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한국이 사라지고 있다?

[상하이 탐방 ②] 상하이박물관, 예원, 마담투소 밀랍인형,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등록 2024.01.10 10:47수정 2024.01.1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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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중국의 과학기술 생태계 탐방' 이란 주제로 고2 학생 8명과 함께 일주일(2023.12.30.-2024.1.5.) 동안 상하이, 항저우, 베이징을 둘러본 기록입니다. - 기자말

2023년의 마지막 날, 상하이박물관을 찾았다. 사각의 건물 위에 귀 모양의 고리를 달고 있는 원형 구조물이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반영한다. 1952년 개관한 이래 현재는 지하 2층, 지상 5층에 11개의 전시관이 있는 종합 박물관으로 중국 10대 박물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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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박물관 네모난 건물 위에 둥근 원형 건축물이 천원지방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 김대오

 
특히 청동기, 도자기, 서화 유물의 가치가 높은데 안타깝게 청동기, 도자기 전시관은 내부 공사 중이다. 4층부터 올라가 소수민족 복식과 유물을 살펴보는데 조선족 의상은 없어 아쉽다. 3층에는 서예전시관이 있는데 들어가는 입구에 전시된 "우주는 손 안에 있고, 모든 변화는 자신의 몸으로부터 생겨난다(宇宙在乎手, 萬化生乎身)"는 글귀가 멋지다. 서예는 손 안에서 이뤄지는 예술이고 모든 변화를 이끄는 것은 저마다의 몸에서 비롯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상하이 마담투소 밀랍인형 전시관, 한국인은?

박물관을 나와서 향한 곳은 마담 투소 밀랍인형 전시관이다. 해부학을 위해 시작된 밀랍인형 제작 기술은 3D 프린팅 기법으로 더 정교하게 발전할 것 같다. 이곳 가이드를 맡은 진수가 한국 연예인들도 있으니 잘 찾아보라고 했는데 막상 둘러보니 한국 연예인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과거엔 이민호, 박해진, 이준기 등이 전시되었다고 하는데 중국에서 한류의 명맥이 끊어진 탓인지 전시된 밀랍인형은 주로 중국의 연예인과 스티브 잡스, 오바마, 마이클 잭슨 등 세계 유명 인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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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마담투소 밀랍인형 전시관 한국 연예인은 다 사라지고 없다. 오바마,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같은 공간에 전시되어 있다. ⓒ 김대오

 
문득 중국에서 한국이 사라지고 있다는 씁쓸함이 느껴진다. 거리에는 현대자동차가 보이지 않고, 삼성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중국인도 거의 없다. 한때 큰 인기를 누렸던 이니스프리 화장품도 중국에서 오프라인 매장을 철수했다. 신라면, 초코파이도 매장 가장자리로 밀려나 겨우 자리를 지키는 정도다.

대한민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인데 바로 곁에 있는 가장 큰 중국시장에서 우리 상품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 심각한 위험 징후다. 비록 반도체, 2차 전지, 철강, 신소재 부품 등 기업 간의 거래인 B2B 사업에서 아직 경쟁력이 있다고 하나 중국 소비자들에게서 한국 제품이 외면 받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렀는데 우연히 지린(吉林)성에서 상하이로 수학여행을 온 중국 고2 학생들을 만났다. 함께 기념 촬영을 했는데 어느새 양국의 고등학생들은 위쳇으로 친구 추가를 하고 온라인 대화를 이어간다. 한중은 공유하는 문화가 많아 서인지 채널만 열리면 쉽게 소통하고 금방 친해진다.

상하이의 마천루가 품은 우아한 고대 정원, 예원


예원(豫園)을 향해 가는 골목은 넘쳐나는 인파로 앞으로 나가는 것조차 힘겹다. 호심정(湖心亭)을 가로지르는 구곡교(九曲橋) 위는 말 그대로 인산인해다. 호심정은 원래 예원의 중심이었는데 지금은 외부 진입로 역할을 하고 있다. 직선으로 움직이는 악귀가 들어오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호수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아홉 번 꺾어지는 설계가 기발하다. 2024년이 용의 해라서 예원 담벽에 있는 용의 기운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몰렸다고 가이드는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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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심정을 가로지르는 구곡교 위는 그야말로 인산인해 원래 예원의 중심이었는데 지금은 원림과 시장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절묘하게 하나로 이어진 모습이다. ⓒ 김대오

 
모든 것이 철저하게 상업화된 시장 속에 우아한 고대 원림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왠지 부자연스러우면서도 멋스럽고 신기하다. 태양의 남중고도를 고려하여 처마를 하늘로 치켜 올린 건물들도 이국적인 풍취를 자아낸다.

