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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일주일 둘러본 느낌... 자기 색깔 지키려는 노력 인상적

[6박7일 중국 탐방 ⑦] 천단공원

등록 2024.01.29 16:31수정 2024.01.2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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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탐방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 산책을 나가는데 숙소 바로 앞이 베이징 제25중학이다. 아직 어두컴컴한 시간인데 홍등과 돌사자 사이 교문으로 학생들이 몰려 들어간다. 7시 30분까지 등교해 일찍 일과를 시작하는데 중국 중고생들도 한국 학생들 못지않게 힘겨운 학창시절을 보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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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제25중학 교문 모습 중국풍의 학교 정문이 인상적이다. 7시 30분까지 등교, 일과가 일찍 시작된다. ⓒ 김대오

 
버스를 타고 마지막 코스 천단(天壇)공원을 향한다. 얼마 가지 않았는데 경찰이 갑자기 버스를 세우더니 차에 오른다. 정지 상태에서 힘껏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배기가스를 측정한다. 베이징 교통당국은 대기 오염도를 낮추기 위해 배출기준 부합 차량에 대한 기준을 점점 높이고 있으며 매연 차량에 대한 단속도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다행히 별 문제가 없는지 버스는 천단 남문에 일행을 내려준다.

고대인의 우주관을 엿볼 수 있는 천단공원

천단공원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약간의 기울기를 갖고 오르막길로 설계되었는데 인간의 기원이 하늘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남쪽은 네모, 북쪽은 둥글게 외곽 성벽이 쌓아진 것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이 반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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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심석에서 공명효과를 시도해보는 학생의 모습 천심석은 아래 공명효과를 통해 목소리가 울리게 되어 있다. ⓒ 김대오

 
남문으로 들어서자 9의 덩어리인 원구단이다. 아홉 개의 계단을 세 번 헤아리며 오르자 원구단 둥근 돌조각들이 펼쳐진다. 정중앙 천심석을 중심으로 9의 배수로 아홉 개의 동심원이 펼쳐진다. 마지막 동심원은 9×9, 81개의 돌조각으로 되어 있다. 양의 수이자 황제의 숫자인 9를 위한 헌정 건축물처럼 여겨진다.

천심석은 아래 공명 효과를 통해 목소리가 울리게 되어 있는데 한 학생이 소리를 내보더니 자신의 목소리가 공명되는 것에 신기해 한다. 하늘의 아들인 천자(天子)가 하늘(天)에 닿으려는 간절함이 구상해낸 과학적인 건축 설계가 기발하다.

황궁구, 단폐교를 지나 기년전으로 가는 길

원구단에서 내려와 둥근 벽으로 둘러싸인 황궁우에 들어선다. 제천 의식을 준비하고 역대 황제와 하늘, 바람, 구름, 해, 달 등 자연신의 위패가 모셔진 곳이다. 이곳도 곳곳에 고대인의 과학적 건축 설계가 숨어 있다. 우선 도자기를 빚는 찰흙으로 정교하게 만든 벽돌로 지은 둥근 벽은 중앙이 비어 있어 소리 진동이 둥글게 한 바퀴 돌게 한다. 소리가 돌아온다고 하여 회음벽(回音璧)이라고 불린다. 또 건물 앞에는 삼음석(三音石)이 있는데 박수를 한번 치면 전면과 측면 건물에 부딪힌 음파가 반사, 굴절되어 세 번 울리는 공명 효과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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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단공원의 황궁우 회음벽과 삼음석이 하늘의 소리를 놓치지 않고 인간세계에 전하려는 고대인의 사유의 흔적을 반영하고 있다. ⓒ 김대오

 
정교하게 만든 벽돌과 과학적인 건축 설계를 통해 하늘의 소리를 한 자락도 놓치지 않고, 최대한 공명하게 하여 인간 세계를 휘감아 퍼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건축 이념이 녹아 있다.

360m의 단폐교는 지상과 천상을 잇는 다리다. 4m 높이의 단인데 다리라고 불리는 건 희생으로 사용할 소, 양 등이 지나가는 동서로 연결된 통로가 하나 있기 때문이다. 30m 폭의 단 위의 중앙통로는 신도(神道)이고 황제는 동쪽 길, 황후와 신하들은 서쪽 길을 따라 천궁에 이르도록 설계되어 있다.


