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 송성 가무쇼에 굳이 조선족 장구춤이 필요한가?

[6박7일 중국 탐방 ③] 항저우의 서호와 송성 가무쇼

등록 2024.01.12 13:39수정 2024.01.1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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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바라본 2024년 새해 첫 일출 상하이 호텔에 학생들과 함께 모여서 맞이한 2024년 새해 첫 일출이다. 중국인은 새해 일출에 별 관심이 없는 모습이었다. ⓒ 김대오

 
2024년 새해 첫 해가 호텔 창문 밖 건물 사이로 떠오른다. 전용버스를 타고 상하이에서 항저우로 이동했다. 두 도시는 약 170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버스로 2시간 정도 걸린다. 중간에 들른 휴게소는 별이 다섯 개나 있어 깨끗하다. 그러나 한 학생의 제보에 따르면 화장실에서 문을 열어놓고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가 있었다고 한다. 물질문명은 변화 속도가 빠르지만 정신문명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일종의 문화지체현상이다.

휴게소에서 잘 손질된 붉은색 자몽처럼 생긴 유자를 사서 먹는데 맛이 일품이다. 항저우에 가까워지자 창밖으로 수로가 자주 등장한다. 항저우에서 베이징까지 물길로 연결된 총길이 1794km의 세계 최대 운하인 경항운하의 지류일 것이다. 특히 쑤저우에서 항저우 구간이 아름다운데 예부터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苏杭)"는 말이 있을 정도다. 마르코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항저우를 지상 낙원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유람선으로 둘러보는 서호 10경

버스는 서호 10경 중 하나인 화항관어(花港觀魚) 근처에서 도착한다. 한겨울인데도 녹색으로 뒤덮인 정원에 여기저기 웨딩포토를 찍는 커플들이 눈에 띈다. 화항관어에서 물고기를 감상하는데 물대포로 소나무를 목욕시키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자연을 자연 그대로 두지 않고 인간의 노력으로 더 정갈하게 다듬은 곳이 서호라는 느낌이 들게 한다. 중국 4대 미인 서시의 아름다움에 비견된다고 해서 서호라고 한다는데 그 비결은 늘 아름다움을 가꾸는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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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제가 남긴 화항관어(花港觀魚) 비석 물고기 어(魚)의 아래 점 네 개 중 하나가 빠져 있다. 물고기가 불(?)이 아닌 물(?)에서 노닐게 한다는 의미이다. ⓒ 김대오

 
강희제가 이곳에 들렀다가 비석을 남겼는데 물고기 어(魚)의 아래 점 네 개 중 하나가 빠져 있다. 물고기가 물(氵)에서 노닐어야 하는데 불(灬) 위에 있는 것이 가여워 성은을 베푼 것이라고 한다. 언어유희가 재미있다.

소동파가 쌓은 제방인 소제(蘇堤)에서 유람선을 타고 서호의 중심으로 나아가니 우측 산 너머에 숨어있던 뇌봉탑이 슬슬 모습을 드러낸다. 1924년 무너진 것을 2002년 새롭게 중건했다. 높이가 71m에 달한다. 뇌봉탑에서 보는 석양이 서호 10경 중 하나다. <백사전(白蛇傳)>에서 허선과 백사인 백소정의 사랑, 법해스님이 백소정을 뇌봉탑 아래 봉인한 것, 뇌봉탑의 붕괴와 재건을 둘러싼 많은 이야기가 후세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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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71m의 뇌봉찹 《백사전(白蛇傳)》에서 법해스님이 백소정을 뇌봉탑 아래 봉인했다고 하며 1924년 무너진 것을 2002년 새로 중건한 것이다. ⓒ 김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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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담인월(三潭引月) 섬 주변으로 세 개의 탑이 있고, 각각 다섯 개의 구멍이 있어서 모두 서른 세 개의 달이 뜨는 곳이라고 한다. ⓒ 김대오

 
좀 더 나아가자 삼담인월(三潭引月)이다. 탑 세 개가 호수 가장 자리에 떠 있다. 탑마다 다섯 개의 구멍이 있는데 달이 뜨면 그 구멍에 달이 비친 달이 호수에도 비춰 서른 개의 달이 되고, 하늘에 하나, 호수에 하나, 술잔에 하나를 더 하면 모두 서른 세 개의 달이 뜨는 곳이라고 풀이한다. 물 아래에서 탑을 떠받들고 있는 건 소나무라고 하는데 오랜 시간 썩지 않고 서 있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삼담인월 곁의 섬은 소영주(小瀛洲)인데 그 섬 안에 또 네 개의 호수가 있다. 그 호수에 섬이 있고 또 그 섬 안에 호수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력이 꼬리를 문다.

호수의 중심으로 더 나아가자 호심정(湖心亭) 너머 장제스 별장과 그 앞에 유명한 식당 루외루(樓外樓)가 아득히 보인다. 누각 너머의 누각, 산 너머의 산, 사람 너머의 사람, 어떤 경지 너머의 더 높은 경지는 늘 있기 마련이다. 서호의 경관은 아름다움 너머의 더 높은 경지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과정이 이룩한 결과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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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교잔설(斷橋殘雪)의 단 눈이 내렸다가 녹을 때 다리 중앙부터 녹아서 멀리서 보면 다리가 끊어진 것처럼 보여 단교라고 부른다. ⓒ 김대오


유람선이 선회하자 멀리로 백거이가 쌓은 제방, 백제(白堤)가 보이고 단교에 몰려있는 사람들이 희미하게 어른거린다. <백사전>에서 허선이 비오는 날 백소정에게 우산을 빌려준 곳이다. 흔히 맑은 날의 호수는 비 내리는 호수만 못하고, 비 내리는 호수는 달빛 내리는 호수만 못하고, 달빛 호수는 눈 내리는 호수만 못하다고 하는데, 눈이 내렸다가 녹을 때 다리 중앙부터 녹아서 멀리서 보면 다리가 끊어진 것처럼 보여 단교잔설(斷橋殘雪)이라는 서호 10경을 이룬 곳이다.

