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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아나운서가 알려준 우리가 잊어버린 '찐행복'

<나 혼자 산다> 출연 후 화제... '조용하지만 충만한 삶'의 가치 보여준 일상

23.06.14 10:41최종업데이트23.06.14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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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나 혼자 산다>의 한 장면. ⓒ MBC

 
'평범함은 특별하다. 우리가 그 속에서 숨은 모과를 발견하기만 한다면. 평범이 특별함이다. 매일 뜨는 달이 밤의 특별함이듯.' 박연준 작가의 에세이 <모월 모일>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행복이란, 어쩌면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곁에 두고서도 '잊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한 아나운서에게는 지극히 평범하던 일상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하고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김대호 MBC 아나운서는 최근 방송에서 '자연인'을 연상시키는 일상을 공개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2011년 MBC에서 방송된 아나운서 공개채용 프로그램 <우리들의 일밤-신입사원>을 통하여 최종합격해 아나운서국에 입사한 김대호는, 그간 뉴스 및 시사 교양프로그램 등에서 주로 활동해온 인물이다.
 
10여 년간 큰 사건사고없이 차분하고 진지해보이는 모범 아나운서의 이미지를 구축해왔던 김대호는, 최근 MBC 아나운서국 유튜브 채널 '4춘기', '뉴스안하니' 등에 고정출연하면서 직장인으로서의 아나운서에 관한 일상과 애환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콘텐츠로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4월부터 인기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도 두 차례에 걸쳐 출연하여 자택에서 자연과 하나가 된 일상을 공개하면서 진지하고 근엄한 아나운서 이미지를 벗어난 소탈하고 엉뚱한 매력으로 '아나운서판 기안84'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김대호 아나운서는 이후 <라디오스타> 등에 출연해 "왜 사람들이 방송에 나온 내 모습을 그렇게 재밌어하시는지 잘 모르겠다"고 솔직히 고백하며 예상밖의 인기몰이에 의아하다는 반응을 여러 차례 보인 바 있다. 방송에 아무리 많이 나와도 MBC 직원 신분이라 "'출연료 4만 원' 때문에 사생활을 팔아야 했다"는 농담 섞인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아나운서판 기안84', 대중이 환호한 소확행
 

MBC <나 혼자 산다>의 한 장면. ⓒ MBC

 
그의 사생활이 갑작스럽게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아나운서'라는 사회적 엘리트의 지위에서 연상되는 틀에 박힌 고정관념을 전복시킨 친근한 반전 매력, 그리고 실천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낭만에서 오는 대리만족이라고 할 수 있다.
 
방송 이후 가장 뜨거운 반응이 쏟아진 것은 역시 김대호가 거주하는 집이었다. 서울 인왕산 끝자락 산동네에 위치한 소박한 단독주택은, 김대호가 회사 퇴직금을 미리 정산받은 데다 가족들의 지원까지 받아가며 '영끌'로 마련했다는 공간이다.
 
여기서 김대호는 취미로 2년째 비바리움(Vivarium, 생물 재배)을 운영하고 도롱뇽, 도마뱀, 민물고기와 새우 등을 정성스럽게 키우고 있는 의외의 모습을 공개했다. 볕이 잘드는 지붕 위에서 낙엽을 청소하다가 그대로 드러누워 한가롭게 낮잠을 자기도 하고, 막걸리와 안주를 사다놓고 자신만의 아지트에서 나홀로 회식을 즐기기도 한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모르고 처음 봤더라면 영락없는 농부 혹은 한량을 떠올리게 할 만한 모습이었다. 바쁜 대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자연친화적인 삶의 낭만을 누리는 모습,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힐링 공간'으로서의 집을 120% 활용하는 모습은 싱글라이프에서만 가능한 로망을 그대로 구현한 장면이었다.
 
방송에서는 주로 김대호 아나운서의 엉뚱하고 독특한 면모를 예능적으로 부각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졌지만, 실제로 엄청나게 부지런하고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이러한 삶의 매력을 즐기기란 쉽지 않다. 김대호는 휴일에는 도보로 집에서 도심까지 몇시간씩 산책을 즐기고, 좋아하는 만화책을 한꺼번에 대량 구매하고 행복해한다. 저렴하게 구매한 중고차에 '다마르기니'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만을 위한 캠핑카로 재활용하기 위하여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고생하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언제까지 회사생활을 할 거냐"면서 만원어치 로또 복권을 구입해 혹시 언젠가 찾아올지도 모를 행운을 기약하는 장면, 생방송을 마치자마자 뒤도 안 돌아본다는 '칼퇴근 비법'을 능청스럽게 설파하며 자신만의 나홀로 불금을 즐기러가는 모습에서는, 어쩔 수 없는 K-직장인다운 현실을 떠올리게도 한다. 카메라 앞에서 고고하고 반듯해보이는 아나운서들이라도 내면은 우리와 비슷한 고민과 애환을 겪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공감대를 느끼게 한 장면들이다.

뻔한 일상을 가득 채운 '삶의 여유'
 

MBC <나 혼자 산다>의 한 장면. ⓒ MBC

 
<나 혼자 산다>에 있어서도 김대호의 출연은 신의 한 수가 됐다. <나 혼자 산다>는 본래 무지개 회원 개개인들의 일상 관찰을 통하여 1인 가구 시대의 차별화된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초기 멤버들은 이사-먹방-취미생활에서부터, 연애와 결혼에 대한 고민,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등 소소하고도 현실적인 에피소드들을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팜유라인', '무타버스' 세계관 등, 이른바 무지개 멤버들의 팀워크나 부캐를 부각시킨 에피소드가 주류를 이루면서 예능적 재미는 강화된 반면, 한편으로 관찰예능으로서의 리얼리티는 후퇴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엄연히 1인 가구와 싱글라이프를 주제로 했음에도 연예인-셀럽 간의 '단체 친목질'이나 '트렌드 따라잡기'에만 치중하면서 리얼한 관찰예능이라기 보다는 시트콤에 가깝게 변했다는 비판도 존재했다.
 
김대호 아나운서의 출연은 <나 혼자 산다>에 있어서 오랜만에 초창기의 향수를 떠올리게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출연한 에피소드들은 아나운서로서의 모습이나 주변인들과의 인맥-관계보다는, 오랜만에 철저히 출연자 개인의 싱글라이프에 집중했다.

굳이 인위적이거나 과장된 연출 없이도 담백하게 인물의 일상을 따라가며 그 삶의 철학과 공간을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직업상 방송인이기는 하지만 화려한 연예인이나 부유한 셀럽과는 다른, 김대호의 현실적인 인간미는 그동안 <나 혼자 산다>가 다소 놓치고 있던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

어쩌면 김대호 아나운서의 싱글라이프는 '조용하지만 충만한 삶'의 가치를 대변한다고 할 만하다. 치열한 경쟁사회일수록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여 편리함과 효율성, 체면이 기준이 되고, 작은 힐링을 누리는 것조차 잃게 된다. 그러나 행복은 어차피 주관적인 것이기에 비용보다는 마음, 편리함과 효율성보다는 노력과 과정 그 자체를 통하여 얻는 보람이 더 클 수 있다.

김대호의 일상 속 행복이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삶의 여유'에 달렸음을 보여줬다.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평범하고 뻔한 일상을 특별한 순간으로 변화시키는 진정한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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