중국 건축기술과 예술미의 백미인 기년전에서 빈 소원

단폐교를 지나자 기년전이 등장한다. 고대의 우산처럼 둥글게 펼쳐진 세 겹의 푸른 기와지붕, 그 위에 물기에 젖은 나무 기둥이 벌어지는 것을 눌러주는 꼭대기의 금색 기둥이 단아하면서도 웅장하게 우뚝 솟아 있다. 중국의 건축기술과 예술미를 가장 완성도 높게 보여주는 건축물로 평가된다. 내부는 사계절을 상징하는 4개의 기둥, 12달과 12시간, 24절기를 나타내는 기둥들이 건물을 굳건히 떠받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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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단공원의 기년전 중국의 건축기술과 예술미를 가장 완성도 높게 보여주는 건축물로 평가된다. ⓒ 김대오

 
진시황이 태산에 올라 시행한 봉선의식에서부터 역대 황제들이 하늘에 지내왔던 제천의식 중에서 가장 엄정하고 규범화된 형태의 의식이 거행되던 곳이기도 하다. 기년전에서의 제례는 주로 봄에 농사의 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의례가 행해졌다. 지금도 중국은 올림픽, 박람회 유치 등 국가 차원의 기원할 일이 있을 때 주로 이곳에서 행사를 거행한다. 뭔가 기원하기 좋은 기년전 앞에서 고3이 되는 우리 학생들이 2024년 더욱 정진하여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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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으로 나가는 회랑 과거 이곳은 악기 연주, 마작, 사교춤, 합창 등 각종 취미활동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이다. ⓒ 김대오

 
기년전을 벗어나 동문으로 나오는데 회랑의 풍경이 썰렁하기만 하다. 과거 이곳은 악기 연주, 마작, 사교춤, 합창 등 각종 취미활동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이다. 아마도 회랑에서의 활동을 규제하는 어떤 규정이 생긴 모양이다. 굳이 이런 문화 활동까지 규제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쉬움이 앞선다. 중국 정부는 자신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집회가 아니라면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 모양이다.

자기 문화에 대한 자존감 지키려는 중국의 노력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서 학생들에게 일주일간의 중국 탐방에 대한 소회를 묻는데 한 학생이 중국은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큰 것 같다고 대답한다. 외래어도 어떻게든 중국어로 바꾸어 표기하려고 하고, 현대적 건물이 들어선 곳이라 해도 중국풍의 건물을 끼워 조화를 이룬다든지 중국적인 색깔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것이다.

근대로의 전환이 더뎠던 한국도, 중국도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 서구화에 열을 올렸다. 이제 우리도, 중국도 양복과 청바지가 일상이 되었고 전통의상을 입으면 그게 낯설게 느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자신의 고유한 색마저 완전히 잃으면 안 될 것이다. 중국은 비록 투박하고 때로 사회주의의 경직성이 묻어나긴 하지만 어떻게든 중국적 특색의 현대화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들린다.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 중국도 일본이나 한국처럼 미국적 가치를 받아들일 거라 믿었지만 중국은 미국의 길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표준을 만들려 한다. 그것이 미중 갈등의 본질이기도 하다. 우리는 미국에도, 중국에도 매우 중요한 나라다. 자부심을 갖고 미국 편도, 중국 편도 아닌 우리 국익의 편에 당당히 설 필요가 있다.

학생들은 대체로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서 완전히 벗어날 정도는 아니지만 QR 스캔을 통한 결제시스템, 전기자동차, 고속철도 등 과학기술 분야에서 생각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음을 느꼈다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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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의 중국 탐방 일주일간의 중국 탐방이 중국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좋은 창, 좋은 기회가 되었길 바란다. ⓒ 김대오

 
중국의 젊은이들은 G2로 성장한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커졌고 한류의 영향도 받지 않고 성장해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별로 없다. 한국의 젊은이들 또한 보수언론이 정파적으로 퍼트린 중국에 대한 과도한 부정적 보도에 오래 노출되어 중국혐오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물론 중국도 동북공정, 문화공정, 사드보복 등 밉상인 건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파적 색안경을 걷어내고 중국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가까운 지리 조건을 활용하여 상호 교류의 폭을 넓혀 접촉면을 늘려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우리의 국익에, 미래 세대의 성장과 기회 창출에 더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소원해진 양국 외교관계, 인적 교류마저 뜸해진 상황에서 일주일간의 중국 탐방이 중국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좋은 창이 되고, 바꿀 수 없는 이웃 나라이자 포기할 수 없는 거대 시장 중국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작은 기회가 되었기를 다만 바라고 바란다.
#천단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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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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