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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학교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무너진 폐허에서 남은 자들이 해야할 일... 학교, 시민을 길러내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등록 2023.07.24 04:43수정 2023.07.24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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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 앞에 전국의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1학년 교사의 사망에 가슴 아파하며 근조화환을 보냈다. ⓒ 유성호


처참한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쓸까 하루종일 서성였습니다만,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이 더 늦어질 거란 생각만 듭니다. 

'교권추락' '공교육 붕괴'는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학교 내의 각종 교권침해 사례와 인권침해 사례는 굳이 더 보태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교육현장의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습니다. 학교폭력뿐 아니라 마녀사냥도 이어집니다.

폭력의 양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나를 중심으로 한 작은 공동체의 이익이 우선이고. 그 외부자들은 모두 내 공동체에 엎드려 조아려야 마땅하다는 이기주의입니다. 이 문장의 적용범위는 학교뿐 아니라 지금 이 시대 한국사회의 모든 조직에 해당됩니다. 

학생은 어떤 가족의 구성원입니다. 그 가족은 이 사회의 시민입니다. 가족들은 일하는 동안 사회에서 받은 수많은 모멸과 차별을 차곡차곡담아 꽁꽁 싸맵니다. 더러워진 감정의 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집으로 갑니다. 세상의 어두운 그림자가 담긴 보따리 옆에서 잠을 자는 아이들은 보따리에서 흘러나온 지꺼기를 몸에 묻힌 채 학교로 옵니다.

그러니까 학교는 이 사회에 흘러다니는 혐오, 물화, 차별, 배제, 모욕이 뒤섞였다가 정화됐다가 다시 폭발하는 곳입니다. 응축된 감정의 '쓰레기장'입니다. 교육은 이 쓰레기들을 씻어내 아이들을 돌려보내야 합니다. 사회가 더러울수록 학교가 해내야 할 일은 너무 많아집니다. 

우리 사회는 더욱 지독해졌습니다

공교육은 1980년대보다는 행정시스템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우리 사회는 더욱 지독해졌습니다. 교육은 사회의 부패속도를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교실 안은 아수라장입니다. 세상의 쓴맛이 응축돼 있습니다. 반면, 규율과 질서를 잘 지키고, 인내심이 강하고 수행능력이 뛰어나며, 체제적응을 잘 하는 사람들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위 덕목에 하나라도 어긋나면 교사가 될 수 없습니다. 공직자도 될 수 없습니다.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은 체제를 꾸려가는 정부의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 이번 S초 교사가 처음이 아닙니다. 2018년 전라남도 구례에서도 비슷한 죽음이 있었습니다. 초등교사였고 혼자 3개의 공모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업무과중으로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알려졌습니다. 당시에도 개인의 우울증이라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구례의 교사는 "학교는 지옥이다"라는 유서를 남겼습니다. 그 이후 5년 동안 수많은 교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교육계는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공교육이 과연 붕괴된 것일까, 다시 질문합니다.

붕괴한 것이 아니라, 공교육은 완전히 달라진 세상에 전혀 적응하지 못해 분쇄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요. 세상은 변했어요. 아이를 때리면 안되고 모든 노동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직업에 귀천을 두면 안되고 차별적인 언행도 안됩니다. 성적대로 줄을 세워도 안 되고 가부장을 내세워도 안됩니다. 

반면, 노동으로 재산을 모으기 힘들어 부자되기 어렵습니다. 계급사다리는 부서진 지 오래고 금융자본은 전세계를 잡아먹고 있어요. 양극화가 심해져서 개천에서는 절대 용이 나지 않아요. 이제 금융자본으로 돈 벌 수 없는 노동자들끼리 부여안고 팔짱 끼고 걸어야 살똥 말똥한 세상입니다. 

교사는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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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후 서울시교육청앞에서 전교조 조합원들이 학교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서초구 S초등학교 교사를 추모하는 글을 흰 천에 적고 있다. ⓒ 권우성

 
교권추락은 어떤가요. 교사의 역할이 지금 교사가 할 일이 맞나요?

교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요? 가르치는 사람인가요? 지금의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들인가요? 아니에요. 지금의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르칠 수 없어요. 교사는 행정업무를 하는 사람이고 기간제교사를 채용하고 내보내는 사람이며, 돌봄교실을 배정하는 사람이고, 공모사업에 기획서를 제출하고 행정실에 예산지급 품의서를 제출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연락이 되지 않는 학부모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서 아이문제로 학교에 나와줬으면 좋겠다고 읍소해야 하고, 교실에서 가위를 집어던지는 아이를 끌어안아야 합니다. 각종 민원을 받아야 하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가려둬야 합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한 반의 모든 아이들이 폭력적인 아이를 이해하도록 설득해야 합니다. 급식에 알레르기유발물질이 있는지 살피고, 아이들의 콧물을 닦아주고 긴 패딩점퍼의 지퍼를 내려주고 개어주어야 합니다. 선배들의 업무를 대신 처리하고 체육관 물품을 정리하고 과학실 도구를 닦아야 합니다. 교사는 누구인가요? 

