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인심과 낭만이 올레길에서도 가능하다니

추자도 올레길 18-2 코스

등록 2023.06.22 11:09수정 2023.06.2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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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포 해변 일몰 오전 지나온 곳이다. 이야기를 듣더니 민박집 사장님 차를 들이댄다. 8시간 걸었던 거리를 단 20여 분 만에 안내한다. 일몰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덕분에 빨갛게 지는 일몰을 볼 수 있었다. ⓒ 문운주


제주시 추자면 신양(하추자도)항 민박집에서의 하룻밤은 밤바다가 주는 낭만과 향수였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고 멀리 방파제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그러했다. 여름방학 때 도시 아이들이 시골 외갓집에서 느끼는 그런 기분이랄까.

제주 올레길 18-2코스는 총길이 9.7km로 3~4시간이 소요된다. 산을 오르내리며 넓은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신양항에서 추자 면사무소까지 이어지는 해안길이다. 졸복산과 대왕산을 거쳐 다시 추자교를 건넌다. 한 30여 분 직선거리를 돌고 돌아 가보면, 그 산 뒷길이다.


16일 아침 신양항, 섬지기인 갈매기 몇 마리가 하늘을 배회한다. 아직 새우깡맛을 모르는 토종 갈매기다. 석두청산을 지나 졸복산까지 천천히 걸었다. 뭉친 종아리 근육을 풀기 위해 워밍업이라도 하는 것처럼. 길을 따라 망망대해 끝없는 바다가 펼쳐진다.

신양항 방파제를 지나 석두청산까지 평지길이다.  전날은 절벽길, 오르막길이 많았다. 덕인산, 석두청산 자락인 숲길에 들어섰다. 돈나무, 가시나무, 소나무, 질경이 등이 엉켜 자라고 있다. 뿌리가 해독, 이뇨, 혈액 순환에 좋다는 맹감나무도 보인다.

추자도는 많은 산들이 각각의 이름을 갖고 있다. 앞산, 뒷산, 큰 산, 작은 산.... 산봉우리들을 오르내리며 섬들을 관망할 수 있다. 상추자도에서는 수령섬, 염섬, 추포도, 회간도 등을 볼 수 있다. 하추자도에서는 수덕도, 청도, 섬쟁이 등이 우리를 따라다니듯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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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산 황금길 대왕산 정자에서 내려다 본 황금길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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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 18-2코스 ⓒ 문운주


졸복산을 지나 한 30분 걸었을까. 대왕산 황금길에 접어들었다. 급경사 계단을 올라가면 대왕산 정자다. 추자도에서 산, 섬 또 하나 볼거리는 정자다. 평상형이 아니라 의자형이다. 신발을 벗지 않고 쉴 수 있다.

"너무 좋아요. 트레킹 코스로는 최고입니다."
"섬쟁이 섬도 보고, 바닷바람도 쐬고...."


경기도 분당과 용인에서 왔다는 2명의 중년을 만났다. 제주올레에서 단체 트레킹에 나선 여행객들이다. 올레길 트레킹은 코스가 정해져 있어 시작점이 다르거나 걷는 속도에 따라 같은 사람을 자주 만난다. 동지 같은 친밀함이 느껴진다. 반갑게 서로 인사를 나눈다.


올레길 18-2코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다. 유일하게 현무암으로 쌓은 돌담과 색색의 꽃들을 볼 수 있다. 흔하디 흔한 찔레꽃, 노란 민들레, 인동초 등이 길가에 뾰족이 얼굴을 내민다. 갈대와 산딸기도 눈요기다.

추자도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청정지역이다. 갈매기가 새우깡 맛을 모르듯 이곳 사람들은 정이 많고 순수하다. 어젯밤 민박집에서다. 해녀들이 물질 나가 건져온 소라, 참돔, 해삼 등을 한 상 가득 올린다. 향이 혀끝에서 맴돈다. 사각사각 씹히는 소라의 맛과 사골처럼 푹 고아낸 생선 맑은탕은 시원하고, 담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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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양2리 깨끗한 거리지만 공가가 많다. 이곳 골목길 외진 곳에 짬뽕집이 있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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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양 2리 골목길에 있는 짬뽕집 ⓒ 문운주


대왕산 황금길을 지나니 신양2리 마을이다. 입구에 홍살문이 특이하다. 인적이 없다. 아예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 적막한 마을이다. 장작지로 불렸는데 마을 앞에 길게 펼쳐진 몽돌자갈해변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추자 10경 중 장작평사, 석두청산, 수덕 낙안 등 3경을 볼 수 있다.

올레길 트레킹에 제일 애로사항이 점심 등 먹거리다. 농어촌의 해변, 산길 등으로 길이 이어지다 보니 식당을 만날 수 없다. 과일, 빵 등을 준비한다고 하지만 어딘가 부족하고 여름에는 변질될 수도 있다. 신양항에서 초코파이를 준비했다. 초콜릿이 녹아 맛이 떨어진다.

그런데 뜻밖이다. 골목길 깊숙한 곳에 짬뽕집이 있다. 마라도에서 짜장면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신기하다. 짬뽕밥을 주문했다. 맵지 않고 담백하다. 사장님이 서울에서 식당을 하다가 이곳에 정착하게 됐다고 한다. 

생각지 않은 고급 짬뽕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묵리 마을로 향했다. 시원한 물까지 얻었다. 다시 힘든 고행이 시작된다. 일행 친구들은 무릎이 아프다고 호소다. 산 너머가 묵리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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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리슈퍼 슈퍼에서 담소를 하던 마을 주민들. 우리를 보자 반갑게 맞이한다. ⓒ 문운주


묵리 슈퍼에 들렀다. 마을 주민 6-7명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대부분 70~80대의 할머니들이다. 무료하신가 보다. 무척 반가워한다. 광주에서 왔다고 했더니 남자 한 분, 광주에서 아들이 신학대학을 졸업했다고 손을 내민다. 

한 20여 분을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옛 힘들게 살았던 시절, 자식들 키우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똑같다. 우리 이야기다. 더위도 식히고 덕담도 주고받는다. 한 친구는 어머니가 92세다. 남의 일 같지가 않은지 계속 말을 붙인다.

이제 묵리마을을 떠나 상추자도로 향할 차례다. 추자나무숲이 무성하여 불리게 되었다고도 하는 추자도.... 1박 2일 올레길 트레킹에서 민박집의 후덕한 인심, 신양2리 짬뽕밥, 묵리마을 할머니들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자연 속에 핀 꽃향기를 가슴에 안고 간다.
#추자도 #올레18-2코스 #추자도황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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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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