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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들이 직접 만든 젠더평등연설문, 한번 들어 보실래요?

동백작은학교에서 매년 진행하는 젠더평등선언식... 학생들이 직접 연설문을 만들었습니다

등록 2023.10.21 11:05수정 2023.10.2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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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작은학교는 성평등을 인권교육의 중요한 가치로 공부하고 배운다. 1학기에는 평화선언식을, 2학기에는 젠더평등선언식을 진행하며 평화와 평등의 가치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배우고 공동체가 함께 실천해가는 시간을 가진다. 

지난 한 주간 진행했던 젠더평등선언식의 시간이 더욱 특별했던 것은 오롯이 학생들의 자발성으로 진행되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계획한 대로 함께 참여하며 힘을 보태어 주기만 하였다. 

지난 3년간 인권 교육의 하나로서 학교 페미니즘 교육을 실천하고, 안전하고 평등한 성 문화를 만들어 간 결실이기도 했다. 

학생들은 한 주간 실천할 주제들을 구성해 시간표를 만들고, 학교 자치부서 중 하나인 평화부서에서 젠더평등 주간을 진행했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학생들이 주최하는 유일무이의 '젠더평등선언식'이 아닐까.

학생들은 일주일 동안 주디스 버틀러의 강의를 들으며 토론을 하기도 하고, 성평등 책들을 보고 공부한 것들로 선언문을 만들기도 했다. 
   
평화의 38배(여성의 날이 3월 8일이라서 38배로 정했다고 함) 문구를 만들어 서로의 성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문구 하나하나를 새기며 서로에게 절을 하는 시간은 따뜻하고 뭉클한 시간이었다. 


"문화와 사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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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평등을 기원하는 38배를 하고 있는 학생들 ⓒ 이임주

 
둥근원을 만들어 명상볼을 치며 젠더 평등 주간동안 느꼈던 것, 그동안 차별로 인해 상처받았던 이야기, 실천하고 싶은 성평등 주제 등 반성과 성찰이 담긴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시간은 모두에게 치유이자 감동의 시간이었다. 

마지막 날엔 큰 결과물을 함께 만들기도 하는데 올해 학생들이 정한 것은 세상에 젠더평등을 알리는 영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그동안 공부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세상에 던지고 싶은 말들을 연설문으로 만들어 멋진 영상물을 제작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학생들이 직접 자발적으로 만들어 낸 연설문이라고 하기에 너무 훌륭하고 깊은 내용이어서 교사들은 놀라기도 한 한편, 벅차고 뿌듯하기도 했다. 

자신들이 살아갈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십대들이 참 당당하고 멋있었다. 
   
이런 시간들이 가능했던 이유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안전하고 평등한 공간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학생들의 소감 중 일부이다. 

"젠더평등주간의 마지막 날, 젠더평등선언식날이다. 어제 영상을 찍은 것을 오늘 지원이가 편집을 하고 있고, 그동안 써둔 선언문으로 38배도 진행했다. 38배의 의미는 여성의 날의 날짜이고, 선언문 내용은 페미니즘과 여러 젠더까지 엄청 다양하고 좋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서 진심으로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다. 조금 바쁘긴 했지만 이런 뜻깊은 행사를 내가 만들어갔다는 자부심이 커졌다. 나에게 큰 밑거름이 될 것 같다. 차별과 혐오의 언어들은 우리의 문화 속에 여실히 존재하고 있다. 그런 문화를 바꾸고, 문화가 바꾸면 사람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모두가 상처 받지 않는 세상이 어서 왔으면 좋겠는 마음이다." (16세 최솔)

"주디스 버틀러의 페미니즘 강의를 들었다. 이번 강의는 세계의 젠더의 의미와 그게 번역되면서 생긴 오역들, 그리고 이 젠더의 각 나라들이 받아들이는 의미에 대해서 배웠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지는 것이 말이 크게 와 닿았다." (17세 준형)

"우리가 쓴 글들로 선언문을 만들어 38배를 했다. 여러 평등하고 아름다운 선언문들을 들으며 많은 생각이 들고 재밌는 글도 있어서 즐겁기도 한 시간이었다. 명상볼을 치며 진행하는 동백띵에서는 여러 젠더 평등에 대한 반성의 말과 감사함을 표시하는 시간이었다. 나도 여러 의미로 반성하고 여러 의미로 감사하는 시간이었다. 일주일 동안 젠더 평화 선언식을 하며 힘들기도 했지만 많은 생각을 하고 반성하기도 하며 나에게 이런 교육과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준 안전한 이 학교가 감사하게 느껴졌다." (13세 서현)

"젠더평등선언식에 했던 것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우리가 직접 연설문을 만들어서 읽었던 것이다. 우리들의 의견으로 만들어진 연설문을 우리가 또 직접 읽다니 스스로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느껴졌다." (15세 우겸)

"동백영화관 영화는 런던 프라이드를 봤는데 너무 재밌는 영화였다. 1980~90년대 게이와 레즈비언, 광부들의 이야기를 담은 건데 굉장히 독특하면서도 유쾌했다. 게이, 레즈비언, 광부라... 굉장히 새로운 조합이고 뭔가 상상이 잘 안 가는데 다 보면 나면 뭐랄까... 연대의 힘이랄까... 무언가 벅차오르는 느낌! 한번 더 봐도 좋을 것 같은 영화였다." (15세 현서)


교사들도 학생들에게  삶의 성찰을 나누기도 했다. 

