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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양림동 입구의 정율성 동상이 놓여 있던 좌대. 당시 정율성 동상은 훼손된 상태였다(2023년 10월 11일 촬영). ⓒ 박용준
칠곡 다부동의 백선엽 동상 건립,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동상 교외 이전, 광주 양림동의 정율성 동상 훼손 등, 지역 안팎에서 벌어지는 '역사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역사적 인물의 동상이다. 그간의 '역사전쟁'은 동상으로 만들어진 역사적 인물이 과연 기념할만한지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이는 동상 그 자체보다는 해당 인물을 둘러싼 소동이었다.
물론 동상을 해당 인물과 완전히 분리하기는 어럽다. 그렇지만 공공기념물의 한 형태인 동상을 세우는 것에 대해서도 따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역사적 인물을 기념하는 방식에 대해 명확한 서열이나 위계를 정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옮겨가기 전까지는 국가 권력의 심장부로 여겨졌던 세종로에 이순신 동상이, 나중에는 세종 동상이 차례로 세워졌다는 점을 떠올려 보자. 이들은 한국인들이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순위를 다투는 인물이다. 그리고 모두 거대한 동상의 형태로 기념되고 있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그 외 여러 사례를 떠올려 봐도 아마도 기념의 가장 높은 형태를 동상 건립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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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양림동 입구의 정율성 동상(2023년 9월 6일 촬영). ⓒ 박용준
공공기념물로서 어느 역사적 인물의 동상을 건립한다는 것은 해당 인물이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는 일종의 완결형 사고이다. 동상이 견고하게 만들어지듯이 동상을 건립하는 이들은 동상이 가리키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 또한 확고부동하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동상을 건립하는 의미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만들어진 인물 동상은 해당 인물 그 자체로 여겨져 그와 동일시된다. 뿐만 아니라, 동상으로까지 세워졌다는 점에서 인물의 위대함은 더욱 강조된다. 또한 동상은 자신이 딛고 서 있는 공동체를 상징하고, 동상이 세워진 그 일대의 공간을 지배한다. 신성화된 나머지 그와 가치 및 성격을 달리하는 동상이 세워지는 것을 거부하는 배타적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근래에 들어 역사적 인물의 동상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는 것은 동상이 공공기념물로 만들어지는 데서 생겨나는 이러한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동상 건립 사업은 중시되고 있다. 국가나 지역 차원에서 특정 인물들을 높이 평가하고, 그 위상에 어울리는 기념물을 건립하고자 하는 의지는 이해된다. 또한 동상만큼 효과적으로 해당 인물의 의의를 느끼게 하는 기념물이 드문 것도 사실이다.
동시에 동상 건립을 활발하게 추진했던 것이 종래의 중앙집권적인 근대 국가였다는 사실도 함께 생각해볼 만하다. 근대의 동상에는 국가적 위인에 대한 추모만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동상의 거대함과 위압감은 그것을 세운 국가를 상징한다. 국가는 동상을 건립함으로써 동상이 상징하는 국가의 권위를 국민들이 받아들이도록 해 왔다. 국가가 동상을 건립하는 방식은, 국가가 역사를 해석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과도한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조차도 자신들이 기리고자 하는 인물을 동상을 건립하는 등 비슷한 방식으로 기념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절대적 존재로 군림했던 근대 국가가 역사적 인물을 기념하는 방식을, 굳이 현대 사회가 답습할 필요가 있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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