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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올 때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안전문자'

제주는 따듯한 남쪽 나라? 이주 14년 동안 겪은 '무시무시한 눈'

등록 2023.12.24 11:29수정 2023.12.2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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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이 쏟아진 12월 22일 오전 제주시 공항로가 눈길에 미끄러진 차량이 엉켜 마비돼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1일과 22일, 올 겨울 가장 추운 날씨와 폭설, 강풍으로 제주가 마비됐다. 도로가 빙판길로 변하면서 미끄러지는 차들이 속출했다. 언덕을 올라가지 못하는 차를 지나가는 시민들이 함께 미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체인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일부 운전자들은 차를 포기하고 걸어서 귀가를 해야 했다. 


한라산 입산은 전면 통제됐고, 산을 횡단해 서귀포시로 가는 5·16도로와 중산간도로는 체인 등 월동장구를 갖춰야 통행이 가능했다. 제주도는 제설장비를 동원했지만 내리는 눈을 감당하지 못했고, 일부 도로에는 자치 경찰들이 나와 차량 운행을 통제해야만 했다. 

제주국제공항은 항공편 전편이 결항됐고, 일부 항공기들은 착륙을 하지 못하고 김포공항으로 회항하기도 했다. 제주공항 활주로가 셧다운 되면서 제주를 출발해 육지로 가려는 승객들은 모두 발이 묶였다. 공항에는 대체 항공편을 구하려는 승객들로 북새통이었고 항공사 데스크마다 줄이 수십 미터까지 늘어지면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눈만 내리면 마비되는 제주,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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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이 내린 12월 22일 오후 제주국제공항 국내선 출발층이 이용객들로 크게 붐비고 있다. ⓒ 연합뉴스

  제주를 따뜻한 남쪽 나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14년 전에 제주로 이주했던 기자는 첫 해 겨울에 폭설이 내려 깜짝 놀라기도 했다. 제주는 겨울에도 눈이 오지 않는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가 따뜻하다고 얕게 옷을 입고 오는 여행객들도 많다. 그러나 제주는 여느 도시 못지않게 추운 곳이다. 

눈만 내리면 제주는 마비된다. 가장 큰 이유는 날씨와 도로 지형 때문이다. 우선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5·16도로는 한라산을 관통한다. 산에 도로를 만들다 보니 경사와 커브가 심하다. 눈이 내리면 사고 위험성이 높아 아예 통제를 한다. 체인이 있다고 운전대를 잡아도 막상 운전을 하면 등에 땀이 흥건할 정도로 아찔하고 위험한 도로이다. 

제주 시내 도로는 의외로 언덕이 많다. 그래서 눈이 내리면 차들이 올라가지 못하거나 미끄러지는 일이 다반사이다. 경사가 심한 도로가 결빙되는 주요 원인은 강풍이다. 기상청이 발표한 온도는 영상 1도이지만 강풍으로 노면이 결빙되는 것이다.


웬만한 눈길은 체인 없이 다닐 수 있다는 대형버스조차 제주에서는 미끄러지기 일쑤이다. 버스가 지체 운행되거나 대체 버스가 늦게 투입되면서 도민들은 추운 날씨에 발만 동동굴러야 했다. 승객이 너무 많아 버스를 타지 못해 회사와 학교에 지각하는 사람들도 속출했다.

공항도 눈보다 강풍이 더 위협적인 존재다. 폭설이 내려도 눈만 멈추면 제설 장비를 동원해 몇 시간이면 활주로 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강풍이 불면 항공기 이·착륙이 금지된다. 여행객들은 눈의 양보다 바람의 세기를 보고 결항이나 공항 정상화를 가늠해야 한다. 바람이 언제 잦아들지는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체 항공편을 마냥 기다리기보다 새로운 항공권도 같이 구입해서 대기를 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바람이 세게 불어봤자 얼마나 강하겠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바람, 여자, 돌이 많아 '삼다도'라고 불리는 제주이다. 강풍이 불면 우산은 쓰지 못하고 아예 접어야 한다. 배드민턴을 치면 자동으로 공이 돌아올 정도이다. 돌담이 무너지고 나무와 전봇대, 신호등이 쓰러지는 일은 제주에서는 흔하다. 바람이 불면 우리 몸의 열을 빨리 빼앗아가는 대류유속 현상으로 더 춥게 느껴진다. 

제주에는 겨울용 타이어와 체인, 일회용 타이어 스프레이 등 월동장구를 갖춘 차량이 많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겨울에는 운전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폭설과 강풍이 부는 날에는 1미터 앞도 보이지 않고 언덕 빙판길에서는 월동장구도 무용지물이다. 겨울철 제주는 강원도 어느 산간 지역 못지않게 위험하다. 

겨울철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안전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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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마방목장에서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 ⓒ 임병도

 
"1100고지, 어승생, 마방목장 도로상 눈꽃 및 눈썰매 체험차량으로 도로정체가 심각하오니 주차자제 및 우회운행 바랍니다.[제주도]"

눈이 내리면 제주 도민들이 받는 안전문자 내용이다. 문자에 나오는 1100고지와 어승생, 마방목장은 도민들이 설경을 즐기고 눈썰매를 타는 곳이다. 눈이 내린 다음날이면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부모와 차량으로 주변 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한다. 도로가 마비될 정도로 눈을 즐기는 도민이 많아 안전문자까지 보낸 것이다. 

제주에 있는 마트들은 겨울이면 눈썰매를 판다. 육지 사람들은 눈썰매장에서 빌려 타지 굳이 구입을 하지 않지만 제주도민들은 매년 겨울마다 사용할 수 있어 눈썰매를 구입한다. 기자의 집에도 가족 수만큼 눈썰매가 있다. 스키장이 없는 제주에서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겨울 스포츠인 까닭이다. 

폭설이 내리면 제주도 전역이 마비되고 일상생활이 불편하다. 심지어 물류가 육지에서 오지 못해 마트 진열대가 텅 빌 때도 있다. 그런데도 도민들은 재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눈이 내리고 난 뒤에 펼쳐지는 멋진 설경과 눈썰매를 타며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표정만 봐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제주 #폭설 #제주국제공항 #눈썰매 #제주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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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언론 '아이엠피터뉴스'를 운영한다. 제주에 거주하며 육지를 오가며 취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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