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옳지만 모두 틀린 것

[주장] 공립학교 업무 성과급 체계를 둘러싼 논의를 보고

등록 2023.12.01 10:28수정 2023.12.0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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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일 년에 한 번 성과급을 받는다. 직전 한 해의 업무 성과를 점수로 환산해 B, A, S의 등급을 결정하고 그에 따라 액수가 차등 지급되는 방식이다. 그런데 한 해 업무 성과를 일괄적인 기준으로 점수화한다는 건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학교에서 교사는 직위가 모두 같지만 담당 업무, 교과목, 학년은 다양하다. 애초에 수업과 상담의 결과를 숫자로 환산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교육부에서 성과급 제도를 없애지 않자 학교에 따라 자체적인 합의를 통해, 지급된 성과급을 다시 균등 분배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실제로 내 첫 발령지에서는 선배 선생님들의 주도 덕분에 균등 분배가 이루어졌지만, 두 번째 학교는 균등 분배에 대한 뒷이야기만 오가는 상황이었다.

2022년에도 연말이 다가오면서 학교에서는 '내년도 성과급 기준표'의 개정을 놓고 수많은 회의가 이루어졌고, 회의보다 많은 뒷이야기가 오갔다. '이대로면 담임은 고생했는데 S를 받을 수 없다', '적어도 부서 부장 교사는 S를 받아야지', '담임이 아이들 챙기는 만큼 비담임은 행정 업무를 하느라 힘들었다' 등 각자의 위치와 상황에 따라 자기 집단의 업무 곤란도가 기준에 반영되도록 애썼고, 그동안 쌓여 있던 업무 고충을 토로했다.

나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기준표 관련 회의가 있다는 안내 메시지 사이로 전체 교사의 의견을 구한다는 공지가 몇 번 있었지만, 흘려보냈다. 수행평가와 시험문제 출제, 수업, 상담, 거기다 각종 업무까지. 맡은 일을 다 해내기도 벅찬데 자꾸만 기준표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것이 싫었다. 돈 돈 돈. 자꾸만 돈으로 싸우게 되는 느낌도 싫었다.
목소리 내지 않을 핑계는 끝없이 많았다. 나는 그렇게 경력도 나이도 막내라는 핑계까지 대며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상황을 바라보기만 했다. 간혹 성과급 균등 분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잠시 말을 보태거나 개인적인 지지의 메시지를 보낼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불합리한 제도에 반항하는 방법으로 무관심을 선택했고, 지속했다.

성과급 기준표에 관한 논쟁은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교사 간 갈등은 점차 심해졌다. 그러던 11월, 새학기가 시작되던 3월에 성과급 균등 분배를 희망한다는 전체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던 선생님께서 결국 전체 교직원 회의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제 말씀을 불편하게 느끼실 분도 계실 것이고, 저도 올해 이곳에 처음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고민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꼭 한 번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직접 나서서 성과급 균등 분배 도입에 관한 전체 구성원의 토의를 제안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역사 선생님께서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저는 어쩌다 인사 위원으로 선출돼 모든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참 여러 번 회의했고, 저희 나름 정말 깊이 고민해서 기준표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분 한 분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이야기는 다 옳았는데, 정작 완성된 기준표는 아무리 봐도 틀려 있었습니다. 분명 머리 맞대고 고민해서 만들었는데, 만들기만 하면 엉터리 같은 기준표가 나오더라고요. 이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결국 완벽한 점수화는 불가능한 게 아닐까요. 아무리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조정해도 매번 누군가는 마음의 상처를 받았습니다. 저희의 일을, 모두 다른 상황인 선생님을, 대체 어떻게 한 개의 표에 집어넣을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사서 선생님께서는 결국 눈물을 흘리셨다. 비교과(사서, 보건, 상담) 선생님은 22년 정량 기준표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회의가 진행될수록 줄어드는 비교과 교사의 점수를 보며 많은 회의를 느꼈다고 했다. 사서 선생님은 독서 수업을 맡으며 토론 대회와 인문학 기행까지 전담하고 있었다. 사서 선생님 덕분에 나는 토론 수업을 굳이 하지 않았고 다른 국어 활동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량 기준표 결정 과정을 지켜만 보면서, 사서 선생님은 이런 식이면 그냥 주어진 일만 하고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싫어 우울하고 힘들었다고 했다.


진심을 나눈 회의 덕분에 나는 나의 무관심이 반항이 아니라 비겁함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회의에서 보여준 선생님들의 표정과 말을 전부 또렷하게 기억해두고 싶었다. 회의가 발판이 되어 학교에서는 성과급 균등 분배 찬반 투표를 실시했다. 아쉽게도 결과는 균등 분배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앞서 마이크를 잡았던 역사 선생님은 교직원 모두에게 이런 글귀를 메시지로 보냈다.

'설령 단 한 사람만을 제외한 모든 인류가 동일한 의견이고, 그 한 사람만이 반대 의견을 갖는다고 해도 인류에게는 그 한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할 권리가 없다. 이는 그 한 사람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 전 인류를 침묵하게 할 권리가 없는 것과 마친가지이다. - 존 스튜어트 밀'

돈과 점수의 세상, 평가와 경쟁의 세상은 분명 문제가 있다. 모두가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일이 생겼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대응을 하고 있었을까. 더 급한 일을 찾고, 어쩔 수 없는 일로 만들지는 않았을까. 우리는 각자 모두 노력한다는 점에서 옳지만, 나와 내 눈앞의 일만 챙기느라 다 함께 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학교 #성과급 #무관심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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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 사랑을, 그런 사랑을 가꾸고 지키는 존재를 찾아다닙니다. 저를 통과한 존재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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