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2020년 코로나 신부, 드디어 결혼식 합니다

아이 낳고 새신부 하려니 무척이나 어색하지만... 웨딩드레스 입어서 좋네요

등록 2024.01.30 10:31수정 2024.01.30 10:31
0
원고료로 응원
둘째 계획을 잠깐 미뤘다. 뒤늦은 결혼식을 하기 위해서다.

남편과 나는 2019년 10월에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2020년 2월에 결혼식을 치를 예정이었다. 그런데 2020년 1월부터 코로나가 슬슬 유행하기 시작했다.

지하철 칸에 나를 뺀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썼던 날,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는 눈초리가 느껴지던 날, "무언가 잘못 되어가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혼자 그랬더랬다. "까짓거, 코로나가 별 거야? 나는 안 두려워!"

남편과 혼인신고를 하고, 곧 결혼식을 앞둔 새 신부. 사랑의 힘으로 뭐든 극복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우리를 덮칠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2월 18일, 결혼식을 단 나흘 남기고 대구에서 신천지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는. 

결혼식을 취소할 줄이야
 
a

너무 서운했지만, 서운해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제일로 무서운 것은 정말 대구에 온 하객들이 코로나에 감염되면 어쩌지 하는 것이었다. ⓒ 서나연

 
2월 19일, 2월 20일, 2월 21일... 결혼식 날짜가 다가올수록 확진자 수는 늘어만 갔다. '1차 대유행' 시점이었어서 제대로 된 방역 수칙이랄 것도 없었고, 사람들의 공포심만이 극에 달하던 때였다.

당시 대구의 거리는 멸망한 도시처럼 한산했다. 아파트 정문에서부터, 이백 미터를 가로질러 마트까지 가는 길에 '단 한 명도' 마주치지 않을 정도였다. 결혼식 날짜가 다가오는데, 듣도 보도 못한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도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제일 친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못 갈 것 같아. 지금 대구에 가면 일주일간 격리해야 한다는데. 내가 상황이 그럴 수가 없어. 너무너무 미안해." 결혼식 이틀 전에는 친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나연아, 미안해. 회사에서 대구 가지 말래. 진짜 미안해. 니 결혼식인데. 이게 뭐냐."

'축하해'라는 인사를 들을 줄만 알았던 날에, '미안해'라는 말들만 귓가에 울렸다. 당시에는 페이스북에만 접속해도 '대구 봉쇄령'을 언급하는 게시물이 타임라인에 뜰 정도였다. 

너무 서운했지만, 서운해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제일로 무서운 것은 정말 대구에 온 하객들이 코로나에 감염되면 어쩌지 하는 것이었다. 일생에 단 한 번 뿐일지 모르는 결혼식에, 축하를 하러 온 나의 하객이, 무시무시한 전염병에 걸린다니?

내가 걸리는 건 괜찮다고 치더라도, 사람들의 건강에 관련된 문제까지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할 수는 없었다. 코로나를 무서워하는 마음에 공감하고, 덩달아 큰일로 여겨야만 덜 서운할 수 있었으며, 이 상황을 그나마 받아들이며 넘어갈 수 있었다. 예식장에서는 위약금 없이 예식 날짜를 미뤄준다는 연락을 전해왔다. 

결국 우리는 결혼식을 5월로 미뤘다. 그러다 3월에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임신 초기 입덧이 너무 심했고, 코로나도 잠잠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 모든 것을 고려해봤을 때 결혼식을 강행하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최종 취소하게 되었다.

이후로는 아이를 키우느라 결혼식은 생각을 못 했다. 가끔 친구나 지인의 결혼식에 가면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모습이 부럽긴 했다. 그러나 막상 결혼식을 할 결심은 못 하던 나날이었다. 

그러다가 무척 단순한 이유로 결혼식을 마음먹게 되었다. 지난 주말에 친한 지인의 집에 가서 밥을 먹는데, "결혼식 할 거면 빨리 하라"는 부추김을 들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도 우리가 늦게나마 결혼식을 하시길 바라셨고, 언니도 몇 번 웨딩 촬영이라도 하라고 조언을 하긴 했다.