"저는 3대 독자로 태어나서 주방에 할머니께서 잘 못들어가게 했어요. 어느날은 엄마를 너무 도와주고 싶어 몰래 몰래 설거지를 하고 집안일을 도왔는데 할머니에게 어머니까 너무 혼나는 거예요. 남자는 가만 있어야 되고 여자는 다해주는 것을 보고 살았고, 동백학교에 들어와 페미니즘을 배우고 함께 공부하며 너무 많은 것들을 반성하고 배우는 시간이었어요. 학교에서 늘 이런 실천들과 공부를 해 나가니까 계속 저의 모습을 보고 반성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인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아직도 스스로 가야할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더 많이 공부하고 배우며 성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교사 신현종)

"과거의 저를 떠올리는 굉장히 부끄러운 일들이 많아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때 저를 돌아보면 외모평가도 하고 지금의 이런 젠더감수성이 없었어요. 내가 교육을 잘 못받았으니까 이런 교육을 가치적으로 가르치지 않았으니까 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내가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이런 세상에 여러분들이 살고 있지 않을까…

그 때 내가 행동할 수 있었음에도 행동하지 않았던 나로 인해 여전히 여러분들이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하고 사과 드리고 싶어요. 지금 사회학이나 인문학을 가르치면서 젠더평등과 관련해서 안 다룰 수가 없고 가끔 나는 잘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자만심이 들다가도 너무 부족한 나를 발견하고는 다시 성찰하고 반성하기도 해요. 내가 다 알고 있다는 생각보다 더 많이 돌아보고 반성하고 놓치지 않고 행동해야 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교사 임지택)


성평등 교육은 '인권' 교육이자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중요 과정

성평등 교육의 일상화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게 하고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모든 인간의 평등권 및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유엔의 기본 이념이자 목적이다. 대부분의 일상을 보내는 학교라는 공간은 학생들에게 좀 더 안전하고 존중받는 평등한 곳 이어야 한다. 단순히 생물학적인 성교육으로는 그 무엇도 변화시킬 수 없다. 무분별한 혐오 매체들에 노출되고, 성 관련 고민이 생겼을 때 어디에서도 도움받을 곳 없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제대로된 젠더감수성을 키우려면 학교의 포괄적 성교육 필수 도입이 절실하다. 

제대로된 성교육은 서로가 동등하고 존엄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하며, 성숙한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중요한 교육과정이다. 

유네스코 국제 성교육 가이드는 포괄적 성교육의 핵심 개념으로 관계, 가치·권리·문화·섹슈얼리티, 젠더 이해, 폭력과 안전, 건강과 복지를 위한 기술, 인간의 신체와 발달, 섹슈얼리티와 성적 행동, 성과 재생산 건강이라는 여덟 가지를 제시한다. 

이러한 포괄적 성교육은 학교의 공간과 문화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동백작은학교는 자연스런 배움의 실천으로 성중립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으며, 모든 공간에 다양한 성이 존중받을 수 있는 문구와 포스터들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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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작은학교의 성중립 화장실 표지판 ⓒ 이임주

 
이 세상의 모든 학교가 학생들에게 안전하고 평등한 공간이길, 모든 존재가 차별받지 않고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더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소외되지 않고 이 세상에 울려 퍼지길 바라본다. 

당당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내놓은 멋진 십대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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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작은학교 친구들이 직접 만든 젠더평등연설문 ⓒ 이임주


 
덧붙이는 글 동백작은학교는 제주에 위치하고 있으며 생태, 인권, 평화의 가치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청소년 민주시민 교육 공동체이다. 14세~19세의 청소년들이 함께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배우고 실천하며 따뜻한 공동체를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모두가 평등한 통합교육을 지향하고 있으며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배움이 즐거운 '학교를 넘어선 학교'를 꿈꾸는 학교이다. 올해 처음 문을 열었으며, 내년도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다.
#동백작은학교 #젠더평등선언식 #성평등교육 #페미니즘 #젠더평등연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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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동백작은학교에서 생태, 인권, 평화의 가치를 실현하며 아이들과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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