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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시 성공했더니 '진짜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신입생 됐어도 계속되는 전공 고민... 대학은 또 다른 출발점일 뿐

등록 2023.11.28 15:23수정 2023.11.2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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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던 지난 16일 한 고등학교에서 수험생이 시험 시작을 기다리는 모습(자료사진). ⓒ 사진공동취재단

 
온 국민이 함께 긴장을 하게 되는 수능날에 나는 혼자서 여행을 하고 있었다. 일부러 수능일에 맞춰 여행을 떠난 건 아니었지만, 하루종일 가슴 졸이며 긴장했던 작년의 수능날을 떠올리며 더 홀가분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두 아이의 재수, 네 번의 수능 

나는 두 아이가 모두 재수를 하면서 총 네 번의 수능을 치르고서야 비로소 수능에서 해방되었다. 매번 시험을 치르고 대학 원서를 쓰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영원히 입시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던 불안감에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그때는 아이를 대학에 보내는 것이 내 삶의 유일한 목표였고,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막내는 재수를 하고 치른 두 번째 수능에서 다행히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성적을 받았다. 수능을 무사히 치른 것에 일단 안도했지만, 이미 재수를 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실패는 겪을 수 없어서 그 이후의 시간들은 온통 갈 수 있는 대학을 찾는 데에 신경을 쏟느라 여유가 없었다.
   
낮은 대학의 원하는 학과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높은 대학의 다른 학과를 선택할 것인가를 두고 아이와 나는 의견이 갈렸다. 대학 졸업 후 진로를 생각해서 대학도 중요하지만 4년간 공부해야 할 전공 선택이 더 중요하다는 내 얘기를 아이는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이는 입시 전문 사이트에서 운영하는 합격 예측 시스템에 성적을 입력하고, 입시를 준비하는 내내 주문처럼 외우던 대학서열에 따라 일단 자신의 점수로 갈 수 있는 대학을 고르고 그 안에서 합격 가능한 학과를 찾아보았다.

평소에 아이가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전공인 것 같아 우려를 표하면, 아이는 '일단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먼저'라면서 합격 예측 결과가 달라질 때마다 지원학과를 수시로 바꿨다. 마치 대학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학교에만 매달렸다.


사실 아이에게 전공이 더 중요하다고는 했지만, 실은 나 역시 대학의 레벨을 무시할 수 없었다. 입시가 끝난 후 주변 사람들에게 이왕이면 내 아이가 '괜찮은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못 이기는 척 아이가 결정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고, 결국 아이는 전공은 제쳐두고 그 중 순위가 제일 높은 학교를 선택했다.

1차 합격자 발표에서 안전하게 지원했던 대학에는 합격했지만, 아이가 원하는 대학에는 불합격했다. 2차와 3차 추가합격자 발표에서도 불합격되자 아이는 기대를 내려놓는 눈치였다. 그리고는 혼자서 여행을 가겠다고 했다.

실망하는 아이를 혼자 여행에 보내자니 불안하기도 하고, 비록 원하는 대학은 아니어도 합격을 확인하고 나니 내 할 일이 끝난 것 같은 홀가분한 마음이 들어 아이를 설득했다. 아이 혼자가 아니라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갔다.

여행을 하는 내내 아이는 표정이 어두웠고 자꾸만 혼자 있고 싶어 했다. 나는 아이가 행여라도 삼수를 한다거나 하는 생각을 할까봐 불안해졌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더 크게 웃고 떠들며 혼자 있는 시간을 방해하려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아이에게도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아이의 감정까지도 내 마음대로 조정하려고 했던 것 같아 반성하게 된다.

끝인 줄 알았던 고민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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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끝이 아니고 인생의 한 과정일 뿐이다. 한 대학교 캠퍼스 전경. ⓒ 심정화

     
운 좋게 아이는 원하던 대학에 추가로 합격해, 올해 대학교 새내기 생활을 즐겁고 알차게 해나가고 있다. 원하는 대학인 데다가 학교의 홍보대사까지 맡게 되어 학교에 대한 애교심은 더욱 커졌고, 대학 생활에 대한 만족감도 큰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대학교 1학년이 끝나가는 요즘 아이는 다시 고민에 빠져있다. 배우고 있는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다른 학과로 전과를 하고 싶은데, 무슨 전공으로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자신이 무엇을 정말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먼저 자기 진로를 결정한 뒤 그에 맞는 대학과 학과를 선택했어야 하는 게 맞는 수순일 텐데 아이는 거꾸로 가고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공부만 하느라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시간이 없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진짜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아이는 자기 원래 전공 이외에 관심이 있는 다른 학과의 수업을 신청해서 들어가 보기도 하고, 소속된 동아리 모임에서는 대학 졸업 후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 선배들의 생생한 직장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에게 어떤 직업이 맞을지도 고민하고 있다. 가끔 얼굴 마주칠 때 '수능공부 하던 때가 차라리 마음 편했다'고 푸념하는 걸 보면, 아이도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두 아이 입시를 마치고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나 또한 나 자신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 말이다. 사실 인생의 반 이상을 지나온 중년의 나이에도 끝나지 않는 고민들인데, 이제 막 세상 밖으로 나온 아이들에게는 말해 뭐하겠는가.

힘들게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 앞에는 여전히 대학 지원, 그리고 입학이라는 또 다른 커다란 관문이 놓여있다. 올해도 작년처럼 입시설명회에는 수많은 수험생과 학부모들로 북적일 것이고, 입시전문 사이트의 합격 예측 시스템은 대학 합격을 바라는 수험생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고 쉴 새 없이 돌아갈 것이다.

수능을 끝낸 수험생들에게, 그리고 학부모들에게 먼저 수고하셨다고 말하고 싶다. 더불어 대학을 선택하기 전에 가능하면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경험해볼 시간을 충분히 가져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부모들도 자녀의 대학 선택에 혹여라도 자신의 욕심이나 체면을 내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대학 진학은 결코 인생의 끝이 아니라 인생의 한 과정, 또 다른 출발이자 시작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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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결코 끝이 아니라 한 과정의 출발점일 뿐이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와 브런치스토리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
#수능 #합격 #대학 #학과 #수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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