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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 딴 류중일호,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주장] 항저우 아시안게임서 명분-실리 모두 지킨 류중일호, 선순환 구조 이어가야

23.10.08 11:21최종업데이트23.10.0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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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길을 돌아오기는 했지만 결국 목표를 달성했다.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은 10월 7일 중국 샤오싱 야구·소프트볼 스포츠센터 1구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결승전에서 대만에 2-0으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로써 한국야구는 1998 방콕, 2002 부산, 2010 광저우, 2014 인천,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 이어 통산 6번째 아시안게임 우승을 달성했다. 2010 광저우 대회부터 이어온 최초의 4연속 제패라는 위업도 이뤄냈다.
 
또한 결승 상대인 대만에게는 예선전 0-4 패배를 비롯하여 최근 국제전 3연패의 사슬을 되갚아준 완벽한 복수극이었기에 의미 있는 우승이었다. 2014 인천 대회에서도 태극전사들을 지휘했던 류중일 감독은 9년 후 다시 한번 정상에 올라서며 한국야구에서 유일하게 아시안게임에서 두번 우승한 사령탑이 됐다.
 

7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인근 사오싱 야구·소프트볼 스포츠센터 제1구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 대만과 대한민국의 경기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대한민국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기뻐하고 있다. 2023.10.7 ⓒ 연합뉴스

 
우여곡절 많았던 아시안게임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 우승은 어느 때보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동안 한국야구는 아시안게임에서 프로 선수들의 출전이 허용된 1998년 방콕 대회 이후 항상 국내파와 해외파를 망라한 최정예 전력을 꾸려왔다. 금메달에 병역혜택이 주어지는 대회 특성상 스타 선수들과 프로구단들의 협조를 이끌어내기도 쉬웠다.
 
실제로 한국은 2006년 도하 대회(동메달) 단 한번을 제외하면 금메달을 놓친 적이 없었다. 박찬호, 추신수 등 역대 아시안게임을 통하여 수많은 프로선수들이 병역혜택을 얻었고 이후의 선수 경력을 순탄하는 이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한국야구를 바라보는 '거품론'과, 왜곡된 병역혜택 제도의 문제점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여론은 점점 냉랭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냉정하게 아시안게임은 국제야구계에서 있어서 그리 비중이 큰 대회가 아니며 국가별 수준 차가 매우 크다. 그나마 경쟁자인 일본이나 대만 정도인데 일본은 아시안게임에는 전통적으로 큰 비중을 두지 않고 프로가 아닌 실업팀이나 사회인 야구 선수들이 주축이었다.
 
아시안게임에 프로 최정예 1진을 내보내는 국가는 사실상 한국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대회의 초점과 동기부여가 갈수록 병역혜택에 맞춰지면서 아시안게임과 태극마크가 '프로선수들의 병역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이 거세졌다.
 
2014년 인천 대회와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대회에서 한국은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는 했지만, 응원이나 찬사보다는 선수선발을 향한 논란이 더 거셌다. 급기야 2018년에는 자국 팬들 사이에서 야구대표팀 사이에서 '병역혜택 원정대' '은메달을 기원한다'는 조롱이 등장하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당시 선동열 국가대표팀 후 감독이 국정감사까지 불려가서 선수선발 문제를 해명해야 했고, 야구를 모르는 정치인들에게 일방적인 모욕을 당하는 해프닝도 겪었다.
  
결국 한국야구는 각종 논란을 피하기 위하여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부터는 대표팀 구성에 큰 변화를 줬다. 자체적인 선수 선발 제한 규정을 신설하여 와일드 카드 3장을 제외하고 만 24세 이하 혹은 프로 4년차 미만 선수로만 최종 엔트리를 꾸렸고, 프로 한 팀당 최대 3명까지만 선발하기로 결정했다. 아시안게임을 젊은 선수들의 경험을 쌓고 세대교체를 위한 무대로 삼는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로 인하여 대표팀은 필요한 선수들을 선발하는데 이전 대회보다 제약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정후(키움), 구창모(NC) 등 전력의 핵심으로 기대했던 선수들이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줄줄이 부상으로 낙마하는 악재가 발생했다. 투수 이의리(KIA)는 최종엔트리 확정 직전 물집 부상을 이유로 외야수 윤동희(롯데)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최근 야구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는 것도 류중일호에게는 부담이었다. 대표팀은 최근 2020 도쿄올림픽 노메달-올해 초 열린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한일전 참패 및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수모를 당했다. 반면 과거에 비하여 최상의 전력을 뽑을 수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시안게임은 당연히 우승해야 한다'라는 기대치가 바뀐 것은 아니었기에 류중일 감독이 느끼는 압박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본 대회에서도 수차례의 위기가 있었다. 조별리그에서 대만에 0-4 완패는 류중일호에게 가장 큰 고비였다. 4번타자로 기대를 모았던 강백호(KT)의 극심한 초반 부진으로 중심타선의 파괴력이 떨어졌고, 대표팀 에이스로 기대를 받았던 곽빈(두산)은 담 증상으로 대회 내내 단 한번도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대표팀 전력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일각에서는 최정예 전력을 꾸렸어야 한다며 자체 나이 제한 규정을 둔게 자충수가 아니냐는 평가까지 나왔다.
 
