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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재밌는데... '무빙' 시즌2 나올까? 강풀이 답했다

[인터뷰]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무빙> 직접 각본 맡은 작가 강풀

23.08.31 10:31최종업데이트23.08.3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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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무빙> 각본을 쓴 강풀 작가. ⓒ 이선필

 
디즈니+ 드라마 <무빙>이 달궈지기 시작했다. 지난 9일 공개 후 일주일 만에 아태 지역에서 역대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 중 최장 시청 기록을 깼고, 국내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돌고 있다. 사건 위주의 전개가 아니라 초능력을 지닌 각 캐릭터를 한 명 한 명씩 소개하며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구성이라 속도가 느림에도 작품성 자체가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2015년 연재 이후 단행본이 나왔고, 드라마화까지 8년이 걸린 <무빙>은 SF 히어로물보단 오히려 휴먼 드라마와 가까워 보인다. 자신들의 특출난 능력을 알고 정체를 숨긴 채 학교생활을 하는 10대 주인공들이 극 초반을 이끌었다면, 중반부부턴 이들의 부모 이야기가 공개되며 흥미를 더한다. 지난 28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풀 작가에게 관련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었다.
 
땅에 발붙인 영웅들
 
알려진대로 영화화된 강풀 원작은 꽤 많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비롯, <아파트> <순정만화> <이웃사람> 등 그의 작품은 영상 매체로 다뤄지기 좋을 소시민적 캐릭터의 전복내지는 기승전결이 분명한 드라마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인기를 얻은 원작과 달리 영화에서만큼은 흥행성적이 좋진 못했다. <무빙>에선 본인이 직접 각본에 참여하기까지 했으니 그 부담이 더욱 크게 다가올 법했다.
 
"아시겠지만 오래된 프로젝트긴 하다. 다른 분이 4화까지 대본을 쓴 걸 받았고, 트리트먼트하는 과정에서 제가 몇 가지 의견을 드렸다. 이 작품은 오히려 천천히 전개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제작진 측에서 그럼 직접 써보는 게 어떻겠냐더라. 그래서 거꾸로 일단 제가 쓴 걸 보고 판단해달라고 하면서 보냈고, 승인이 났다. 제가 건 조건은 원래 드라마는 12화나 16화였는데 20부짜리로 해달라는 것이었고, 그렇게 합의가 돼서 참여하게 됐다.
 
이게 저 혼자만의 작업이 아닌 공동작업이잖나. 공개 이틀 전까지도 잠을 제대로 못잤다. 만화나 그리지 글 쓴다고 꼴값이랄까 봐(웃음). 예전 기사 중 강풀 영화의 최대 적은 강풀 원작이라는 내용이 참 속상했었다. 지난 영화들을 변호하자면 전 영화 작업에 간섭 안 하기로 유명했거든. 제 원작 이야기가 볼륨감이 있으니 축약하거나 변형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그런 평이 나온 셈이다. 이번엔 제가 극본까지 쓰니 더 재밌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엄청난 돈이 들어간 대작인데 신인 작가에, 20화까지 쓰겠다고 하니 부담감이 심하긴 하더라."

 
그렇게 시작한 드라마는 배우 류승룡, 한효주, 조인성, 류승범 등 기성 배우들이 참여했다. 각자의 작품에서 단독 주연을 할 만한 이들이 대거 모였고, 이정하, 고윤정, 김도훈 등 신예들의 비중도 꽤 컸다. 강풀 작가는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 이야기를 보여드리고 싶었고, 무조건 싸우기보단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그것이 한국형 히어로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무빙> 스틸컷 ⓒ 디즈니+

 
"여러 장르물 중 초능력자가 나오는 장르는 캐릭터가 땅에 발붙이기 어렵잖나. 그래서 인물 하나하나 소개하며 전개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제작진이 받아들여주셨다. 물론 앞부분을 신인 배우로 끌고 가는 건 모험이긴 하다. 제작 때 이견이 가장 많았던 지점이다. 시간순대로 하자는 의견이 강했는데, 사실 모든 드라마 제작진이라면 그 선택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할 것이다. 제가 끝까지 고집했다. 현재의 아이들과 과거 어른들 이야기가 합쳐지는 구조이길 원했거든. 그래야 긴장감과 미스터리성이 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한국형 히어로는 제가 계속 우긴건데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어서 감사하다(웃음). 사실 저도 정확히는 모른다. 뭐가 한국형인지는. 근데 작품 속 영웅들이 한국의 역사와 닿아있길 바랐고,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세태에 휩쓸려 버린 이들이길 원했다. <무빙> 속 영웅은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다. 거대한 국가, 지구를 지키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을 위해 싸우는데 그런 의미에서 전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들이 히어로라고 생각한다. 그걸 초능력자로 확장한 것이지. 그래서 액션도 주로 방어하는 액션이어야 했다."

 
"사회성보다 중요한 건 작품의 재미"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무빙> 각본을 쓴 강풀 작가. ⓒ 이선필

 
그의 이야기는 그런 의미에서 일관성 있다. 마냥 어둡고 침울한 게 아닌 대부분은 희망을 얘기하며 주인공은 고군분투하다가 결국 소기의 결실을 얻는다. <무빙> 11화, 울산 지역 깡패였던 장주원(류승룡) 편에서 레슬러 헐크 호건, 그리고 마블 코믹스 캐릭터 헐크를 두고 "착한 사람이 결국 이기는 게 좋다"고 말하는 게 바로 강풀 작가의 작품관을 대변하는 대목일 것이다.
 
