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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를 꿈꾼 위대한 작가를 보내며

[김성호의 씨네만세 491]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3.06.15 11:57최종업데이트23.06.15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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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포스터 ⓒ ㈜해리슨앤컴퍼니

 
미국 현대문학의 손꼽는 거장으로 경계를 탐색해온 작가 코맥 매카시가 13일 타계했다. 향년 89세, 언제고 떠날 그였으나 문학을 애정하는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한다. 세상에 없던 이야기를 써내려가던 거장의 목소리를 더는 들을 수 없단 걸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코맥 매카시는 문학 뿐만 아니라 영화팬에게도 특별한 존재다. 영화화된 그의 소설 두 편이 특별한 생명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중 더 앞서는 작품은 코엔 형제와 하비에르 바르뎀의 대표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되겠다.
 
2007년 제작된 이 영화는 여러모로 특별한 작품이다. 우연히 얻은 돈가방 때문에 사이코패스 킬러에게 쫓기는 한 퇴역 군인의 이야기로, 쫓고 쫓기며 물고 물리는 긴장감 넘치는 전개 가운데 삶과 정의, 또 세상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대사들은 코맥 매카시의 문장이 매체를 바꿔서까지 제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입증하며, 스크린 너머 앉은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그 삶마저 움직이려 한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스틸 이미지 ⓒ ㈜해리슨앤컴퍼니

 
적막함 속 닥쳐오는 긴장
 
주인공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퇴역 장교 르웰린 모스(조쉬 브롤린 분)다. 사막 가운데 사냥을 나갔던 그는 우연히 갱단 사이의 마약거래 현장을 목격한다. 상황은 이미 종료된 뒤로, 거래가 틀어졌는지 사람과 개들이 총에 맞아 죽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모스는 모두가 죽어있는 가운데 박살난 차량 안에서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이를 발견한다. 그러나 그에게 줄 무엇도 갖고 있지 않았던 모스는 그를 두고 떠난다.
 
모스의 걸음은 이 싸움의 또 다른 생존자를 향한다. 마약은 남았지만 이를 사려 했던 돈뭉치는 현장에 없었던 것이다. 숨을 곳이 마땅찮은 사막이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나무 밑둥에 기대 앉은 도망자를 모스는 발견하게 된다. 이미 숨을 거둔 그의 곁엔 가방 하나가 있고 모스는 그 가방 안에서 한화로 수십억원에 이르는 돈뭉치를 찾아내기에 이른다.
 
문제는 이 돈가방을 쫓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다름 아닌 마약을 거래하려 했던 갱단이다. 사건은 바로 돈뭉치를 찾아낸 날 밤에 일어난다. 차 안에서 만난 아직 숨이 붙어 있던 이가 마음에 걸린 모스가 다시 현장을 찾았는데, 그곳에서 갱단 조직원들과 조우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간신히 살아남긴 하였으나 현장에 두고 온 차량 때문에 신상까지 까발려지기에 이른다. 전투 경험이 있는 퇴역 장교답게 끈질긴 모스이지만 킬러까지 고용해 뒤를 쫓는 이들을 상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스틸 이미지 ⓒ ㈜해리슨앤컴퍼니

 
단 한 곡의 배경음악도 없이
 
영화는 모스와 그를 뒤쫓는 킬러 안톤 시거(하비에르 바르뎀 분), 사건을 추적하는 보안관(토미 리 존스 분), 시거를 제거하려는 또 다른 킬러(우디 해럴슨 분)까지 등장시키며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끈다. 단 한 곡의 배경음악도 없이 사막처럼 적막한 영화는, 그럼에도 숨막히는 긴장을 러닝타임 내내 유지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더욱 특별한 것은 그저 돈가방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 말하자면 범죄오락영화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영화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주인공과 그러나 너무나도 압도적으로 그를 압박해오는 킬러의 모습, 또 이 박살난 세계에서 어떻게든 질서를 수호하려는 보안관의 이야기를 통해 갈수록 혼란해지는 세계와 부서져가는 정의, 역부족인 질서를 말한다.

킬러는 영화 내내 당해낼 수 없는 재앙과도 같이 닥쳐오며 보안관은 아무리 노력해도 뒤늦게 당도할 뿐이다. 젊은이들이 불러온 혼란이 과거의 수많은 미덕을 너무나도 쉽게 박살내버리는 오늘의 풍경이 이 영화 속 추격전으로 형상화되는 것만 같은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스틸 이미지 ⓒ ㈜해리슨앤컴퍼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지만
 
누구나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복잡한 마음이 들 것이다. 지키고 싶은 정의가 이 세상 가운데 너무나도 쉽게 유린되는 모습을 우리는 뉴스에서 수시로 마주하지 않던가. 법은 무력하고 도덕은 황폐화되어가는 이 세상 가운데 횃불처럼 정의를 이야기하는 이는 갈수록 외로워져가는 것이 아닌가.
 
코맥 매카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단정적 문구로, 이 세계에 대한 막막함과 무력함을 토로했다. 그러나 도리어 그의 영화에서 우리는 역부족일지라도 횃불을 쳐들고 사건을 뒤쫓는 이가 있음을 목격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확인하게 되는 건 오로지 닥쳐오는 재난과 무력감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을지라도 노인을 위한 나라를 만들어가려는 이들은 분명 있는 것이다.
 
이토록 멋진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작가 코맥 매카시의 명복을 빈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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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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