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여의도 간 윤 대통령, 먼저 이재명에게 숙였다?

<중앙일보> 1면 사진과 실제 상황 비교해보니...이 대표 아닌 의원들 향한 인사

등록 2023.11.01 14:17수정 2023.11.01 14:50
47
원고료로 응원
a

<중앙일보> 11월 1일 1면에 실린 '여의도 간 대통령, 먼저 숙였다' 기사. 제목 아래 윤 대통령이 허리 숙여 인사하는 사진이 배치됐다. ⓒ 중앙일보 PDF


'여의도 간 대통령, 먼저 숙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다음날인 11월 1일, <중앙일보> 1면 기사 제목이다. 제목 아래에는 윤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이 배치됐다. 제목과 사진을 보면 누구라도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머리를 숙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국회방송 생중계 영상을 확인한 결과, 해당 사진이 촬영될 당시 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가 아닌 국회 본회의장에 있는 국회의원들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었다. 실제 <중앙일보>의 사진 설명은 "윤석열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마치고 본회의장을 나서며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라고 적혀 있다. 다른 언론의 사진 설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중앙일보>가 '먼저 숙였다'라는 큰 제목과 사진을 위아래로 배치하면서 자칫 사실관계가 왜곡돼 소비될 여지가 높아 보인다. 

국회방송을 통해 확인한 당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아래 GIF 이미지 참조). 사진이 찍힐 무렵 윤 대통령은 본회의장 퇴장을 위해 출구 쪽을 향해 걸어가면서 박병석 의원을 비롯해 의원들과 연이어 인사했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이 걸어오자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고, 이를 본 윤 대통령은 악수를 했다. 이때는 윤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를 향해 한 인사는 묵례 정도에 불과했다.

이 대표와의 인사를 끝으로 문 쪽으로 향하던 윤 대통령에게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은 손짓을 곁들이면서 전체 인사를 권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손을 들어 인사를 한 뒤 좌중을 향해 허리 숙였다. 이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마치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머리를 숙인 것처럼 보인 것. <중앙일보> 지면상 제목이 "여의도 간 대통령, 먼저 숙였다"인 탓에 '야당에 고개 숙인 대통령' 이미지가 더 강해진 측면도 있어 보인다.
 
a

2023년 10월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마친 뒤 퇴장하면서 현장의 의원들과 인사하는 모습. 국회방송 생중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 퇴장 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일어났고, 둘은 악수를 나눴다. 이후 윤 대통령은 본회의장 내에 있던 다른 의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이 GIF(그래픽 인터체인지 포멧) 이미지는 국회영상 생중계 영상을 갈무리한 데에다가 오마이뉴스가 이해를 돕기 위해 자막을 입힌 것이다. ⓒ 국회방송 생중계 갈무리-오마이뉴스 자막

  
a

<중앙일보> 온라인판 '여의도 간 윤 대통령, 먼저 숙였다…文정부 비판도 통째 삭제 [view]' 기사. 종이신문과는 다른 사진을 배치했다. ⓒ 중앙일보 누리집 갈무리


한편, <중앙일보> 온라인판은 같은 기사지만 지면과는 다른 사진을 배치했다. 이 사진을 보면 이재명 대표와 인사하는 윤 대통령은 머리를 숙이지 않고 있다.

<중앙일보> 지면 구성, 사실에 부합할까 

당장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성제 전 MBC 사장은 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대통령의 달라진 모습으로 평가하는 일부 언론이 있다"면서 "저는 오히려 인사를 받는 이재명 대표가 뻣뻣해 보여서 좀 안 좋아 보였다"고 밝혔다. 이어 "저녁 때 MBC 뉴스데스크를 보니 이재명 대표에게 인사한 게 아니라 이 대표랑 악수한 뒤, 본회의장을 나서면서 의원석을 향해 인사한 것이었다"면서 "정치부 기자들이라면 당시 현장을 다 봤을텐데 굳이 의례적인 인사를, '야당 대표에게 겸손하게 고개숙인 대통령'으로 포장해줄 필요가 있을까요?"라고 언론의 보도 행태를 지적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머리를 숙인 듯한 이 사진은 지지자간 갈등을 불러 일으켰다. 윤 대통령 지지자로 보이는 누리꾼은 "겸손하고 덕망이 있는 모습"이라고 치켜세웠고, 이재명 지지자로 추정되는 누리꾼은 "고개 안 숙이면 어쩔건데"라며 당연하다는 식의 댓글을 달았다.

또 다른 누리꾼은 "아무리 언론이 검찰공화국 시대가 됐더라도 고개 숙이는 사진을 내걸고 뭘 기대하라고 하는 것인지 참 황당하다"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시정연설에서 전임 문재인 정부 탓을 하지 않는 등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큰 변화를 보였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당장 이재명 대표가 요청한 여야 영수회담에 응한 것도 아니고 국회 시정연설에 앞서 이 대표를 비롯한 여야 지도부와 국회의장단 등과 15분 정도 짧은 사전환담을 나눴을 뿐이다. 물론 국회 상임위원장 간담회에선 "어느 상임위원장이 '술 한잔하면서 대화하니 여야가 없다'고 말하더라. 저녁을 모시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다. 

혹시 해당 언론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윤 대통령이 달라졌다는 '프레임'을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덧붙이는 글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윤석열 #이재명 #국회 #중앙일보 #언론
댓글4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립 언론 '아이엠피터뉴스'를 운영한다. 제주에 거주하며 육지를 오가며 취재를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3. 3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4. 4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5. 5 용산에 끌려가고 이승만에게 박해받은 이순신 종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