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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는 핵무기 만든 것을 후회했을까

[TV 리뷰]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

23.08.04 17:48최종업데이트23.08.0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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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의 한 장면. ⓒ tvN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는 인간들이 각자가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행동으로 인해서 오히려 둘 다 큰 손해를 볼 수도, 반대로 공동의 이익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면 결과적으로는 둘 다 모두 이익을 볼 수도 있다는 이론이다.
 
'핵무기'를 둘러싼 논쟁도 이와 비슷하다. 서로 무기를 갖고 대립하고 두려움으로 평화를 유지한 것이 과연 최선일까. 아니면 서로 협력해서 위기를 벗어나는 게 더 나은 방법일까. 인간은 모두 후자가 모범답안을 알고는 있지만, 결국 서로를 믿지 못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
 
8월 3일 방송된 tvN의 새로운 인문예능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아래 알쓸별잡) 첫 회에서는 첫 방문지로 미국 뉴욕을 찾은 잡학박사들의 여정과 '인류의 핵무기 역사'에 대해 다뤘다. 영화감독 장항준과 배우 김민하가 MC를 맡고, 영화 평론가 이동진, 건축가 유현준, 물리학자 김상욱, 천문학자 심채경이 이번 여정을 함께 했다.
 
뉴욕은 인류 최초의 핵무기 개발 계획으로 꼽히는 '맨해튼 프로젝트'가 유래한 곳이기도 하다. 저마다 뉴욕의 역사와 명소를 둘러보고 다시 한자리에 모인 잡학박사들은 인류의 판도를 바꾼 핵무기의 역사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1938년 독일의 과학자들은 실험 도중 우라늄 원자의 분열과 함께 큰 에너지가 생성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 원리대로라면 이전에 없었던 강력한 폭탄을 만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런데 불과 1년 뒤에 2차세계대전이 터진다. 연합국들은 히틀러의 나치가 이 기술로 위험한 폭탄을 만들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된다.
 
미국은 독일에서 나치를 피하여 망명해온 과학자들을 활용하여 나치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할 계획을 추진한다. 우리에 익숙한 '천재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도 독일에서 망명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을 찾아가 미국 정부를 설득하는 편지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고, 이를 읽은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은 극비리에 맨해튼 프로젝트를 승인한다.
 
당시 독일에도 많은 우수한 과학자들이 있었지만 예상과 달리 2차대전에서 패망할때까지 원자폭탄 개발은 진척되지 않았다. 나치는 여러 가지 신무기를 검토했지만 원자폭탄은 단기간에 개발하기에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도 과학의 역사에서 단기간에 이론 실용화에 성공한 것은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이 지극히 예외적이고 독보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이름과 달리 실제로는 미국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됐다. 미국은 거대한 국토와 압도적인 물량을 활용하여 전국 곳곳에 핵분열을 위한 거대한 공장과 연구소들을 설립했고 고용된 인력은 총 13만 명에 이르렀다. 이에 투입된 비용은 약 22억 달러(현재 가치 약 330억 달러, 한화 42조 1905억)이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였다.
 
당시만 해도 엄청난 힘을 가진 핵분열을 인간이 마음대로 다루는 것은 이론상으로만 가능했을뿐, 실제로는 불가능할 미션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주 앨라모고도의 폭격연습장에서 인류 최초의 핵폭탄 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적으로 종료되며 이제껏 인류 역사에 없었던 거대한 대량살상무기가 완성된다.
 
하지만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당시 기술로 완성할 수 있었던 폭탄은 우라늄 폭탄 1개, 플루토늄 폭탄 2개까지 총 3개에 불과했다. 트리니티 실험에 사용된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2개는 바로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이었다.
 
폭탄제작에 있어서 당시 물리학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난제는 우라늄의 폭발 임계점을 계산하는 것이었다. 컴퓨터가 없어 인간의 힘으로 모든 계산을 해결해야 했던 시대에, 임계점을 조금이라고 잘못 계산했다면 실험 중 핵폭발로 오히려 모두가 자멸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임계치를 계산하는데 리처드 파인만 등 당시 내로라하는 수많은 과학자들이 머리를 싸매야 했다.
 
오펜하이머의 믿음과 좌절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의 한 장면. ⓒ tvN

 
미국의 물리학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인물이다. 그는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과학자들을 지휘하면서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전설적인 과학자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펜하이머>는 바로 맨해튼 프로젝트와 오펜하이머의 행적을 조명하며 '세상을 구하기 위하여 세상을 파괴해야 할지도 모르는 선택을 해야 하는' 과학자들의 고뇌를 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에서 오펜하이머는 아일랜드 출신의 배우 킬리언 머피가 연기했다.
 
