨범도 그해 손꼽히는 수작이었다. 그러나 세 차례 무산된 비욘세의 수상은 공교롭게도 경쟁자가 모두 백인이었다는 점과 겹치며 그래미가 인종차별적인 시상식이라는 비판에 무게를 실었다.
 
그래미가 사실은 인기투표일 수밖에 없는 이유
 

그래미 수상 무대에 오른 제이지와 그의 딸 블루 아이비(오른쪽) ⓒ AFP/연합뉴스

 
사실 인종차별이라는 키워드는 레코딩 아카데미 입장에서 조금 억울할 수도 있다. 사실 비욘세도 'Single Ladies'로 '올해의 노래'를 수상한 적이 있으며, 최근에도 흑인 뮤지션 리조(Lizzo)가 'About Damn Time'으로 '올해의 레코드'를 타갔기 때문이다. 즉 비욘세의 연이은 올해의 앨범 수상 실패는 조직적인 차별 시도라기보다는 시스템 자체의 맹점에 기인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앞서 언급한 위켄드의 0개 부문 후보 지정 사태 이후 레코딩 아카데미는 신규 유권자를 2천 명 이상 추가하면서 다양성을 높였다. 또, 뮤지션의 홍보 자료에 상업적인 기록을 기입하지 못하게 하는 식의 변화를 취했다. 그럼에도 다수가 참여하는 투표 제도는 필연적으로 대중적인 성과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뮤지션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릴 수밖에 없게 한다(영화계에서 비슷한 권위를 자랑하는 아카데미 시상식과 마찬가지로). 전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회원도 쉽게 투표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가 올해 < Midnights >로 올해의 앨범을 수상한 사태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 Midnights >는 심지어 팬들에게까지 음악적으로 기존 그의 음반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작품이었지만, 물불 가리지 않는 엄청난 규모의 팬덤으로 테일러 스위프트는 차트는 물론 투어 등 온갖 분야에서 큰 파급력을 자랑했다.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들이 가볍게 표를 던지기 딱 좋은 인물인 것은 당연지사. 즉 음악적인 완성도가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인기투표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군다나 그래미 시상식은 수상을 통한 스타 만들기에도 적극적이다. 주요 네 부문을 모두 석권한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처럼 한 해에 주요 부문을 싹쓸이하는 스타가 종종 등장하는 현상도 이러한 이유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본상 트로피를 여러 아티스트가 나눠 가지는 것보다 한 명이 독식하는 것이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되기에 더 좋지 않겠는가.
 
물론 비욘세도 이들 못지않은 엄청난 스타다. 그렇지만 그가 지향하는 음악적 가치관과 정체성이 그래미와 일부 어긋나는 것도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그의 음반은 일단 여러 프로듀서를 대동하는 블록버스터 형식이며, 특히 < RENAISSANCE >는 하우스(House) 장르의 기본 특성상 타인의 음악을 인용하는 샘플링 기법의 비중이 높다.

즉 비욘세는 전통적인 싱어송라이터와는 거리가 멀다. 또한 질적인 측면과는 별개로 그의 음악은 선율 위주의 대중적인 요소를 점차 탈피하고, 장르적인 깊이를 더함에 따라 일부 난해하게 들리는 요소를 적극 수용하는 중이다. 비욘세의 익숙한 히트곡과 < RENAISSANC E>를 바로 이어서 들어본다면 비교가 확실히 될 것이다.
 
예술은 객관적인 평가라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각 집단이 지닌 성향도 제각각인 것이 당연하다. 인디 계열에 주목하는 평론지 피치포크(Pitchfork)와 종합지로서의 성격이 강한 롤링 스톤(Rolling Stone)이 다르고, 영화계에서는 베니스 영화제와 베를린 영화제가 다른 것처럼 그래미 시상식의 결과도 그들만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이해하면 편하다.

문제는 오랜 역사성과 방송 전파를 통한 막대한 노출이다. 계속해서 보유하고 있는 높은 주목도와 화제성으로 인해 그래미 시상식은 하나의 의견 표시 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새삼 아카데미 시상식을 "로컬 어워드"라고 평했던 봉준호 감독의 발언이 생각난다. '그들만의 잔치'인 그래미 어워드가 보기 싫다면 이를 하나의 대변자가 아니라 정말 '그들만의 잔치'로 대우해야 한다. "악플보다 무플", 그러니까 싫다면 그냥 무관심이 답이라는 말이다. 돌고 돌아 원론적인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래미 비욘세 시상식 아델 테일러스위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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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웹진 이즘(IZM)에서 활동하고 있는 필자 한성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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