사회는 학교에 너무 많은 것을 밀어넣었습니다. 시민들도 그게 당연하다 여깁니다. 학교는 무너지는 이 사회의 마지막 안전망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요. 

학교는 30년 전과 완전히 다른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그 사이 공교육계는 여전히 30년 전의 모습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교권추락, 공교육 붕괴로 해석되지 않습니다. 사회가 무너지고 공동체가 박살나면서, 버티던 학교의 담벼락은 이미 무너졌어요. 

각 교실에는 폭력적 성향의 학생뿐 아니라, 별도의 돌봄이 필요한 학생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코로나 3년간 퇴행을 보인 학생들도 있고, 미숙아로 태어나 힘겹게 성장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학교에 온갖 정책이 쏟아져 들어왔고, 돌봄의 크기가 커집니다. 모든 사람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시대가 되어 상상도 못할 민원이 있습니다. 담임교사의 연락처는 공개돼 있고, 소셜미디어는 수시로 사찰당합니다. 

만약, 방법이 있겠냐고 묻는다면 여태 몇 년간 해왔던 이야기와 비슷한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 1개 학급에 2명의 담임이 필요합니다. 생활지도와 교과지도가 분리되어야 합니다. 학생수가 줄어든다고 교사를 줄여서는 안됩니다. 

- 행정실무자와 시설관리자는 각 학교에 더 많이 배치되어야 합니다. 특별교실을 관리하고 방역을 책임지고 학교시설을 지킬 사람들이 여러 명이 있어야 합니다. 

- 특히 공모사업 등 별도의 행정업무를 전담할 수 있고 결정권도 가진 행정실무사가 교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합니다. 

- 모든 학교에 1명 이상의 상담전문가와 사회복지사가 필요합니다. 보건소와 정신건강보건센터와 빠르게 연락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 민원업무는 교사가 아닌 전문가가 처리해야 합니다. 또는 각 학교의 민원창구를 만들어 별도의 기관이 받아내야 합니다. 

- 법률자문도 필요합니다. 수없이 쏟아지는 학교 내 비정규직의 노무문제와 교직원 노동권에 대한 해석을 해줄 사람과 학교에 붙어올 민원을 법적으로 해석해줄 기구도 필요합니다. 

- 학교의 급식지도는 급식의 영역에서 따로 진행하는 게 맞습니다. 특히 급식실이 없는 학교에서 교사는 식사시간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 생존수영과 1인 1악기는 교사보다 더 잘 지도할 사람이 마을에도 많습니다. 

그러니까, 학교는 가르치기만 하는 공간으로 남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말그대로 시민을 길러내는 복합공간이 돼야 합니다. 학교의 주권도 분산돼야 합니다. 교사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주도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 교사는 무슨 일을 할 수 있냐고요? 위에 언급한 일이 교사에게서 분리되면, 그제서야 교사는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겠죠. 교안을 개발하고 아이들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하고, 문해력이 떨어지는 아이를 따로 지도하거나 발표연습을 더 시킬 수도 있습니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육을 시도할 수도 있고 아이들과 재미난 프로젝트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본인들과 구성원들의 노동권을 고려하고 지역사회와 연대할 길을 만들 수 있겠죠. 학교에 교사외의 직군이 더욱 많아지면 그 자체로 학교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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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 앞에서 1학년 교사의 사망에 가슴 아파하며 국화꽃과 위로의 메시지를 놓고 가고 있다. ⓒ 유성호

 
교육청을 뒤지고, 사회적 타살의 주범이 누구인가 수사해봤자 거기엔 답이 없습니다.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지금의 시민은 자기가 맡은 일 외의 다른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하기엔 너무 바쁩니다. 세상이 그렇잖아요. 죽도록 벌어도 대출이자 갚기 바쁘고, 아무리 모아봤자 좋은 집으로 이사가기 힘들어요. 세상은 약한 자들을 계속 갈아넣다가 결국 죽여버리는데, 내가 왜 예정에 없던 일을 다 감당해야 합니까. 다들 똑같지 않습니까? 서로를 물어뜯지 않으면 내가 언제 갈려버릴지 모르는 세상에서, 혐오로 무장하는 게 살 길이라고 터득한 사람들이 드글댑니다. 

서로를 미워하고 질투하는 힘으로 버텨야 하는 한국사회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우리는 모두 자멸을 향해 힘껏 폭주하는 레밍과 같습니다. 

"지난 시간동안, 나는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는 14년차 교사의 고백을 읽습니다. 울지 말아야겠습니다. 이 일은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몇 년전 제가 아는 학교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바로 내 집 앞의 학교,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통한 마음으로 함께 빕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집필노동자' 이하나씨는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대표입니다.
#초등학교 #교사 #S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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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부터 마을 활동가로 일하기 시작했다. 지역 활동가·자영업자·집필노동자로 살고 있다. 『포기하지 않아, 지구』, 『성남시의료원 설립운동사 2003-2021』,『학교와 마을은 정말 만날 수 있을까』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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