오펜하이머는 본인이 뛰어난 과학자이기도 했지만,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가는 과정을 통하여 '과학 행정가'로서의 업적이 더 두드러지는 인물이다. 하나 하나가 똑똑하고 자존심 강하기로 둘째가면 서러울 천재 과학자들을 수백명이나 통솔하며 서로 협력하게 만드는 리더십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자들은 '오펜하이머가 없었다면 맨해튼 프로젝트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오펜하이머는 젊은 시절만 해도 내성적인 성격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던 기록이 있다.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격언처럼, 맨해튼 프로젝트 당시의 오펜하이머는 강력한 라더십으로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고 한다.
 
오펜하이머를 발탁한 것은 미국의 육군장교이며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인 레슬리 그로브스(1896-1970)라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군인과 과학자'라는 배경과 철학도 이질적인 집단을 잘 조율하며 프로젝트의 성공을 함께 이끈 투톱으로 꼽힌다. 영화에서 그로브스를 연기한 배우 맷 데이먼은 김민하와의 인터뷰에서 그로브스의 캐릭터와 행적을 연구하며 "그는 유치원 선생님처럼 과학자들을 대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동진은 "영화 <오펜하이머>가 '과학공동체'의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로는 갱스터 느와르에 가까운 서사도 지닌다"고 평가했다. 어제까지 국적과 배경을 떠나 서로 함께 같은 목표로 과학을 연구하던 학자들이 '전쟁과 국익'이라는 현실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면서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으로 대립하는 비극을 겪게 된다. 또한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핵무기를 앞장서서 만들었지만, 정작 전쟁이 끝난 이후에 핵폭탄을 사용할 권한과 그 파장은 과학자들의 손을 벗어나게 된다.
 
오펜하이머는 핵무기 개발로 <타임>지에도 이름을 올리며 미국의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지만, 정작 그는 마냥 행복해하지 않았다. 맨해튼 프로젝트 시절,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개발은 전쟁을 막을 것이다. 강력한 대량살상무기의 등장은 전쟁 억제력을 가질 것이기에 오히려 전쟁을 막을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원자폭탄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의 한 장면. ⓒ tvN

 
하지만 훗날에 오펜하이머의 태도가 달라진다. 그는 "현재로서의 나는 더 나은 길이 열렸는지 확신할 수 없다", "나는 이제 죽음이자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고 자조하며 여러 차례 핵무기 개발을 후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핵폭탄과 마찬가지로 오펜하이머와 과학자들이 핵무기를 바라보는 인식 역시 분열과 혼란의 반복이었다. 전후 핵무기 개발을 둘러싸고 과학자들은 찬성파와 반대파로 극명하게 분열되는 양상을 보였다. 오펜하이머는 핵무기 개발을 가장 주도한 인물임에도 아인슈타인 등과 함께 반대 입장에 섰다.
 
누군가는 오펜하이머의 이런 행동을 위선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김상욱은 "오히려 그래서 인간적"이라며 과학자의 입장에서 오펜하이머의 고뇌에 공감했다. 결과적으로 핵무기 프로젝트는 성공했고 전쟁은 승리했으며 본인은 영웅이 되었지만, 한편으로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대량살상무기를 만든 책임으로 비판받는 상황이 오펜하이머에게도 편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오펜하이머처럼 창조적이고 엄청난 업적을 이룬 듯한 인물도 결국 평범한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모순적인 인간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세계적으로 핵무기 보유 추정치는 1만 2000여 개 이상으로 예상된다. 결과적으로 강력한 원자폭탄의 등장이 전쟁을 종식시킬 것이라는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대한민국도 핵무기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잡학박사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사례에서 보듯, 한 사람의 오판으로 전세계기 핵전쟁의 위협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전쟁에서는 의사결정의 속도와 합리성이 중요한데, 인공지능이 인간의 판단과 결정을 대체할 수 있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이처럼 핵무기와 핵전쟁은 이제 멀리 떨어진 상상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현실이자 목숨과 직결된 문제가 되었다. 핵무기가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기에는 이제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닐까. "평화는 무력에 의하여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해에 의하여 이루어질 뿐이다"라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격언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알쓸별잡>은 각 분야 전문가들의 지식 대방출과 더불어 심도 깊은 토론으로 토크 예능의 새 장을 열었던 '알쓸신잡 시리즈'의 최신작이다. 이번에는 지구별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현재 지구와 세계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 분야에서 파헤쳐 본다는 것이 확장된 기획 의도를 표방했다. 이어 다음주 방송에서는 영화 <오펜하이머>의 개봉을 앞두고, 세계적인 거장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출연과 잡학박사들과의 대담을 예고하며 기대감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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