이밖에 서호 10경에는 소제에서 보는 봄날의 아침 풍경, 여름 호수에 만개한 연꽃, 평호에서 바라보는 가을 보름달, 안개구름 사이에 있는 산봉우리, 남병산에 울리는 저녁 종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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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 주변으로 돋아난 건물들 서호의 15km 둘레에 고대와 현대의 다채로운 역사, 문화, 전설, 신화가 주렁주렁 걸려 있다. ⓒ 김대오

 
호수 너머로 멀리 도심의 건물들이 마치 호수에서 자라난 연꽃처럼, 나무처럼 울창하게 돋아있다. 물은 자연을, 인간을, 문명을 일구는 동력일 테니 서호가 키워낸 것이 분명한 건물들이다. 서호의 15km 둘레에 고대와 현대의 다채로운 역사, 문화, 전설, 신화가 주렁주렁 걸려 있으니 이 기름진 호수는 왕성한 생명력으로 항저우라는 도시를 풍요롭게 성장시켰으리라.


연꽃 모양의 우아한 항저우 스포츠 파크 경기장

서호를 벗어나 향한 곳은 2023년 개최된 항저우아시안게임이 열린 경기장이다. 688km를 달려온 첸탕(錢塘)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곳에 위치해 있다. 첸탕강의 옛 이름 저장(浙江)에서 저장성 이름도 유래한다. 첸탕강 강변 양쪽으로 높은 빌딩들이 즐비한데 마치 한강 강변도로를 달리는 듯하다. 항저우만이 만조일 때 바닷물이 높이 2~3m, 시속 25km로 역류하며 첸탕강 강물과 부딪히며 또 하나의 볼거리를 만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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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스포츠 파크 경기장 아침저녁으로 꽃봉오리를 오므렸다 펼쳤다하는 연꽃처럼 개폐가 가능한 구조라고 한다. ⓒ 김대오

 
항저우 스포츠 파크 경기장은 8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데 28장의 큰 꽃잎과 27장의 작은 꽃잎 모양의 외관이 우아하고 아름답다. 아침저녁으로 꽃봉오리를 오므렸다 펼쳤다하는 연꽃처럼 개폐가 가능한 구조라고 한다. 스포츠 경기장, 엑스포 국제회의, 문화 예술 공연 등 대규모 도시 복합단지를 염두에 두고 지어졌다는데 정말 안에서 함성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지만 관람이 허락되지 않아 밖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서야 했다.

송성 공연에 굳이 아리랑, 장구춤이 필요한가?

송(宋, 960~1279)나라는 카이펑을 도읍으로 삼던 북송과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의 침입(1127년)으로 항저우로 도읍을 옮긴 남송으로 나뉜다. 송성 테마파크는 남송 시절의 문화를 기반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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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의 가무쇼 움직이는 무대장치와 VR, AR 영상기술을 접목한 화려한 가무쇼가 펼쳐진다. ⓒ 김대오

 
움직이는 무대장치와 VR, AR 영상기술을 접목한 화려한 가무쇼가 펼쳐진다. 제1막은 황제 생일 축하연인데 서역의 사절단 공연에 이어 아리랑 선율에 한복을 입고 장구춤, 상쇠 상모돌리기, 부채춤이 등장한다. 금나라가 송을 공격할 때 고려는 지원군을 보내지 않아 고려와 남송은 적대적 관계는 아니라 해도 매우 불편한 관계였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 비춰 봐도 송성의 장구춤 공연은 매우 부적절하고 의도적인 문화공정의 냄새를 풍긴다. 제2막의 악비를 모델로 한 전투 장면도 배타적 민족주의 성격이 강하다. 송성 가무쇼는 서호를 배경으로 한 전설과 문화 이야기인 제3막을 중심에 놓고 공연을 새롭게 연출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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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 가무쇼에 등장한 장구춤과 상모돌리기 송성의 장구춤 공연은 매우 부적절하고 악의적인 문화공정의 냄새를 풍긴다. ⓒ 김대오

 
공연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학생들에게 공연 감상평을 물으니 다들 갑자기 폭포가 등장하는 무대장치나 레이저쇼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조명에 감탄하면서도 왜 장구춤이 나왔는지 의아해하며 분노한다. 또 중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수가 한국보다 압도적으로 많을 텐데 이 공연을 본 외국인이 아리랑, 한복, 장구춤, 상모돌리기를 중국 소수민족의 문화라고 여길 것이라며 걱정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도 전통문화를 더 소중하게 여기고 보존, 계승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또한 조선족과의 관계도 보다 우호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얘기도 이어진다.

2011년 랴오닝성을 방문했을 때 조선족예술단이 이미 부채춤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의 우려가 시간이 흘러 더 확고하고 악의적인 형태로 자리 잡은 것 같아 안타깝다. 중국이 G2로 성장한 경제대국이자 찬란한 문화를 보유한 문화강국이라면 조선족을 지렛대 삼아 한국의 문화를 자신들의 문화 범주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얄팍한 문화공정을 멈춰야 할 것이다. 한중양국이 설정한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는 상호 존중의 기반에서만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항저우 #서호 #항저우아시안게임경기장 #송성가무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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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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