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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의 거리두기,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

써야만 알 수 있는 공개적 글쓰기가 만들어내는 일들

등록 2023.07.25 08:51수정 2023.07.2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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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힘을 뺄 때 잘할 수 있다. 운동선수가 경기장에서 몸에 너무 힘을 주면 부상을 당하거나 경기 결과가 좋지 않다. 가수 연습생들이 처음 하는 훈련 중 하나가 누워서 노래 부르기라고 한다. 쓸데없는 힘을 몸에서 빼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어 연필을 잡고 글자를 쓰기 시작했을 때,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손에 힘을 빼라는 것이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써야 하는 글자수가 늘어나는데 손에 너무 힘을 주면 오래 쓰기가 힘들다. 막 글자를 쓰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예쁘게 쓰는 것보다 편하게 쓰는 것이다.

글도 그렇다. 글이랍시고 처음부터 너무 힘을 주면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시작을 하더라도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상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생각으로 그저 툭 시작하면 된다. 이왕이면 친절해야 한다. 상대는 나를 모른다. 나는 내가 살아온 세월을 켜켜이 알고 있지만, 내 글을 읽는 독자는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른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들려주듯 하나씩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가야 한다. 스타일에 너무 치중해 감추고 에두르면 독자는 모른다. 뭔가 있어 보일 수는 있지만 이야기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세상의 거의 모든 글은 감동을 목표로 쓰인다. 감동의 사전적 의미는 '크게 느끼어 마음을 움직임'이다. 

결국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쓰는 게 글인 것.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돼야 독자가 감응한다. 스타일보다는 전달이 우선이다. 글자가 이야기를 나르는 도구라고 생각하면, 쓰는 게 크게 어렵지 않다. 결국 읽히기 위해 쓰이는 게 글이다. 모양새는 나중 문제다.

공개적인 글쓰기의 효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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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적인 글쓰기 타인은 내 삶에 그리 오래 집중하지 못한다. 공개적인 글쓰기는 글이 가장 빠르게 느는 방법 중 하나다. ⓒ pixabay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면 홀로 끼적이지 말고, 공개적인 글쓰기를 하라고 권하고 싶다. 책상에 앉아 당장 글을 쓰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공개라니. 누군가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내 경우 처음 글을 쓸 때부터 공개적인 글을 썼다. 이십 대 초반 감성이 말랑하던 시절 혼자 SNS에 종종 끼적이곤 했는데, 독자는 지인 몇 명에 불과했다. 


그 얼마 안 되는 독자라도 있다는 사실이 나를 쓰게 했다. 공개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글이 되지 않았다. 혼자 보고 말 글이라고 생각하면, 시작은 해도 끝을 낼 수 없었다. 흐지부지하다 결국 그만 두곤 했다. 공개를 염두에 두면 어떻게든 마무리하게 된다.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만, 시작한 글을 끝내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공개는 그 어려운 일을 기꺼이 하게 만든다. 

글쓰기 모임을 하거나, SNS를 활용하거나, 블로그를 운영해 보는 것도 좋다. 독자가 있다고 생각하면, 의도하지 않아도 글의 생김도 점점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마치 연예인들이 카메라 마사지를 받았다고 말하듯, 글도 공개되면 시선 마사지를 받는 것. 일일이 지적하고 첨삭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교정의 힘이 공개에 있다.

마침표를 잘 안 찍던 사람이 마침표를 찍고, 문장마다 줄을 띄우던 사람이 문단을 만든다. 생각나는 대로 적던 사람이 짜임새를 고려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공개적인 글쓰기는 자신의 글을 점점 가다듬게 한다. 오랜 시간 온라인 공간에서 꾸준히 글 쓰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런 사례를 적잖이 만났다. 글이라고는 모르던 사람이 공개적인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보여준 변화는 결코 작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가 공개되는 것에 겁을 먹는 사람들이 많다. 미안하지만 사람들은 당신의 삶에 별로 관심이 없다. 공감도 사실 글을 읽는 순간의 일이다. 지나고 나면 결국 자신의 삶으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다. 공개한다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게는 살이 에이는 아픔일지라도 독자에게는 별 것 아닌 경우도 많다. 