"제가 작가지만 동시에 제 이야기의 첫 번째 독자잖나. 염세적인 걸 안 좋아한다. 다 망할 거야 하는 건 굳이 안 보거든. 제가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도 모르지만 착한 사람이 이길 때 행복하더라. 제 작품을 두고 정치색이나 사회적 메시지를 언급하는 분도 계신데, 따지면 < 26년 >이 유일하게 사회성 있는 작품이었다. 그걸 제외하고 전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중점을 두진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재미지. 물론 나 혼자만 재밌으면 어떡하지 항상 걱정하긴 한다(웃음).
 
남북한 문제를 언급한 걸 정치적이라고도 하시는데 굳이 정치색을 드러내진 않는다. 다만 우리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게 또 정치 아닌가. 이 나라에 살고 있고, 이 나라에서 경험하고 있는데 애써 정치를 빼는 게 더 비현실적이라 생각한다. 여전히 한국은 전쟁이 끝나지 않은 분단국가잖나. 소시민을 다루는 이유도 제가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다. 내 주변에서 항상 소재를 찾는다. 소재의 규모를 키우는 것엔 관심 없고, 사람을 표현하고 그리는 데 집중하고 싶다."

      
이 대목에서 강풀 작가는 차태현이 연기한 번개맨을 언급했다. 강 작가가 애정하는 캐릭터 중 하나로 원작 만화엔 없는 인물이다. 류승범이 연기한 프랭크와 함께 이번 드라마를 위해 만들어 낸 캐릭터인데 강 작가가 직접 차태현에게 연락해 출연을 부탁한 경우였다고 한다.
 
"부모와 자식을 잇는 중간 세대가 필요했다. 어릴 때 독립한 번개맨은 사실 표현하기 가장 어려운 캐릭터기도 하다. 몸에 정전기가 있어서 대인 관계에 서먹할 수밖에 없고, 어찌 보면 가장 볼품 없는 초능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버지와 관계도 어색하다. 우리 드라마에서 가장 외로운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유일하게 코스튬도 입어야 하고. 차태현 배우에게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일정대로면 <무빙>은 오는 9월 20일 마지막회가 공개된다. 일각에선 인기에 힘입어 시즌제로 갈 가능성도 나오는 상황. 게다가 원작에선 <타이밍>과 <브릿지>라는 작품으로 <무빙>의 세계관이 이어지기에 확장판이 나올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정해진 건 없지만, 적어도 강풀 작가 본인의 의지는 있어 보였다.
 
"단언할 수는 없고 가능성을 열어두곤 있다. <무빙>의 흥행에 달려 있다(웃음). 사실 제가 극본 작가가 된 것도 신기하다. 제가 <히든>(<브릿지> 후속인 액션물)이 올해 나온다고 단언해버렸는데 <무빙>을 쓰느라 내지 못했잖나. <무빙> 결과에 따라 그 뒤에 뭘 할지가 아마 정해질 것같다. 일단은 마지막 회가 공개되고 안식월을 좀 갖고 싶다. 만화에 대한 그리움도 있어서 쉬면서 생각할 것 같다. 아이들과도 좀 놀고 싶다.
 
아마도 제가 앞으로 왕성하게 활동할 시간이 10년 정도일 텐데, 더욱 여러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다. OTT 등 환경이 급변해서 마치 방망이 깎는 노인이 된 심정이지만, 서사성은 지키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10권 이상의 대하소설을 좋아했거든. 요즘 사람들은 이야기보단 줄거리에 관심이 있기에 빨리 감기로 보실 때가 많은데 그럼에도 전 서사는 지켜야한다고 본다. <무빙>도 그래서 앞부분이 지루할 수 있다고 했지만 각 캐릭터의 서사를 고집했다.
 
유튜브로 요약본을 보는 시대에 너무 오만한 거 아닌가 싶지만, 제가 어떤 작품에서 기준이 돼야 한다면 서사성을 지키는 게 제 몫이라 생각하는 거다.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지는 중에도 전 책장에 꽂히는 책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다행히 <무빙>은 그 정도 수준은 되는 것 같다. 다음에도 가능할까? 이 질문을 계속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다."

 
<무빙>에 강풀이 출연할 뻔했다고?
몇몇 강풀 원작 영화에 카메오처럼 강 작가가 출연한 경우가 있었다. 이번 <무빙> 때도 사실 강풀이 출연할 뻔했다고 한다. 3화에서 희수(고윤정)와 그의 아빠 주원(류승룡)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원래 치킨을 사가는 손님으로 강풀이 설정돼 있었던 것. 하지만 등장 인물들의 감정선이 중요한 장면이었던 만큼 제작진이 고심 끝에 지금의 버전으로 결정했다고.
 
"사실 저도 걱정했는데 빠지게 돼 다행이었다. 감독님 판단이 맞았지. 제가 나오면 분위기가 깨지지 않았을까. 게다가 제가 치킨을 한 마리만 시키겠나(웃음). 없앤 게 너무 잘한 것 같다."
 
강풀 무빙 류승룡 조인성 한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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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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