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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축구계 전설 이근호... '태양의 아들'이 남긴 발자취

"모든 것을 쏟았기에 미련 없이" 현역 은퇴 결정

23.10.16 15:59최종업데이트23.10.16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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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11월 10일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대한민국과 콜롬비아의 경기. 이근호의 슛이 골대를 빗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또 한 명의 축구계 전설이 정든 그라운드와 작별을 고한다. 대구 FC의 베테랑 공격수 이근호(38)가 스플릿 라운드를 앞두고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이근호는 10월 16일 자신의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올 시즌을 끝으로 제 인생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그라운드를 떠난다. 2004년 프로선수생활을 시작해 올해까지 20년이라는 시간을 달려 왔다. 이 결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후회 없이 모든 것을 쏟았기에 미련 없이 떠나려 한다"고 밝혔다.
 
이어 "많이 부족했지만 아낌없이 사랑을 주시고 응원해주신 많은 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잊지 않으며 살아 가겠다"고 덧붙였다.
 
이근호는 지난 2004년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대구, 주빌로 이와타, 감바 오사카, 울산 현대, 엘 자이시, 전북 현대, 제주, 강원 등 여러 팀을 거쳤다. 이근호는 K리그1(2015년 전북 현대)과 K리그2(2013년 상주 상무)를 모두 석권했으며,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두 번(2012, 2020년 울산)이나 정상에 올랐다. 각기 다른 팀에서 다양한 대회의 정상에 올랐다는 것도 돋보이는 대목이다. 2012년에는 AFC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기도 했다.
 
국가대표로도 84경기에 출전하여 19골을 기록했으며, 상무 시절에 출전한 2014년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러시아전에서 본선 득점까지 올렸다. 2019년부터는 한국프로축구 선수협회장을 역임했다.
 
이근호가 20년간 보여준 '진가'

이근호의 축구인생은 '위대한 2인자', '레전드가 된 저니맨'이라는 표현으로 요약할수 있다. 이근호는 화려한 축구인생을 보냈지만, 일반적으로 레전드로 자리매김한 슈퍼스타들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걸었다.
 
보통 슈퍼스타들의 커리어에서 자신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구단이 있다면, 이근호는 확실한 실력에 비하여 유독 팀을 자주 옮겨다닌 선수였다. 이근호는 군복무를 이행한 상무 시절을 포함하여 국내와 해외를 아울러 통산 10개의 구단을 거쳤다. 울산과 대구처럼 같은 팀에 두 번이나 입단한 경우도 있었다.
 
이 중 이근호가 풀타임으로 3시즌 이상을 한 팀에서 연속으로 보낸 경우는 전무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팀을 자주 옮겨다니면서도 이근호는 1~2시즌을 제외하면 가는 팀마다 기복없이 꾸준하게 제 몫을 해줬다는 것이다.
 
또한 이근호는 에이스라기보다는 2인자나 명품조연의 이미지가 더 강한 선수이기도 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박주영과 손흥민, 클럽에서는 김신욱과 이동국, 하피냐 같은 쟁쟁한 선수들과 함께 뛰면서 에이스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맡았다. 여기서 이근호의 진가는 함께 뛰는 동료들의 능력을 극대화해주면서 에이스가 부진할 때는 언제나 그 자리를 대체하는 1순위가 되어줄 수 있는 선수였다는 것이다.
 
이는 이근호의 축구 성향 및 이타적인 플레이스타일과 관련이 있다. 이근호의 주포지션은 윙어로 분류되지만 사실상 2선 전 포지션과 최전방, 세컨드 스트라이커까지도 가능한 멀티플레이어다. 온더볼과 골결정력은 조금 아쉽지만, 최고 수준의 스피드와 왕성한 활동량, 뛰어난 축구지능을 활용한 연계 플레이와 오프더볼을 통하여 공격 진영 전반을 휘저으면서 동료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는 능력은 박지성 이후 최고였다는 평가를 받는 '육각형 공격수'였다. 여기에 2018년 이전까지는 내구성에서도 큰 부상을 당하거나 수술대에 오른 경력이 거의 없는 금강불괴였다.
 
이근호가 여러 팀을 거치며 다양한 선수 조합에서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 전성기에 여러 대표팀 감독들의 '단골픽'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처럼 독보적인 전술적 활용도에 있었다.
 
울산 1기 시절에는 장신에 비하여 포스트플레이와 공간창출능력이 부족한 김신욱의 약점을 보완하며 '철퇴축구'의 중심에 섰다. 대표팀에서는 탁월한 연계능력으로 에이스인 박주영-손흥민에게 집중된 수비부담을 분산시켜주는 미끼 역할로, 국제대회에서도 '투톱 전술'이 가능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핵심 전술 자원이었다. 중요한 경기에서 에이스가 침묵하거나 결장할 때 대체 주전 혹은 1순위 조커로 나서 결정적인 골을 터뜨려주는 장면도 많았다.
 
하지만 화려한 선수경력에서 옥에티는, 월드컵 불운과 해외 경력이었다. 이근호는 200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대표팀 붙박이로 이름을 올렸고, 세 번의 아시아 예선에서 항상 월드컵 진출의 주역으로 맹활약했지만, 정작 본선과는 인연이 적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는 극심한 슬럼프로 최종엔트리 목전에서 탈락했고, 2018년 러시아월드컵 직전에는 부상으로 낙마했다. 만일 출전했더라면 주전으로 중용될 것이 확실시되었기에 더 아쉬운 장면이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유일하게 출전의 꿈을 이뤘지만 3경기 모두 주전이 아닌 교체 멤버로 활약했다. 극심한 부진을 겪었던 주전 공격수 박주영을 대신하여 짧은 시간만 뛰면서 1골 1도움의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나 홍명보호의 조별리그 탈락으로 빛이 바랬다.
 
이근호는 전성기에 유럽 진출을 갈망했고 2009년에는 현재 이강인이 뛰고 있는 파리 생제르맹 입단이 유력하게 거론되었으나, 구단 측의 변심과 에이전트의 무능으로 이적이 끝내 불발되었고 이후 유럽과는 인연이 없었다. 이근호의 해외 경력은 아시아인 일본 J리그와 카타르 엘 자이시에서 보낸 경력이 전부다. J리그 시절은 우수한 활약을 보였지만 중동에서는 부진했다.
 
어느덧 30대 후반에 접어든 나이에도 이근호는 K리그에서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많은 후배선수들에게 모범적인 자기관리의 귀감이 됐다. 2021년부터는 '태양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전성기의 시작을 알린 '제 2의 고향' 대구로 돌아왔다. 이근호는 그라운드 안팎에서 노련한 리더십과 기량을 발휘하며 팀의 역대 최고 성적(K리그1 3위, ACL 16강 진출)에 기여했고, 마지막 시즌인 2023시즌에도 부주장을 맡아 파이널A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K리그에서 이근호의 통산 성적은 385경기 출전 80골 53도움이다. 또한 오랜 세월에 걸쳐 실력은 물론이고 깨끗한 경기매너와 사생활, 모범적인 언행으로 큰 구설수없이 축구계와 팬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는 점에서, 이근호는 위대한 레전드로 K리그 축구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근호는 구단을 통하여 "프로 무대에서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대구에서 은퇴하게 되어 감회가 남다르다. 아직 다섯 경기가 남은 만큼 최선을 다해 뛰고 웃으며 마무리하겠다"라고 은퇴를 앞둔 마음을 전했다. 대구는 올시즌 마지막 홈경기에서 이근호를 위한 성대한 은퇴식 행사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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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은퇴 대구FC 레전드 저니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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