남문으로 들어서자 바다 위 이름난 정원이라는 뜻의 해상명원(海上名園), 장쩌민의 글씨가 있고 삼수당(三穗堂)이 이국의 손님을 맞이한다. 예원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건축물이다. 예원은 1559년 반윤단(潘允端)이 자신의 아버지 반은(潘恩)을 기쁘게(豫悅) 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데서 그 이름을 따왔다. 청대 건륭제 연간에 상인들이 이곳을 사서 사무실로 사용했는데 이삭 수(穗)가 들어간 삼수당은 곡물상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물가에 서 있는 정자 어락사(魚樂榭)를 보니 문득 "그대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子非魚, 安知魚之樂)"라는 장자와 혜자의 대화가 떠오른다. 은행나무, 태산목 고목을 지나자 점춘당(點春堂)이 나온다. 굽이굽이 건물과 물과 가산(假山)이 펼쳐진다.

건물은 인간이고, 가산은 자연이며 물은 그 둘의 공간을 메우기도 하고, 더 깊게 하기도 하며 서로 연결하기도 한다. 인간은 탁 트인 열린 공간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을까, 아니면 밀폐된 공간에서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맞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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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으로 디자인한 예원의 담장 하얀 구름 위를 나는 선비의 지조,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하고 싶은 민간의 소망 등이 반영된 건축 설계라고 볼 수 있다. ⓒ 김대오

 
철저하게 아름다움의 원리에 맞게 설계된 원림을 거닐며 이런저런 생각들이 오가는데 시선을 사로잡는 용이 등장한다. 담을 타고 구불구불 이어지는 용의 형상이 가히 압권이다. 황제의 상징인 용을 담장으로 디자인하며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 황제를 상징하는 용은 발톱이 다섯인데 예원의 용은 발톱이 셋이거나 넷이다. 그렇게 이건 용이 아니라 이무기라고 둘러대며 화를 면했으리라. 위에 정책이 있다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는 법(上有政策, 下有對策)이다. 중앙과 지방의 경쟁 논리와 생존 전략이 저 용이듯 용이 아닌 예원의 담장에 녹아 흐르고 있다.

당나라의 문장가 유종원은 아름다움은 광활함이나 심오함, 둘 중 하나에서 비롯한다고 말했다. 예원은 어디에 속하는 아름다움일까. 발아래 바닥의 무늬 하나, 지붕의 조각상 하나 하나가 심오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듯하다. 정원을 전체적으로 관통하며 흐르는 물은 머물러 있는 공간에 유동성이라는 영혼을 불러 넣는다.

예원이라는 공간은 한 그루 나무처럼 옴짝달싹 못하고서 아편전쟁, 태평천국, 8개국 연합군, 상업화, 현대화 등 숱한 역사의 굴곡, 변화의 바람을 고스란히 받아 안으면서도 여전히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건재하다. 그 건재함에 경의를 표하며 내원의 공연 무대인 고희대(古戱臺)까지 둘러보고 예원을 빠져 나온다.

작지만 작지 않은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 (후략)"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제시된 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하이 유적지를 찾았다. 올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역시 비좁고 누추한 공간이다. 하지만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문화강국 대한민국이 그 법통을 계승하고 있으니 비좁지만 협소하지 않고,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공간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는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굴복하지 않고 항거한 자랑스러운 역사의 흔적이자 동시에 한중이 함께 힘을 합쳐 생존을 도모했던 시절을 증명하는 역사의 화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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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항거한 한중 협력의 소중한 역사 화석으로 남을 것이다. ⓒ 김대오

 
조선족 가이드는 이곳 한국어 안내원이 한국에서 유학한 한족이라며, 독립운동에 참여한 조선족이 많은데 왜 굳이 한족이 역사적인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안내를 맡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듣고 보니 일리가 없지 않다. 중국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야 조선족의 위상도 함께 높아지는데 지금은 분명 중국에서 한국도, 조선족도 그 위상이 저점에 다다라 있는 힘겨운 시절이다.

요란한 제야의 폭죽소리와 불꽃놀이

베이징 다산쯔(大山子)에 있는 798예술거리처럼 상하이 전자방(田子方)은 공장지대를 예술적인 상업거리로 조성한 곳이다. 거리의 이름을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최초의 화가 전자방에서 따왔다. 돌로 대문을 장식한 서양풍의 건축 양식이 상하이의 전통 건축과 결합된 독특한 석고문(石庫門) 형태의 가옥을 접할 수 있지만 예술적인 분위기보다는 상업적인 느낌이 강하다. 좁은 골목의 상점들을 오가며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하기 좋은 곳이다. 학생들은 탕후루를 사먹고 다들 즐거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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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방의 석고문 돌로 대문을 장식한 서양풍의 건축 양식이 상하이의 전통 건축과 결합된 석고문(石庫門) ⓒ 김대오

 
숙소로 돌아와 한 방에 모여 과일 파티를 하면서 한국 시간의 2024년 새해와 그보다 1시간이 늦은 중국 시간의 새해를 두 번 맞는다. 숙소가 상하이 외곽에 있어서인지 자정이 가까워오자 곳곳에서 요란한 폭죽소리와 함께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고3이 되는 우리 학생들, 그 어느 해보다 많은 복이 필요한 2024년, 중국에서 맞이하는 특별한 새해, 폭죽소리에 액운은 모두 멀리 사라지고, 불꽃처럼 어여쁜 날들이 활짝 피어나길 기원한다.
#상하이 #예원 #대한민국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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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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