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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 대군'은 몰려오는데 걱정이네요

누군가는 저항할 수도 없이 배제되고 인간적 접촉의 기회는 사라져

등록 2023.07.30 18:34수정 2023.07.30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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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과 간단하게 점심을 요기하러 대형 커피전문점에 들렀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키오스크 앞에 서너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전 카페 리모델링을 하더니 키오스크 기계를 들여놓은 모양이다. 나도 줄 끝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곧 직장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더 들어와 줄을 이었다. 요즘 흔해진 키오스크 주문에 이미 익숙한 터라 무심히 기다리다 내 차례가 되었는데, 아뿔싸 첫 화면이 이상하다.


어쩐 일인지 이전 주문의 결제란이 떠 있었다. 취소를 하고 다시 첫 화면을 띄우려는데 홈 버튼이 잘 안 보였다. 여기저기 들락거리느라 본의 아니게 시간이 지체되자 돌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뒤에 선 사람들의 기다림이 압박감으로 일 초마다 더해갔다. 첫 화면을 띄웠으나 서두르는 통에 찾는 메뉴가 얼른 눈에 안 들어왔다. 샌드위치만 간신히 찾고 원하는 디카페인 라테는 어디 숨었는지 결국 찾지 못했다. 

그나마 눈에 띈 우유 한 잔으로 대체하고 황급히 뒷사람에게 자리를 넘겼다. 키오스크 주문이 낯설고 어렵다는 기사를 봐도 그저 남의 이야기려니 했다. 원하는 걸 찾아 순서대로 터치하면 되는데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리 돌발상황을 겪고 보니 알 것 같았다. 도움을 요청하고픈 순간, 정신없이 바빠 보이는 매장 직원은 멀었고 기계와 혼자 씨름하는 상황이 잠시지만 초조했다. 

시대 흐름의 낙오자가 된 듯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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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 주문이 낯설고 어렵다는 기사를 봐도 그저 남의 이야기려니 했다. ⓒ Unsplash

 
대면으로 주문했다면 맞닥뜨리지 않을 상황일 것이다. 키오스크 주문 방식이 아무리 인건비 절감과 정확한 주문정보의 전달이라는 장점을 가졌다 해도 그게 다는 아닌 듯했다. 사람을 상대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좌절시키는 순간을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달까? 기계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했을 때 엄습하는 당황은 물론 여차하면 시대 흐름의 낙오자가 된 듯한 심정까지 맛보게 되니 달가울 리 없었다. 

키오스크뿐 아니다. 일상 속 기계화는 지금도 기세 좋게 확산되고 있다. 언제부턴가 여행지의 렌터카를 빌릴 때에도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공항에서의 항공기 티켓 발권이나 수하물 처리도 모두 기계가 한다. 마트의 계산원들이 대폭 줄고 그 자리를 셀프 계산대가 메꾼 지도 오래다. 가전이 고장 나 업체에 전화를 해도 AI 자동 응답전화가 응대한다. 사람을 직접 만나거나 목소리를 듣는 일이 정말 희귀해진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일상 속 기계화로 비롯된 안타까운 상황은 또 있다. 바로 기계화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80대 시부모님과 함께 고기구이 식당에 갔다. 일로 한참 바쁘게 고생한 손자를 위해 시부모님께서 모처럼 식사를 사주시는 자리였다. 메뉴를 정하는데 테이블 위에 어른 손바닥만 한 기기가 놓여있었다. 태블릿으로 메뉴를 주문하는 방식이었다. 


20대 손주들이야 창을 휙휙 넘기며 금세 메뉴를 정했지만, 80대 부모님은 벽에 붙은 메뉴판도 없어 한참 동안 자녀들의 설명에 귀 기울여야 했다. 상의해서 주문은 마쳤지만, 시부모님 두 분만 오셨다면 과연 순조롭게 주문을 하실 수 있었을까? 기계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겐 식당에서 음식 주문하는 일마저 장벽이 되어버렸구나 싶어 떨떠름했다. 

일상 속 기계화의 이면

이렇게 누군가는 저항할 수도 없이 배제되고, 인간적 접촉의 기회가 점점 사라져 가는 일상 속 기계화에 대해 우리는 그저 만족하고 환영만 해야 될지 의문이 든다. 인간은 분명 기계로는 처리되지 않는 음색이나 톤, 표정과 대화의 속도 등을 감지하며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상대하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회적 존재인데 말이다. 나만 느끼는 바가 아닐 것 같아 궁금해서 관련 책들을 찾아보았다. 

마침 저널리스트인 크레이그 램버트의 <그림자 노동의 역습>이라는 책에 기계화가 인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구절이 있었다. '그림자 노동'이란 오늘날 현대인이 보수가 따르지 않는데도 기업이나 조직을 위해 수행해야 하는 모든 일을 의미한다고 한다. 셀프주유, 셀프계산, 이케아 가구조립, 키오스크 주문 등 그 예는 도처에 널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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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 대군이 몰려오고 자동 기계 장치가 관계 속에 침투한 결과, 인간의 본성에 이질적인 행동 유형이 주입되면서 사람들의 습관이 다시 형성되고 있다. 기계는 사람들이 자기들처럼 행동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기계의 행동방식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으면서 절대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방식이 포함되어 있다."(216쪽)

"우리는 사람들에게서도 비슷하게 완벽한 성과를 기대하기 시작한다. 왜 인간이 지능도 없는 기계에 불과한 것들만큼 일을 잘 처리할 수 없는가? 그로 인해 무의적으로 미세한 재조정이 이루어진다."(217쪽)

"각자의 안전한 장소에 격리된 그림자 노동자들은 실제 사람들과 잡답을 주고받는 일도 피한다... 키오스크 사용자들은 스스로 자동 기계 장치가 되기 쉽다. 이지적이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디지털 정보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311쪽)

기계 사용이 일반화되며 인간에게도 기계와 같은 완벽함을 기대하고, 기계와 닮아가는 인간형으로 미세조정 중이라니 놀랍다. 이 구절들 대로라면 기계화로 인해 사회성과 인간미 같은 인간의 고유한 특질들을 점차 상실해 가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아마도 일상 속 기계화는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 것이다. 기계화의 장점은 취하면서도 기계화 이면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도 함께 주목하고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키오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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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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