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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범대 학생의 연극 도전기

연극 무대 조명의 매력에 빠졌다가 배우로서 전국대회까지 도전하다

등록 2023.11.08 08:37수정 2023.11.08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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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낭만과 열정만으로 살아가는 '청춘 드라마' 같은 장면을 꿈꿔 본 적 있을 것이다. '재밌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딱 그런 상황. 2년간 내 대학 생활은 그렇게 채워져 왔다.


모든 것의 시작은 연극 동아리

내가 재학 중인 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에는 일본어 연극 동아리 '이치고이치에(一期一会)'가 있다. 이치고이치에란 '일생에 단 한 번 만나는 인연'이라는 뜻으로 올해로 40회째 공연을 올린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 동아리이다.

단순히 학생들끼리 준비하는 평범한 동아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조금 다르다. 이치고이치에는 일어교육과 학생들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닌 졸업생 선배님과 교수님까지 학과의 구서원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큰 행사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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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년간 함께한 조명 콘솔 ⓒ 이승언

 
스무 살이었던 2022년 나는 이 동아리에서 조명팀으로 참여해 연극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발을 내디뎠다. 갓 대학에 입학해 동아리에 대한 로망과 열정이 넘치던 나는 연극에 도움이 되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찾아보며 진심으로 임했었다.

엘립소이달과 같은 조명의 종류와 전광으로 인한 효과 등 평범한 사대생으로는 몰랐을 무대 조명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무대 현장에 적용시켜보기도 했다. 기계의 오류에 대처하며 연극을 무사히 진행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의 반복은 나도 모르는 사이 무대 조명의 매력에 스며들게 만들었다.

길고도 짧았던 반년간의 준비 끝에 연극 무대 당일, 처음으로 관객들로 가득 찬 자리에서 본 연극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배우들의 열연, 적절한 타이밍의 조명과 음향, 무대를 가득 채운 소품, 스크린에 뜨는 한국어 자막까지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그 장소에서 나는 문득 '나도 저 무대 위에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를 더욱 매력적이고 풍부하게 해주는 저 조명 아래에 있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직접 그 매력 속에 뛰어들어 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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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당일 열심히 연기하는 내 모습 ⓒ 홍현진

  
생각보다 더 어려웠던 연극

2023년 9월 초, 스물한 살의 나는 작년과 같은 공연장에서 조명 아래 서 있는 배우가 되었다. 로망과 현실은 다르다고 했던가. 매력에 빠져들어 결심한 배우 역할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되는 여름방학 때 주 3일을 나오던 조명팀과는 다르게 배우 팀은 주 5일 내내 학교에 와서 6시간씩 연습했고, 이는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일본어 연극'이기 때문에 기존 연극에서 하는 모션 연구와 대본 숙지는 물론 추가적으로 문장의 억양까지 하나하나 체크해야 했기에 연습량을 줄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학기 중보다 방학 때 더 일찍 일어나고 학교를 더 자주 나와."

배우 팀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었다. 허나 누군가 나에게 연습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을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발성'이라고 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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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연극 당시 공연장 사진 ⓒ 강광묵

 
흔히 같은 극이더라도 공연장에 따라 분위기가 바뀐다고 할 만큼 공연장 설계는 극의 전달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매년 연극을 올리는 곳은 부채꼴 형태를 띠고 있으나 가로로 긴 공간으로, 반사음이 상대적으로 덜 전달되는 곳이기에 고른 전달을 위해 다른 장소보다 더욱 큰 발성이 필요했다. 발성의 발 자도 모르는 아마추어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성공적인 연극을 위한 두 달간의 발성 특훈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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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날의 노천극장 ⓒ 이승언

 
특훈은 바로 학교 노천극장에서 연습하는 것. 햇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날, 일본어 50음도부터 실제 연극 대사까지 모든 것을 복식호흡을 통해 소리를 듣기 편하게, 또 크게 뱉는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실내에서 진행할 수도 있었지만, 소리가 크고 잘 울리는 장소에서 감을 잡는 것이 가장 쉬웠기 때문에 이렇게 진행했었다.

발성에 대한 감을 잡기까지 발성이 익숙하지 않아 목이 쉴 때까지 연습하고, 피 맛도 느껴가며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대사 같은 경우에는 암기로 해결되는 문제지만 발성은 아니었기에 오히려 어떤 연습보다도 오래 걸렸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이 아니면 절대 못 해볼 경험'이기 때문이다. 좀 힘들다고 포기할 것이었으면 시작도 안 했을 것이다. 배우라는 역할에 직접 도전한 것은 온전히 나의 선택이었고, 한 번뿐일 대학 생활에 연극이라는 칸을 그려 넣은 것 또한 나의 선택이었다.

나는 전공과 전혀 관련 없던 조명부터 배우까지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추억과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 앞으로 내가 모르는 일이 닥쳐 와도 이 경험을 양분 삼아 충분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전공이랑 전혀 관련 없는 거에 그렇게 시간을 들이는 게 정말 아깝지 않아?"

그럼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래서 더 재밌는 거야."

또 한 번의 새로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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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대회 리허설에서 받은 포스터 ⓒ 이승언

 
2012년부터 매년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 (사)한일미래포럼,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전국 대학생 일본어 연극대회가 있다. 근 3년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잠시 중단된 상태였으나 올해 제9회로 다시 막을 올렸고, 나는 전국대회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10월부터 전국 대회를 위해 평일 저녁과 주말 아침 3시간, 주에 총 3회씩 다 같이 모여 더 좋은 연극을 위해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학기 중이기에 다른 일과도 많아 힘들지만 또 한 번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도전해 나갈 것이다. 그때마다 힘들 수는 있지만 오는 기회를 주저하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일이 나와 관계없다고, 두렵다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의 낭만과 열정으로 가득 찬 도전은, 계속해서 삶의 원동력으로 돌아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나는, 내가 채워나갈 앞으로가 기대된다.
#연극 #전국대회 #대학생 #일본어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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