그러던 와중에,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조언을 들은 것 같았다. "아예 안 할 거면 할 말이 없는데, 언젠가 할 거면 최대한 빨리 해라"는 이야기. 생각해 보니까 "언젠가 하겠지" 정도로 결혼식을 미루고 있던 것 같았다. 

둘째를 계획할 정도로 어느 정도 육아에도 여유가 생겼고, 남편의 사업이 약간은 안정되면서 곧 새 지역으로 이사도 하는 시점이니, 올해가 결혼식을 하기에 적절할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여기서 더 늦으면 정말 못할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나와 남편은 갑자기 예식장에 상담을 하러 다니고, 나름대로 다이어트를 계획하는 요즘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어쩐지 쑥스럽다. 나름 결혼 육 년 차에, 아이가 다섯 살인 부부의 결혼식. 선뜻 새 신부가 된 것 같은 마음이 먹어지지는 않는다.

보통 결혼식에서는 성혼선언문을 읽는데, 우리의 선언들은 이미 오염된 것 같아서다. 결혼식에 걸맞는 마음을 갈아 끼워야 하나, 정말 그 첫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싶다.

새 신부가 아니라 '헌 신부' 같고, 이제와서 유난떠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그냥 아이 가진 채로 5월에 했었어야 했나, 이제와서 결혼식을 한다고, 몇몇 지인에게 모바일 청첩장이라도 보낼 생각을 하니 벌써 쑥스러워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기도 하다. 

결혼식이 취소될 일은 없다 
 
a

내 웨딩슈즈. ⓒ 서나연

 
그래도 가장 좋은 점은, 사 년 전의 내 마음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다는 점이다. 그 때 우리는 특별한 결혼식을 준비했었다. 네이버 검색으로 십만 원짜리 웨딩드레스를 샀고, 허리와 길이를 리폼해서 나만의 드레스를 만들었다. 또 드레스의 무드와 은근슬쩍 어울리는 분홍색 컨버스를 웨딩슈즈로 골랐다. 결혼식이라는 이름은 특색이 없다며, <가정생성파티>라고 이름 붙이고 파티 포스터, 사회자 대본과 청첩장 멘트, 금뽑기 행사까지 직접 기획했다. 

결혼식이 하루 전에 취소되면서 모든 것이 박살났지만. 그러나 내 마음을 추스리는 게 아니라 주변에 연락을 하는 게 먼저였다. 너무 속상한 티를 내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절제되고 단호한 어조로 취소를 말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성실한 사과를 해야 했다.
 
a

<가정생성파티>라고 이름 붙이고 파티 포스터. ⓒ 서나연

 
결혼식 날 제일 좋아하는 가수를 섭외했는데, 바로 전날 결혼식이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드려야 했고, 양가 어른의 지인들께, 내 친구들에게, 남편의 회사 동료들에게도 모두 연락을 돌려야 했다. 모두 이해해주셨지만, 괜히 죄인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가장 서운한 건 나였다. 지나고 보니 제대로 서운해하지 못한 게 제일 서운했다.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했고,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정신도 없었고, 그 다음에는 아이가 생겨서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나도 드디어 결혼식을 하게 되는 거구나 싶어서 좋다. 사 년 동안 남편과 생활을 함께 하고 아이를 함께 키웠기 때문일까. 결혼식이 너무 특별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살짝 사라졌다. 그냥 적당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진도 많이 찍고, 우리 부부에게 어울리는 성혼선언문을 써서 낭랑한 목소리로 읽을 거다.

'보통의 축하'를 받을 생각을 하니 4년 전과 달리, 그저 안전하게 설렐 뿐이다. 아직 예식장을 확정하지는 못했지만, 결혼식 날에는 왠지 비가 와도 좋고 천둥이 쳐도 괜찮을 것 같다. 아무리 궂은 날씨여도 결혼식이 취소될 일은 없을 테니까. 그 날짜에 잘 안착하고만 싶다. 그러면 나머지는 우리가 잘 해낼테니!
#결혼식 #코로나 #새신부 #헌신부 #결혼6년차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3. 3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4. 4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5. 5 용산에 끌려가고 이승만에게 박해받은 이순신 종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