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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에게 쓴소리 하고 쓰는 글입니다

장인어른은 현재 2주째 금주 중... 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등록 2023.06.22 10:54수정 2023.06.22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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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본가와 처가를 방문한다. 올해 결혼 11년 차이니, 처가를 방문한 것이 못해도 500번은 넘는 듯하다. 처가는 좁은 골목길 꼭대기에 위치한 오래된 연립주택이다. 접근성은 다소 열악하지만 본가 못지않은 편한 마음으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장인어른은 평소 소파에 앉아 TV를 보시거나, 저녁으로 반주를 드시거나, 현관 밖에서 담배를 태우신다. 평소에 많은 대화를 하지는 않지만, 항상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존중해 주신다. 

가끔 혼자 처가에 방문할 때면 장인어른은 내가 밥을 먹었는지 꼭 먼저 물으신다. 장인의 요리 솜씨를 알기 때문에, 밥을 먹지 않았을 때는 "아직 식사 전입니다"라고 솔직하게 답한다. 

"권 서방, 잠깐만 기다리봐라."

10분이나 지났을까, 불맛 가득한 중화볶음밥을 뚝딱 만들어 오신다. 장모님께는 죄송하지만, 볶음밥은 장인어른이 한 수 위인 것 같다. 허겁지겁 맛있게 먹는 내 모습에 웃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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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를 위해 볶음밥을 만드시는 장인어른 ⓒ 권진현


"아버님, 이 참에 술 좀 그만 드시죠. 담배도 끊으시고."

최근 장인어른에게 처음으로 싫은 소리를 했다. 당신이 드시는 약이 잘못되었는지, 2주가 넘도록 발이 터질 것처럼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장모님은 장인이 간경화 초기 단계 같다고 했다. 하루가 머다 하고 반주를 즐기시니 간이 수명을 다 한 것일까. 


예전에 딱 한 번 장인에게 싫은 소리를 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담배 냄새가 자욱한 채 아이들을 안아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매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비흡연자가 담배 냄새를 견디는 게 힘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괴로울 생각을 하니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따로 말씀을 드리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걷잡을 수 없도록 퉁퉁 부은 장인의 발을 보니 속에 있던 마음이 그대로 튀어나와 버렸다. 아들 딸도 가만히 있는데 사위가 잔소리를 한다고 언짢으실지도 모르겠다. 뭐, 그래도 할 수 없다. 장인도 똑같이 내 아버지로 생각해서 한 말이니.  

충신은 임금에게 목숨을 걸고 직언한다. 좋은 친구는 상대의 잘못된 행실을 보며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때로는 조언으로, 때로는 뼈를 때리는 질책으로 옳은 말을 해준다. 쓴소리를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아프지만,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이 친구가 잘못되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친구는 무조건 옳은 말을 해야 할까. 나는 'case by case'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조언해 주더라도 듣는 사람에 따라 도움이 아닌 상처가 되기도 한다. 아주 가까웠던 사이가 쓴소리 한 번에 돌이킬 수 없게 되기도 한다.

효율성이 중요한 시대에는 인간관계에도 가성비가 적용되는 것 같다. 여기에 이기주의가 더해지면서 '쿨'한 관계가 일상이 되었다. 티키타카가 잘 되는 편한 사람과는 쉽게 관계를 맺지만, 나와 잘 맞지 않거나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하는 사람과는 쿨하게 돌아선다. 치열하고 바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쓴소리를 할 기력도, 쓴소리를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도 부족하다.

사실 쓴소리는 득(得)보다 실(失)이 많다. 좋아야 본전이고, 자칫하면 좋은 의도로 건넨 말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 원망과 분노를 사는 경우도 있다. 최악의 경우 관계가 틀어지기도 한다. '참된 우정'이랍시고 호기롭게 쓴소리를 하다가는 본전도 찾지 못하는 수가 있다.

간혹 나에게 쓴소리를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아주 찰지게. 내성적인 성격에 멘탈이 약한 나는 듣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많다. "너나 잘하세요"라고 퍼붓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나에 대해 잘 모르고 애정이 없는 사람은 결코 듣기 싫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을 뿐더러 불필요하게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쓴소리의 목적은 나를 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라는 존재 자체에 애착이 있는 사람이 나를 위해서, 내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해주는 말이다. 

가족들도, 친구도, 학교 선생님도 나에게 항상 듣기 좋은 말만 해주고 있다면, 한 번쯤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형식적인 대화에서 벗어나지 않는 관계는 서로에게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장인어른은 현재 2주째 금주 중이다. 매일 밤을 술과 함께 했던 장인에게 평생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인에게도, 가족들 모두에게도.

나의 갑작스러운 쓴소리에 장인어른께서 실망하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욕을 먹는 것보다 당신께서 좋지 않은 습관을 고치고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실례를 무릅쓰고 듣기 싫은 말을 해드렸다. 

장인어른이 이번 한 주도 금주모드를 잘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주말이 되기 전 핑계 삼아 전화라도 한 번 드려야겠다. 아들, 딸도 하지 않는 안부전화를 사위가 하면 조금 점수를 따지 않을까? 장인이 오래 건강하시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스토리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
#쓴소리 #건강 #사위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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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짝꿍, 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사람, 음식, 읽고 쓰며 소통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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