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금 갚으며 '1식'하던 두 달, 이것만이 위로였습니다

진짜 행복이란 무엇인가... 판다 푸바오가 몸소 보여준 기준

등록 2023.12.28 16:57수정 2023.12.28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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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바오, 한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겨울 눈이 내린 20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에서 판다 푸바오가 한국에서 마지막 겨울을 보내고 있다. ⓒ 연합뉴스

 
잘 먹고 잘 자는 게 일상인 동물이 있다. 심지어 잠자기 전까지도 주식인 대나무를 먹는다. 사육사들은 이 동물이 대나무 먹는 양이 조금만 줄어들어도 걱정한다. 멸종위기이긴 하지만, 데굴데굴 굴러다닐 것 같은 몸으로 어떻게 야생에서 살아남았는지 의문이 드는 동물이다. 원초적인 행동만 하며 살아가는데도 사람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는 동물, 에버랜드의 판다 '푸바오'다.


푸바오, 이름 뜻은 '행복을 주는 보물'이란 뜻이다. 사람은 이름을 따라 산다는 데 동물인 푸바오도 그러한 운명을 살아왔다. 사람들은 동영상으로, 에버랜드 방문으로 푸바오를 보며 행복을 느낀다. 특히 푸바오가 강철원 사육사의 팔에 팔짱을 끼고 옆에 앉아 있는 동영상은 최다 조회수를 기록했다.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는 동물이다. 그러나 필자는 푸바오가 처음부터 좋았던 건 아니다. 푸바오가 행복 그 자체가 된 건 힘들었던 시기에 푸바오를 우연히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창업에서 폐업까지, 스트레스가 너무 컸다 

나는 외식업 창업을 하려고 주방보조 일과 홀서빙 일을 1년 간 했다. 주방보조는 외식업자로서의 기본인 위생관리, 원가계산 및 재료주문, 그리고 손님에게 내어드릴 음식을 만든다는 마인드 강화를 위해서였다.

홀서빙은 고객응대를 통한 서비스 마인드 강화를 위해서였다. 무려 주 6일을 꾸준히 일했다. 주방보조 숙련도는 평균 이상이었지만, 홀서빙을 할 때는 당시 과장님이 나에게 행복해보인다고 말했을 정도로 잘 해냈다. 그 칭찬을 듣고 나서야 확신했다, 지금이 바로 창업 적기라고. 

불행하게도 연습과 실전은 달랐다. 행정학과 출신에 공공기관 근무경력만 있었던 나에게 외식업 창업은 안 맞는 옷이었다. 남의 가게에서 일할 때는 직원이라 손해볼 게 없으니 마음이 편해서 자만했던 것이다. 그때의 나에게 돈은 다다익선이었고, 성공은 거거익선이었다.


폐업하고 몇 년을 창업자금 대출 갚는 데만 주력했다. 마침내 대출금이 2천만 원 남짓 남았을 때였다. 몇 번의 연체 기록 때문에 만기 상환이 도래한 대출금을 연장하지 못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이러한 장면이 나온다. 돈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에게 채권자들이 찾아가 난동을 피운다. 어떻게 해서든 끝까지 쫓아가 돈을 받아낸다. 연체 기록 및 채권추심이 바로 신용 정보회사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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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하고 몇 년을 창업자금 대출 갚는 데만 주력했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그렇게 미디어에서 본 모습이 내게 생생하게 각인된 탓에 언젠가 나에게도 그러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여겼다. 심리적 압박감이 상당했고, 불안했다. 밥이 안 넘어가고, 잠이 오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지옥이었다. 창업에 실패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힘듦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디어에서 본 극단적인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연체금을 다 갚을 때까지 하루 한 끼만 먹었다. 밥이 안 넘어갔기 때문이다. 아침저녁으로 일해야 해서 잠도 서너 시간만 잤다. 잘 못 먹고 잘 못 자는 날들이 2달 넘게 이어졌다.

마침내 연체금을 다 갚고 신용 정보가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때 깨달았다.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고 성실하게 이어 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푸바오였다. 잘 먹고, 잘 자며, 편안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푸바오를 보며 진심으로 위로를 받았던 거다. 월 매출 숫자, 내가 가진 물건들의 개수가 행복의 척도가 아니었다.

돈도 물건도 아닌 마음의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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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겨울 즐기는 '푸바오' 눈이 내린 20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에서 판다 푸바오가 눈밭 위에서 즐거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방사장에서 당근과 대나무를 맛있게 먹고, 어떤 때는 사람처럼 대자로 누워 자는 푸바오를 보며 알았다. 행복은 마음 편히 일상을 영위하는 데 있다는 것을. 게다가 사육사와 교감하는 모습은 감동이기까지 했으니, 푸바오를 보며 행복할 수밖에!

이제 푸바오를 중국으로 떠나보내야 할 시기가 오고 있다. '행복'을 '물질'로 형상화한다면 그건 바로 푸바오이지 않을까. 행복이 거창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주었으니 말이다. 쇼펜하우어는 '삶이 고통스러울 때 많이 먹고 많이 자라'고 했다. 그 누구보다 쇼펜하우어의 격언을 몸소 실천하는 푸바오, 그래서 그녀의 '판생(판다의 생)'이 행복해 보이는 이유인가 싶다.

우리는 신년 인사로 '행복한 한 해 되세요', 안부 인사로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격려 인사에도 '행복하길 바라' 등 일상에서 온통 행복을 논한다. 매 순간 이 단어를 언급하는 걸 보아하니 우리가 쉽게 다다를 수 없는 경지이자 반드시 추구해야 할 최상의 가치로 느껴진다. 행복이 도대체 무엇인가. 마흔이 가까운 나이 동안 지내온 일상을 토대로 결론부터 말해보자면, 행복은 고통을 제거한 상태이다.

고통을 다루는 방법은 간단하다. 매일 고통을 하나씩 제거하면 된다. 나 자신에게 힘듦을 주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모두 적어보고, 하루에 하나씩 해결하는 것이다. 핵심은 '하루에 하나씩'이다. 너무 많은 고통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도 없거니와, 하나만 해결해야 그 문제가 나에게 고통이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결국 하나의 고통을 해결하면 느낄 수 있다, 고통을 제거한 데서 오는 진정한 편안함을.
  
푸바오가 적어도 필자에게 행복을 주는 보물이었던 이유, 존재 자체로 고통을 잊게 해준 생명체였기 때문이리라. 너무 쉽게 '행복하라'고 언급하는 사회에서, 행복이 뭔지 보여준 생명체였기 때문이리라.
#행복 #푸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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