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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방망이' 윤동희에게서 이정후가 보인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물오른 타격감 과시 윤동희, 중심타선인 3번으로 승격

23.10.04 10:25최종업데이트23.10.0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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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단어는 바로 이럴 때 쓰는 것이다. '대체자'로 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에 가장 막차로 합류했던 윤동희(롯데)가 연일 뜨거운 방망이를 과시하며 '신의 한수'로 거듭나고 있다.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대표팀은 10월 3일 중국 항저우 샤오싱 야구-소프트볼 경기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조별 리그 B조 3차전에서 태국을 17대 0으로 제압했다. 4회 만에 격차를 15점 이상으로 벌려 여유있게 5회 콜드 게임 승리를 거뒀다.
 
최근 물오른 타격감을 과시하고 있는 윤동희는 이날 3번으로 중심타선에 전진배치되어 3타수 2안타(1홈런) 3타점 3출루의 맹타를 터뜨리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윤동희는 첫 타석에서 몸에 맞는 볼로 출루, 두 번째 타석에서 직전 홈런을 친 최지훈에 이어 좌측 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기록하며 백투백 홈런이자 자신의 국제대회 첫 홈런까지 기록했다. 이후 무사 2,3루 상황 세 번째 타석에서는 2타점 적시 2루타를 추가했다. 마지막 타석이었던 4회 말 1사 2,3루 찬스 상황에서는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한국은 3회에만 대거 10득점 빅이닝을 펼치며 전날 대만전의 무득점 부진을 탈출했다.

류중일 감독의 승부수 통했다
 

3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인근 사오싱 야구·소프트볼 스포츠센터 제2구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조별리그 B조 대한민국과 태국의 경기. 2회말 2사 상황에서 대한민국 3번타자 윤동희가 파울을 날리고 있다. ⓒ 연합뉴스

 
아시안게임 직전까지 윤동희가 이렇게까지 잘 해줄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이 얼마나 될까. 윤동희의 발탁은 아시안게임 대표팀 소집 불과 하루전 급박하게 결정됐다.

당초 윤동희는 지난 6월 KBO가 발표한 항저우 아시안게임 최종 엔트리 24인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류중일 대표팀 감독은 대회 직전 투수 이의리(KIA)를 제외하고 윤동희를 대체 선수로 발탁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당초 많은 팬들과 전문가들은 윤동희의 역량보다는 이의리의 탈락에 더 주목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앞서 구창모(NC)가 부상으로 낙마하면서 이의리는 대표팀에 유일하게 남은 좌완 선발자원이자 국제무대 경험도 갖춘 몇 안 되는 정상급 투수였다. 부상이 아닌 이상 선수교체가 불가능하다는 규정과 이의리의 몸상태에 문제가 없다는 소속구단의 반박이 이어지며 논란이 커지기도 했다.

이의리의 대체자원이 같은 투수도 아닌 외야수인 윤동희라는 사실도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윤동희 본인에게도 아마 적지않은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윤동희에게 대표팀 발탁은 불과 1년전만 해도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반전이었다. 야탑고를 졸업한 뒤 202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3라운드 24순위로 롯데 유니폼을 입은 윤동희는 지난해는 1군에서 단 4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당시 1군 전력에 들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군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고 상무에서 지원서를 냈으나 그마저도 탈락했다.
 
씁쓸했던 첫해를 뒤로 하고 다시 운동에 집중한 윤동희는 작년의 아픔을 전화위복으로 만들어냈다. 올시즌 윤동희는 신인 자격을 갖춘 프로 2년 차로 KBO리그에서의 성적은 타율 .296(358타수 106안타) 2홈런 39타점을 기록중이다. 4월 23일 처음으로 1군의 부름을 받은 뒤 한번도 2군으로 내려가지 않으며 주전 자리를 꿰차는 데 성공했다.
 
만 20세 이하 100안타를 달성한 것은 롯데 구단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며 데뷔 2년만에 외야 주전자리에 국대 차출까지 이루어내면서 현재 미래의 롯데를 이끌 라이징스타로 위상이 급성장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내야와 외야를 오가며 포지션이 애매했으나, 올시즌을 앞두고 외야수로 확실하게 정착한 선택도 대표팀 막차 발탁으로까지 이어질수 있었던 탁월한 선견지명이 됐다.

마침 대표팀으로서는 투수 못지않게 외야수 보강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6월 첫 발표 당시 전문 외야수를 백업 자원없이 단 3명밖에 뽑지 않았던 대표팀은, 핵심선수로 평가받던 이정후(키움)가 부상으로 낙마하면서 김성윤(삼성)과 윤동희를 발탁하며 전력을 보강했다.
 
결과적으로 아시안게임에서 드러난 윤동희의 진정한 가치도, 이의리보다는 오히려 '이정후의 대체자'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윤동희는 홍콩전 5타수 2안타를 시작으로 대만전에선 4타수 3안타를 치며 최지훈(2안타)와 함께 타선에서 유이하게 제몫을 했다. 특히 한국 타자들이 대부분 고전한 대만 투수들의 공에도 정타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최근 윤동희의 타격감이 얼마나 물이 올랐는지를 잘 보여줬다.
 
앞선 2경기에서 6번타순으로 출격했던 윤동희는 맹활약에 힘입어 중심타선인 3번으로 승격했다. 태국전 2안타를 포함하면 이번 대회 전 경기 멀티히트에 무려 12타수 7안타, 1홈런 5타점 5득점. 타율은 .583으로 대표팀 전 타자들 중 단연 최고의 성적이다. 이정후가 이번 대회에 정상적으로 합류했다면 기대했을 모습을 막내급인 윤동희가 대신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생애 처음인 태극마크, 갑작스러운 엔트리 교체와 선발 과정에서의 논란 등 어린 선수에게 부담을 느낄만한 상황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윤동희는 압박감에 짓눌리지 않고 조별리그 내내 맹타를 휘두르며 자신의 첫 성인 국가대표팀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장식하고 있다. 류중일 감독도 "윤동희가 없었으면 어떡했을까 싶다"라고 웃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대표팀은 비록 대만전 패배로 험난한 길을 돌아가게 됐지만 4연속 금메달을 향한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 윤동희도 만약 결승에 올라서 대만을 다시 만난다면 반드시 설욕하겠다고 다짐했다.

윤동희는 "대만전 결과는 아쉬웠지만 다음에 만나서 이기는 게 중요하다"면서 각오를 다졌다. 윤동희의 놀라운 대반전이 주는 교훈은, 사람의 운명은 언제 어떤 기회로 인하여 바뀔지 모르고, 그 기회는 '준비된 자'만이 잡을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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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희 야구대표팀 류중일호 이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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