하지만 류중일호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지난 5일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슈퍼라운드 1차전에서 일본을 2-0으로 꺾었다. 선발 투수 박세웅(롯데)이 6이닝 2피안타 2볼넷 9탈삼진 무실점 역투를 펼쳤고, 4번 타자 노시환(한화)은 6회말 외야 희생 플라이로 결승점을 뽑고, 8회말 쐐기 적시타를 날렸다.
 
결승에서 다시 만난 대만과의 리턴매치에서는 문동주(한화)가 선발로 나와 6이닝 동안 삼진 7개를 잡으면서 무실점으로 완벽한 투구를 선보였다. 뒤이어 최지민(KIA)-박영현(KT)-고우석(LG)의 불펜진도 대만의 타선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눈부신 호투를 이어갔다.
 
전반적으로 타선은 약팀과의 경기를 제외하면 적시타 부재로 애를 먹기는 했지만, 팀 배팅을 통하여 필요한 득점을 올려줬고, 리드를 잡으면 마운드가 '지키는 야구'로 실점을 최소화하는 필승공식이 이어졌다. 백미인 9회 말 1사 1,2루 마지막 위기에서 우녠팅의 땅볼을 병살타로 처리하며 한국이 우승을 확정한 장면은 마치 2008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쿠바전)의 피날레를 떠올리게 했다.  

명분과 실리 모두 지켰다
 
'세대교체와 병역혜택'이라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지켜낸 것이 이번 대회의 가장 큰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놓쳤다면 상당한 후폭풍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류중일호는 항저우 대회를 통하여 젊은 선수들이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고, 더불어 귀중한 국제 경험까지 쌓았다. 
 
이번 대회 엔트리에 포함된 24명 중 병역혜택을 받게된 선수만 무려 19명에 이른다.1998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22명의 선수가 병역혜택을 받은 이래로 가장 많은 수치다. 문보경, 정우영, 강백호, 박영현, 김영규, 김주원, 곽빈, 최지훈, 최지민, 나균안, 박세웅, 윤동희, 김지찬, 원태인, 노시환, 문동주, 김동헌, 김혜성, 장현석 등 한국야구의 미래를 이끌 선수들이 대거 병역혜택을 받으면서 공백기 없이 안정적인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아시안게임마다 따라붙던 각종 '공정성-자격 논란' 없이 이룬 우승이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물론 이의리의 엔트리 탈락이나, 한 경기도 출전 못한 곽빈의 병역혜택 무임승차 같은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대표팀 선수선발의 공정성이나 아시안게임 우승의 가치를 흔들 정도의 흠은 아니었다.
 
이는 다음 대회에서도 현재의 나이제한이나 와일드카드 제도를 유지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했다. 앞으로도 아시안게임이 단순히 병역혜택만을 노린 무대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젊은 선수들에게 국가대표에 대한 경험과 자부심을 심어주고, 프로 구단들도 유망주들의 육성과 국가대표 배출에 좀 더 집중하게 만드는 선순환으로 이어져 야한다.

한편으로 아시안게임 4연패가 지나친 자만이나 거품으로 이어지는 것은 경계해야할 필요가 있다. 한국야구가 나이제한과 세대교체로 이전보다 전력을 낮췄다고 해도 여전히 아시안게임에서는 전력상 최강이었고, 대만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을 위협할만한 팀은 없었다. 세계적인 강호들이 나오지 않고, 경쟁자들도 최상의 전력을 꾸리지 못한 대회에서조차 내용상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간신히 우승했다는 것은, 아직 한국야구의 국제경쟁력 향상까지 길이 멀다는 뜻이다. 

또한 이번 대회를 통하여 병역혜택을 얻은 젊은 선수들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동안 국제대회를 통하여 병역혜택을 받고난 이후, 나태해진 프로의식이나 국가대표 차출에 소극적인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긴 선수들도 일부 존재했다.
 
병역혜택은 그들이 본업인 야구를 통하여 리그와 사회에 더 기여할 수 있도록 국가가 배려한 선물이지, 개인적 이익만을 누리라고 준 특혜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한국야구는 이번 아시안게임 4연패라는 호재를, 야구 인기와 국제경쟁력 르네상스를 위한 기회로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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