다만 내 안에서는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쓸 때는 주저했지만 막상 쓰고 나니 큰 아픔은 아니었구나 깨닫는 경우도 있고, 생각보다 더 아린 일이었음을 알게 될 때도 있다. 부끄러움은 더 이상 부끄러움이 아니고, 아픔은 더는 아픔이 아니다. 글로 쓰고 나면, 분명 같은 일인데 내 안에 다르게 남는다.

내 경우 꼭 글로 쓰고자 했던 경험 중 하나는 열다섯 살 때 구도심에서 신도시로 이사를 가며 겪었던 일련의 일들이었다. 갑작스럽게 빈부격차가 확연히 드러나는 세상에 떨어진 나는, 오랜 시간 방황을 했다. 그 시간 동안 내 삶의 중심은 내가 아니었다. 그 시간을 빠져나오는 데만 십수 년이 걸렸다. 어느 겨울날 그 시간의 일을 장편소설로 썼다. 쓰고 나서는 잊고 있었던 시간들까지 모두 되살아나 뼈가 저렸다. 다시는 이런 글 쓰지도 않을 거라며 내팽개치기도 했다. 

하지만 몇 달 뒤 놀랍게도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더는 그 일로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이전에는 타인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꺼렸는데, 어느 순간 이야기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사건을 활자화하면서 객관화가 됐기 때문이다. 객관화의 '객(客)' 자는 손님을 뜻한다. 손님의 시선으로, 타자의 시선으로 내 삶을 보는 게 바로 글쓰기다.  

글쓰기는 자신을 분리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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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다는 것 쓰는 세상에서는 나와 거리두기가 가능하다. 내 삶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 글쓰기다. ⓒ pixabay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에는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라는 개념이 나온다. 주인공인 열두 살 진희는 이렇게 두 개의 자아로 분리해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한다. 태어날 때부터 이런 시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어딘가에는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실 자신과 자신의 이야기를 분리해 바라보기 어려워한다. 살아낸 모든 순간들을 기억하며 살진 않지만, 기억으로 남은 것들은 대부분 강렬한 일이기에 생각할수록 아프고 억울하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 기억과 감정을 분리하지 않고 계속 놔두면 병이 되기도 한다. 우울증이나 조울증이 오기도 하고, 공황장애나 피해망상,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한다. 내 경우도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일들에 사로 잡힐 때면, 자주 자기 연민에 빠졌다. 나는 왜 이럴까, 내 삶은 왜 이 모양일까, 나만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이런 생각에 너무 오래 빠져 있으면 마음의 병이 된다.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질 때마다 나는 나를 구하기 위해 글을 썼다.

글을 쓰는 일은 자신을 분리하는 일이다.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게 자기 자신이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우리는 우리 몸을 떠날 수 없다. 이 불가해한 일이 글에서는 벌어진다. 내 삶을 글로 옮기면 한 발자국 떨어져 나를 보게 된다. '바라보는 나'가 끊임없이 '보여지는 나'를 관찰한다. 이 놀라운 경험은 아픔을 아프지 않은 일로 만들기도 하고, 기쁨의 유효기간을 더 늘려주기도 한다. 

삶을 조금 더 가볍게, 그렇지만 더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이 글쓰기다. 거리를 두면 쉽게 분노하지 않는다. 거리를 두면 내가 나를 어루만질 수 있다. 너무 가까우면 정도를 지나칠 때가 많다. 부모와 자식 간이 그렇듯, 나와의 거리도 그렇다. 불가능할 것만 같은 나와의 거리 두기가 글쓰기 세상에서는 가능하다. 내 삶을 재정렬하는 일, 그게 바로 글쓰기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 게재합니다.
#글쓰기 #생애첫글쓰기 #공개적인글쓰기 #SNS #글쓰기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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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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